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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0.05.29 00:00
  • 호수 324

콩심은 데 콩나고 나눔의 씨 심은 곳에 사랑 꽃펴요 - 송악면 부곡리 박철희씨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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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심은 데 콩나고
나눔의 씨 심은 곳에 사랑 꽃펴요

송악면 부곡리 박철희씨 가족의
퍼주는 이야기, 나누는 이야기


박철희(45세)씨 집에는 언제고 사람들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마을에 상의할 일이 있어서 사람들이 모이는 건 예사다. 10년전 새마을부녀회를 맡아 한 3년 마을일을 보고 나서는 더하다. 하다 못해 동리를 지나가던 사람도 목마르면 들어와 목을 축이고 간다. 좥누구에게나 그냥 열어놓고 사는 집좦. 이것은 박철희씨 집안의 내력이기도 하다.
박씨의 친정어머니는 아무리 먹을 것이 없어도, 콩 반쪽이라도 이웃과 나누며 살았던 분이다. ‘내가 아무리 어려워도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은 있는 법’이라고 그분은 한사코 나누며 살았다. 그래서인지 집에는 늘 이웃사람들 말소리가 끊이지 않았었다.
철이 들어 그런 어머니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게 되기 훨씬 전부터 박씨는 어머니의 심부름을 다녔던 기억이 선하다.
“그때는 어린 마음에 불평을 했었죠. 우리 먹을 것도 넉넉지 않은데 왜 남을 주는지 아깝기도 했어요.”
나이가 들면서 박씨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머니의 삶을 닮아가는 자신을 보게 되었다. 사는 집은 누추해도 항상 열어놓고 있는 자신, 가진 것은 변변치 않아도 조금씩 거들며 사는 자신, 그러다 보니 어느새 송악면 적십자봉사대 회장을 맡은 지도 3년째다.
그렇다고 그런 자신을 조금도 대견스럽게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기자의 방문을 완강하게 거절할 때도 그렇고 자신은 지독히 평범하게, 익숙해진대로 살아가는 것 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냥 이런 생각으로 살아요. 비록 넉넉하지는 않지만 부족한 것이 없는 내 처지에 감사하고 그 감사를 나누는 게 내 할 일이라구요.”
박씨는 이미 가족들에게도 종신선언(?)을 한 상태다. ‘쓰러져 눕기 전까지는 계속 이렇게 살고 싶다’고.
그런 박씨가 대견스럽게 여기는 건 자신이 아니라 가족들이다. 남편 백 민(48세)씨는 박씨의 말없는 후원자일 뿐 아니라 때로는 용감한 시민이다.
잊지 못할 지난해 수해 때 남편 백씨는 잠도 설친 채 걱정으로 날을 새우다 새벽 5시쯤 건너마을 이웃 할아버지 부부가 사는 집으로 찾아갔다. 아니나 다를까 계속 불어나는 빗물 속에서 논 한가운데 위치한 집은 거의 잠겨있고 노부부는 목까지 물에 잠긴 채 필사적으로 보일러통을 붙잡고 있었다. 백씨는 쏟아지는 폭우와 홍수 속에서 끈을 이용해 두 부부를 구했다. 염소들은 그 사이에 떠내려가거나 익사했다. 남편은 이 일을 상신한 당진군 적십자봉사회 때문에(?) 쑥스럽게도 총재표창을 받았다.
그뿐 아니다. 고등학교 3학년에 다니는 둘째딸 은희는 학교에 봉사써클이 생기자마자 여기에 가입해 주말이면 엄마보다 더 바쁘게 돌아다닌다.
고아원, 양로원에 가서 빨래·청소도 해주고 상담원 노릇도 한다. 학교 축제기간인 이번 좥팔아제좦 때에는 봉사반 친구들과 직접 음식을 만들어 수익사업을 벌였다. 고아원 아이들들에게 작은 선물이라도 하나씩 해줄 요량에서였다.
은희의 이 모든 행동은 전혀 엄마의 코치없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래서 참 기특하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2학년을 마칠 때 은희는 좥봉사상좦을 받아들고 왔다.
게다가 막내인 아들 형근(18세)이는 별명이 ‘넝마주이’다. 학교에서 그냥 버려지던 우유팩을 한보따리씩 짊어지고 집으로 돌아오곤 했기 때문이다. 이 우유팩을 깨끗이 씻어 말려서 화장지로 바꿔다 주는 것이 엄마의 몫이었다.
어려서는 애들이 놀리는 걸 의식하던 형근이도 이제는 그들을 향해 “짜아식들, 뭘 몰라도 한참 모르네” 할 만큼 여유가 생겼다.
박철희 회장을 비롯한 송악면 봉사대는 면 관내 무의탁노인 13명의 딸들이다. 할아버지 할머니들 마음의 문을 여는 데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딸처럼 극진히 여기고 의지해오는 분들을 만나는 일이 이제는 의무나 봉사의 차원을 넘어섰다.
얼마 전에 박씨는 공주할머니(77세)를 음성꽃동네에 모셔다 드리고 돌아와야 했다. 찬도 해다 드리고 양식도 마련해 드릴 수 있었지만 냉방을 아주 고쳐드릴 수는 없었다. 할머니는 겨우내 얼고 병들었던 것이다. 그때가 박씨는 무척 가슴 아팠다. 어렵사리 주민등록을 만들고 성당 신부님의 도움을 빌어 꽃동네로 새살림을 차려가신 할머니는 다행히 몇달만에 환하게 피어올랐다.
“신문에 사진까지 낸다구요? 제발 다른 봉사자들께 누가 되지 않길 바래요. 저는 그저 평범한 사람일 뿐인데...”
매사 넉넉한 그녀에게서 간신히 얻어낸 것은 5년도 더 된 낡은 사진 뿐이었다. 나서는 데는 이다지도 인색한 박철희씨.
그녀는 자신이 심은 나눔의 씨앗이 얼마나 풍성히 열매 맺고 있는지 알고 있을까. 그녀 자신이 풍성한 열매이자 열매 속 씨앗이었던 것과 같이.

김태숙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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