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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0.06.12 00:00
  • 호수 326

허성무씨 <제2의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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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인간에서 목발없이 걷기까지 15년

오후 3시, 허성무(37세)씨는 당진읍 대호목욕탕 앞에서 함부로 주정차한 차들을 단속하느라 호루라기를 분다. 이곳은 얼마 전부터 양방향 도로로 바뀌었지만 습관적으로 도로변에다 대놓는 차들 때문에 교통소통에 지장이 많은 곳이다.
하지만 어떤 차들은 호각소리를 들으면서도 무시한 채 차를 들이댄다. 그중에서도 어떤 날은 허씨가 운전자에게 당도하기도 전에 빠른 운전자가 건물 안으로 들어가 버리는 일도 있다. 허씨의 걸음은 남들보다 더디다. 허리에서 발목까지 다리뼈가 자유롭게 움직여 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럴 때 속이 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허성무씨는 걸을 수 있는 자신이 자랑스럽다. 게다가 이젠 목발조차 필요없지 않은가.

1983년 호서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에 입대할 때만 해도 허성무는 누구에게나 눈에 띄는 미소년이었다. 아니 85년, 제대를 한달 앞두고 포상휴가를 받아 집으로 왔을 때만 해도 그는 변함없이 잘생기고 착하고 건강한 아이였다. 한달만 있으면 어엿한 사회인으로, 어머니와 함께, 좋아하는 여자친구를 만나며 새생활을 시작했을 그에게 아찔한 순간이 지나갔다. 지금도 고개를 저으면 꼭 비껴갈 수 있을 것만 같은 순간이었다. 그때 그 한 순간이 모든 것을 바꾸고 말았다.

말년 포상휴가 때 허씨는 아는 선배, 친구와 운전연습이나 한다고 어떤 트럭에 탔던 것으로 기억난다. 운전을 하지 못했던 허씨는 가운데 자리쯤에 앉았다. 그리고 읍내 어느 지점을 지났던 기억까지 난다. 하지만 그 뒤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그 차가 누구의 것인지, 차에 동승한 사람이 누구였는지 그것은 허씨의 기억에서 지워져 버렸다.
휴가기간이 지났는데도 군에 복귀하지 않았다는 연락을 받은 뒤 허씨의 어머니가 여기저기 수소문을 했을 때 ‘신원을 알 수 없는 군인의 시신 한 구’가 병원 영안실에 싸늘하게 누워 있었다. 허씨의 모습은 어머니조차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망가져 있었다. 교통사고였다. 사고현장에는 당시 상황을 설명해줄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허씨의 신분증조차 사라지고 없었다.

허씨가 눈을 뜨고 의식을 찾는 데는 5년이 걸렸다. 공무원이었던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5남매를 데리고 억척같이 살았던 어머니에게 그때만큼 어렵고 고통스러웠던 때가 또 있었을까? 의식도 없는 상태에서 여기저기 수술을 받았던 그때를 허성무씨는 다만 짐작할 뿐이다.
하지만 5년이라는 긴 잠에서 깨어났을 때 허씨는 갓난아이였다. 아무 것도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말도 어눌하게 간신히 할 정도였다. 눈을 뜬 순간 고통은 시작된 것이다.
“처음엔 왜 죽게 내버려두지 않았느냐고 원망도 했어요. 그러면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아무리 어려워도 네가 이렇게 살아 있으니 좋잖니? 그때 그렇게 끝이었다면 정말 좋았겠니? 라구요.”

처음엔 너 혼자 화장실에만 가도 좋겠다던 어머니는 혼자 걸을 수 있어야 한다고 목발을 사다놓으셨고, 장사라도 하려면 글씨를 써야되지 않겠냐고 힘 하나 없는 손에 붓을 쥐어 서예학원에도 보내셨다.
93년에 최초로 그를 만났을 때 그는 목발을 짚고도 간신히 발을 옮기던 상태였다. 말도 훨씬 어눌하고 얼굴도 많이 일그러져 있었다. 화장실에서 일어나지 못해 몇시간을 땀에 젖어 있었다는 이야기를 주고받기도 했다. 그 당시 허성무씨는 당진헬스에서 날마다 재기를 위한 땀을 흘리고 있었다. 목발을 내려놓고서는 어쩔 수 없이 헬스기구까지 한참 기어갔던 이야기를 하면서.

허성무씨는 이제 걷는다. 남들이 보기에는 한없이 서툰 걸음걸이지만 그에게는 새로운 삶을 열어보여주는 다리다. 그가 스스로 일으켜 세운 다리다. 그리고 그는 이 다리로 부지런히 일한다. 아직도 조금은 어눌한 말로 “나는 한다면 해요”라고 말하며 매일 아침 7시면 계성초등학교 앞에서 교통정리를 도와주고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는 공공근로요원으로 불법 주정차 단속을 한다.
불편한 다리로 하루 종일 서 있으려면 다리가 아프다. 게다가 꾸준히 하던 운동도 요즘은 지쳐서 힘들다. 하루 일당 2만 얼마인 공공근로는 휴일과 주말 빼면 한달 꼬박 일해도 50만원정도다. 지난 달에는 휴일이 하도 많아서 삼십몇 만원밖에 받지 못했다.
“지금은 혼자지만 앞으로 가족이 생기면 이걸로는 곤란하잖아요. 보험일 좀 해볼까요?”
모르겠다. 언제나 희망을 접을 줄 모르는 그가 좋아보일 뿐.

언젠가 영안실에서 삶의 문턱을 넘어왔던 것처럼, 절망을 떠멘 채 수년간 누워있다가 이렇게 걷는 것처럼, 허성무씨는 또 언젠가 우리에게 다른 기적을 보여줄 것이다. 그는 희망의 인물이기 때문이다.
지난 몇 년간 하루 하루 달라지는 그를 보는 일은 그를 아는 많은 사람들에게 가슴 찡한 일이었다. 늘 쳇바퀴같은 우리 삶이 그저 한없이 제자리걸음만 하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그를 보고서야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김태숙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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