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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경지 5천평 임대해 회원들 틈틈이 경작-새마을운동 면천면협의회 오연섭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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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경지 경작사업은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두었다.

조직운영자금을 마련했고 회원간의 단합을 이루게 된것이다.



죽동에서 나뭇고개를 지나 면천입구에 들어서면 신작로 왼쪽에 아담한 휴식공원이 있다. ꡐ새마을운동ꡑ이라는 글귀가 쓰여진 커다란 자연석탑이 맨 먼저 눈에 띈다. 이 공원이 만들어진 내력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ꡐ또 엉뚱한 데다 예산낭비 했구나ꡑ하면서 씁쓸한 표정을 지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공원은 어느 관변단체에서 국가예산을 도용해 만든 공원이 아니다. ꡐ새마을지도자 면천면협의회ꡑ와 ꡐ면천면 새마을부녀회ꡑ 회원들이 회비를 걷고 빚을 내어 그들이 직접 만든 공원이라고 한다.

ꡒ새마을운동이 시작된 그 배경이 무엇이었건간에 근면쪾성실한 자세로 가난을 극복하려 했던 순수한 정신은 이어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 공원을 만들게 된거죠ꡓ

새마을지도자 면천면협의회장 오연섭(39세)씨의 말이다.

더위가 기승을 부렸던 올여름, 회원들과 비지땀을 흘리며 나무를 심고 뗏장을 씌우고 중장비를 동원해 자연석을 옮기는 과정을 아슬아슬하게 지켜봐야 했던 그는 고생했던 만큼 이 공원을 볼때마다 뿌듯함을 느낀다고 한다.

이 공원을 만드는 데에 들어간 비용은 고작 300만원. 이렇게 적은 예산으로 만들 수 있었던 건 순전히 ꡐ공짜ꡑ로 가져온 자연석 덕분이었다. 바로 이 자연석은 죽동 1구에서 저수지를 파다가 나온 것으로 이장님의 승락을 얻어 크레인으로 옮겨 온 것이라고 워낙 큰 돌이다보니 옮겨오는 데에만 꼬박 3일이 걸렸다고 한다.

면천 새마을지도자와 부녀회원들은 올해 또 하나의 큰 사업을 했다. 오연섭 회장의 제의로 5,000평의 휴경지를 임대해 수도작을 했던 것이다. 물론 처음엔 반대하는 회원들도 있었다고 한다. 회원들 모두 농사를 짓고 있다보니 가뜩이나 농촌인력이 부족해 애를 먹고 있는데 따로 시간을 내 경작한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그러나 오연섭 회장은 강력하게 밀고 나갔다. 조직이 제대로 운영되려면 무엇보다 자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또한 회원들의 단합을 꾀하는 데에도 좋은 계기가 될것이라고 생각했다. 오회장의 생각은 정확히 들어 맞았다. 찬반으로 의견이 나뉘었던 34명의 회원들이 모내기를 마치고 나서는 모두 한마음 한뜻이 되어 있었다.

ꡐ두레ꡑ와 ꡐ품앗이ꡑ로 농사일의 고달픔을 이겨냈던 우리 조상들의 공동체 정신을 회원들 스스로가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경지정리가 제대로 안된 논이라 이앙기가 논바닥에 빠져 버려 고생깨나 했지만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함께 일하다 보니 어려운 줄도 몰랐다고 한다. 모내기를 하고 난 이후에는 몇명씩 조를 짜 돌아가면서 논에 나와 잡초를 뽑고 농약을 주었다. 그 결과 잡초만 무성했던 5,000평의 휴경지에서 195가마의 추곡을 거둬들일 수 있었다. 아직 수매는 하지 않았지만 임대료 15가마를 제외하면 800만원의 소득을 올릴 수 있을것 같단다. 이 소득으로 내년도 면천 새마을 일꾼들은 여러가지 사업을 벌일 계획이다.

ꡒ회원 한 사람당 한명의 불우이웃을 돌봐주는 운동을 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도시의 생활협의회와 자매결연을 맺어 농산물 직거래도 할 계획이구요. 물론 내년에도 휴경지 경작사업은 계속하게 될 겁니다. 그래야 꾸준히 사업을 할 수 있으니까요ꡓ

일단 어떠한 직책을 맡게되면 그 직책에 맞는 역할을 꼭 해야한다고 믿는 오연섭 회장은 의욕적으로 내년도 사업계획을 이렇게 설명한다.

일부 새마을조직 상층부의 권력 지향적인 행태들로 인해 ꡐ관변단체ꡑ라는 불명예스러운 이름을 들어야 했던 새마을조직들, 그러나 면천의 새마을 일꾼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전혀 새로운 새마을운동을 일구고 있었다.

<이명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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