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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돈구/공동체와 리더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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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와 리더쉽

이돈구 / 당진신협 부장

연초부터 나라가 몹시 어수선하다. 우리지역 국회의원이 포함된 여당의원의 당적변경으로 시작된 여야의 충돌이 선거자금 사건으로 극한적 대립으로 치딛고 있는 이 시기에 불쌍한 민초로서 진정한 ‘공동체’와 ‘리더’가 그리워진다.
2500년 전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된 민주적 사고방식은 오늘의 우리에게 ‘공동체’와 ‘리더쉽’이라는 단어를 파생시켰다.
‘공동체’는 여러가지 의미로 해석되지만 공동체라고 할 수 있기 위해서는 같이 살고 있다는 것 외에 최소한 다음과 같은 요소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째, 같이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같아야 하며 둘째, 공동의 목표가 있어야 하며 세째, 개인이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가 ‘없어야’ 한다. 이는 공동체가 일개인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해관계의 완전일치나 자유의 제한에도 한계가 있으므로 정도의 문제는 있을 수 있다. 이러한 공동체에서 각 구성원들의 뜻을 모아 융화와 발전을 창출해가는 공동체의 대표가 ‘리더’인데 리더라고 하면 “많은 지식과 힘을 가지고 구성원(Member)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진정한 지도자의 조건으로는 첫째, 구성원 중의 한사람이라야 하며 둘째, 리더와 구성원은 이해관계가 같아야 하며 세째, 리더와 구성원은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결국 진정한 리더는 항상 구성원들과 함께 공유하고 그들의 뜻을 정확히 파악할 때만 가능할 것이다.
이즈음에서 참회하는 심정으로 묻고 싶다. 우리지역 ‘당진’주민들은 공동체의 구성원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으며 우리 손으로 선출한 단체장과 국회의원, 그리고 각 분야의 대표, 지역유지들은 이 불신과 절망의 시대에 우리에게 신뢰와 희망의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진정한 ‘리더’인가 라고.
같은 사장이라고 하더라도 사장이 자신의 명예와 자신, 가족만 생각하고 사원은 회사를 운영하는 도구로 생각하며 회사가 잘되어 덕을 보는 사람이사장 뿐이라면 그 사장은 아무리 앞장서서 애·경사에 찾아다니고 밤새워 폭설을 치우며 깃발을 흔들고 궂은 일을 솔선해서 하더라도 진정한 리더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사장이 회사를 자기만을 위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사장과 사원이 다같이 회사를 바탕으로 하여 행복을 추구하고 있다면 그 사장은 굳이 현장에 나와서 같이 일하지 않더라도 진정한 리더이며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존경받을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정치가 페리클레스는 아테네의 신에 대한 강한 신앙심과 정의심이 있었기 때문에 세계적인 파르테논 신전을 건축할 수 있었고 훌륭한 정치를 하겠다는 신념이 있었기에 세계사에 길이 남는 민주주의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 우리 지역사회는 사회적 병리현상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허무주의를 지나 아노미현상과 이젠 소극적 아파시(무감동, 무관심)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서둘러야 한다. 늦기 전에.
불신과 절망의 늪에 빠진 주민들에게 당적변경이 구국을 위한 결정이었다는 말은 더이상 설득력이 없다. 쓰러져가는 지역경제의 고통 속에 신음하고 폭설로 고통받는 주민들에게 총체적 국가 경제위기 아래서 어쩔 수 없고 나름대로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말은 이웃 자치단체에서 호황을 누리는 것을 보고 있는 주민들을 설득할 수 없다. 하물며 제설작업도 제대로 못하는 무능한 자치단체의 오명을 씻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스의 도시국가(Polis)는 공동체였고 그 왕은 진정한 리더였기 때문에 민주주의가 잘되었던 것이지 조개껍질로 투표를 했기 때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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