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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 우리과학] 장
2003년 04월 21일 () 14:01:00 webmaster@mjmedi.com
콩의 영양소와 누룩곰팡이가 빚어낸 역작.
서구인에 인기, 김치와 함께 지적상품으로 부각.

"집안이 망하려면 장맛부터 변한다"는 말이 있다.

이처럼 한 집안의 흥망을 가늠할 정도로 장맛이 중요시 되어왔던 것은 우리 음식 중에 간장이 들어가지 않는 것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담구는 데서부터 관리하는 데까지 끊임없는 관심과 정성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관심과 정성이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은 다른 곳에 신경 쓸 일이 많아 집안이 평탄치 못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만약 장(간장 고추장 된장)에 곰팡이가 피거나 이물질이 생겼을 경우에는 맛 자체가 시거나 떫어져 음식의 맛을 망쳐버리기 일쑤다.

따라서 우리의 전통 장류는 생명체와 같이 다루어졌다. 저장용기는 습도를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우리의 전통 옹기라야 하고, 많지도 적지도 않은 적당량의 햇볕을 쬐어 주어야만 제대로 된장 맛을 볼 수 있다.

그럼 장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쌀과 보리가 주식이었던 우리 민족은 곡물에서 부족한 단백질, 특히 필수아미노산을 보충하기 위해 일찍부터 콩을 가공한 음식이 발달했다.

즉 우리나라는 목축업이 발달할 만한 지형을 갖추고 있지 못했다. 당연히 육류를 통한 단백질 섭취는 명절이나 특별한 잔치 때 외에는 어려웠고, 어패류 역시 각 지역마다 수시로 공급될 만한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단백질 공급원인 콩을 다양하게 가공해 사용하는 지혜를 발휘했던 것은 매우 과학적인 발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민족에게 있어 콩은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특히 논두렁 콩에는 선조들의 애환이 서려있다. 논두렁 콩은 배고픔도 이기고, 일제의 수탈을 면하기 위해 심어졌다. 일제는 세금을 거두는데 있어서 논두렁 콩만은 예외로 쳤기 때문이다.

게다가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더욱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흉년이나 전쟁으로 기근이 들었을 때 중앙정부에서 지방에 내린 식품이 메주나 간장, 된장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먹을 양식이 없어 풀뿌리나 나무껍질로 하루하루를 이어가야 했던 그 당시에는 황달이나 부황이 들어 몸져눕는 이가 많았다. 그런데 이를 간장에 무쳐서 먹든지 된장에 묻었다 먹으면 풀뿌리 만으로 부족한 영양소를 공급받을 수 있었다.

한편 장의 기본 재료가 되는 메주는 보통 음력 11월에 쑨다. 콩 중에도 대두를 삶아서 잘 으깬 후 메주를 만들어 놓는다.

이렇게 만들어진 메주를 지푸라기를 이용해 잘 묶은 후 공기가 잘 통하고 햇볕이 잘 드는 대청마루 창 방에 매달아 둔다. 이는 몸에 이로운 누룩곰팡이가 잘 번식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메주를 달아맨 후 한달 가까이 지나면 딱딱하게 마르고, 볏짚이 돌아간 자리에 곰팡이가 슬기 시작한다. 이때 창 방에 매단 메주를 따뜻한 구들목에 짚을 한 켜 깔고 메주를 한 줄 깐 다음 볏짚을 덮는다. 보름 정도 지나면 메주 속까지 곰팡이가 앉아 잘 뜬 메주가 된다. 이때 안방은 쿰쿰한 내음이 가득하다. 잘 띄운 메주 냄새다.

잘 띄운 메주가 준비되면 음력 2∼3월 子日(쥐날) 寅日(호랑이날)을 택해 장을 담구었다. 잡귀가 붙지 않는 날에 장을 담아야 장맛이 좋고, 장맛이 좋아야 집안이 편안하다는 생각이 여기까지 미쳤던 것이다.

집집마다 고유한 장맛을 지니고, 그것을 가풍이라 여기고 살았는데 이제는 어느 특정 제조회사의 간장 된장 고추장에 입맛을 맞춰야 한다.

공장에서 대량 생산되는 개량메주는 당장의 쌈박한 맛은 있겠지만, 재래메주처럼 깊은 맛이 없어 쉽게 질리기 십상이다. 이는 개량메주 제작 공정이 높은 열에서 세균을 인위적으로 투입해 단시간에 대량의 제품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전통방식의 우리 된장이 얼마나 훌륭한 음식인지 속속 입증되고 있다. 즉 된장이 암과 고혈압을 예방하고, 노화방지까지 한다는 사실이 식품학자들로부터 연구·발표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얼마 전에는 생명공학연구소에서 된장이 피가 굳는 것을 막는다는 사실까지 밝혀내 뇌졸중이나 뇌출혈 등 혈액순환장애로 인한 질병까지도 예방할 수 있다는 성과물을 얻어냈다.

된장 속에 있는 '바실루스균'이 특수한 단백질을 분비해 혈전덩어리를 잘게 부수는 역할을 하는데, 이 바실루스균은 열을 가하면 파괴되기 때문에 혈액순환 장애가 있는 사람은 날 된장을 먹는 게 가장 좋다고 한다.

이러한 이유에서일까? 김치 장류 젓갈 등 우리 고유의 발효식품에 대한 관심이 전세계적으로 증대되고 있다. 각 나라의 전통식품이 지적상품으로 각광받을 날이 머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아쉬운 점은 우리에게서 건너가 개량된 일본의 식품들이 세계시장을 점유하고 있고, 또 우리가 이를 역수입해 먹고 있는 현상이다.

하루빨리 우리 전통의 장맛, 각자 집안의 장맛을 되찾아 점차 소실되어 가는 한국의 전통문화를 살려내야 할 때이다.

이예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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