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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4.06.28 00:00
  • 호수 521

“이웃과 그린 그림 나눕니다” - 송악면 중흥리 장채운씨 - 김항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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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도 그렇게 떠났습니다. ”
 행정수도 후보지로 선정된 지역의 주민들이 떠날 것을 걱정한다는 보도를 보고 장채운(69)씨는 “그 입장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말했다.
 송악면 중흥리에서 간척지 5만여평에 벼농사를 짓고 있는 장씨는 지난 1984년 자신이 살던 곳인 논산군 두마면 불암리에 육군본부가 들어서면서 정들었던 고향주민들과 고향을 떠나 이곳 당진으로 이사한 이주농민이다. 계룡대가 생기기 전까지 장채운씨는 마을일이라면 빠지지 않고 앞장섰던 새마을지도자였다고 한다.
 중흥리 장씨의 집에서 2급 장애우인 아들과 부인 양재숙(67)씨와 함께 살고 있는 장씨를 찾은 것은 지난 6월16일 저녁. 내세울 것이 없다며 한사코 거절함에도 불구하고 마을주민과 그림을 나누며 살아가는 장씨를 만나기 위해 한적한 시골 마을을 찾았다.
 거대한 트랙터와 흙이 묻어 있는 농기계가 보이는 마당을 지나 곳곳에 묻어있는 농사의 흔적들이 엿보이는 장씨의 집으로 들어가 보았다. 겉보기에는 여느 농가와 다름없는 장씨의 집이지만 집 한 쪽에 나 있는 쪽방은 장씨가 그림작업을 할 때 이용하는 작업실이었다.
 문을 열고 조심스레 들어 가보니 ‘ㄱ’자로 소파가 놓아져 있고 텔레비전 등 가지런히 정리된 살림 중간 중간에 서너 점의 그림이 액자에 걸려 있었다. 그래서 이곳이 그림을 그리는 작업실임을 알 수 있었다.
 장채운씨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 시절부터라고 한다. 그러나 그림에 대해 특별히 더 관심을 가졌던 것도 아니었고 그림에 대한 전문적인 교육을 받아본 적도 없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장채운씨가 그리는 그림에는 가득 배어있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장씨가 그리는 확 트인 섬과 바다 풍경 속에는 한 농촌화가의 고향에 대한 ‘동경’과 삶의 고뇌가 잔뜩 배어 있었다. 전시회 한 번 갖은 적 없는 검증되지 않는 실력이지만 장씨의 마을 주민 그리고 장씨를 아는 사람들에게 장씨가 그린 그림은 인기가 있다.
 장씨의 그림실력에 대한 비결은 다름 아닌 'EBS 교육방송'에 있었다. “교육방송에서 방영되는 팜모스의 유화 강연 등 그림 프로그램을 녹화해서 보면서 그림실력을 키워왔다”고 장씨는 쑥스럽게 말했다.
 장씨가 선택하는 그림 소재는 좀 특이하다. 선술집의 낡은 벽에 걸려 진 이름 모를 그림, 카탈로그의 풍경 사진, 관광가이드 책자, 달력 등은 장씨의 그림소재가 있는 ‘창고’이다. 어쩌면 평범해 보이고 관심을 끌지 못할 소재라는 생각이 들지만 장씨의 손을 거치면 이 평범한 소재들도 신비롭고 생명력을 느낄 수 있는 작품으로 재탄생한다.
 이렇게 장씨의 정성을 거친 그림들은 이웃, 마을 회관, 경로당, 농협 등에 걸려 진다. 또 집들이 할 때 시계대신 그림을 준비해 가기도 하고, 시집가는 동네 처자의 부탁으로 그림을 그려주기도 한다. 그래서 중흥리에 가면 쉽게 장씨의 그림을 만날 수 있다.
 찾아간 날 장씨는 “한편의 그림을 그려주겠다”고 했지만 장씨의 그림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 농한기에 한 편 그려달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장씨는 그리는 것만큼 그림을 주는 것에 대한 즐거움도 잘 알고 있는 듯 했다.
 액자값이 꽤 많이 들어 매번 큰 그림을 줄 수는 없지만, 이웃집에 마실 갔을 때 그려준 그림이 벽의 한켠을 차지하고 농사에 지친 이웃들이 힘겨움을 잠시 잊고 그림을 통해 즐거워 하는 모습을 보면 너무 흐뭇하다고 한다.
 또한 장씨의 말 속에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하나하나 마음을 비우고 그리면 없던 것이 생기고, 그것이 아름답게 변하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상쾌함이 밀려 온다”고 장씨는 말했다.
 장씨가 이웃과 함께 나누는 것은 그림만이 아니었다. 행사가 있을 때 마다 사진을 찍고 현상해 동네 주민들과 나누기도 한다. 이렇듯 마을 주민과 나누는 그림과 사진 속에는 장씨의 정성과 마음이 가득 배어있다.
 69세의 나이로 그림을 취미삼고 그린 그림을 정겨운 이웃과 함께 나누며 생활하는 장채운씨. 그리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즐겁다는 장채운씨의 노년의 삶속에서 향긋한 향기가 느껴진다.
김항룡 기자 hrkim@dj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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