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실시간뉴스
편집 : 2024-03-28 10:44 (목)

본문영역

  • 뉴스
  • 입력 2005.12.19 00:00
  • 호수 592

컨테이너 박스안에서 자라는 두 소년가장의 꿈 “소방관 될래요”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합덕읍 상흑리 우정재·근재 형제, 부모님 여의고 단둘이 살림하며 살아

합덕 구양도에 다다를 즈음 오른쪽 들판 한가운데로 곧게뻗은 농로를 따라 하흑마을을 지나면 곧바로 상흑마을이 나온다.  마을회관이 있고 몇채의 농가가 옹기종기 모여있는 이 마을의 맨 가장자리엔 컨테이너박스 한 채가 놓여있다. 소년가장인 우정재(15)·근재(11)형제의 보금자리다. 말이 보금자리지 여름엔 찜통, 겨울엔 냉장고 같은 곳이다. 그런 곳에서 아직 어린 두 형제가 살림까지 하면서 벌써 5년 넘게 단둘이 살고 있다.
정재와 근재의 부모님은 모두 돌아가셨다. 엄마는 근재가 태어난지 백일도 안돼 농사일을 하다 사고로 돌아가셨고 아빠는 엄마가 돌아가신 후 마음을 잡지 못하고 술로 세월을 보내다가 5년전 술때문에 얻은 병으로 끝내 엄마 뒤를 따랐다. 정재가 10살때 근재가 6살때 일이다. 형제는 그때부터 아빠와 살던 컨테이너박스를 떠나지 않은 채 둘이 살림을 하면서 살아왔다. 그곳에서 밥도 해먹고 잠도 자고 학교도 다니고 있다. 가까이에 큰아버지댁이 있지만 두 형제를 맡아 키울 형편이 못된다. 형제도 그런 형편을 알고 있고 그래서 자기들끼리의 생활을 선택했다. 지금 정재는 중학교 2학년, 근재는 초등학교 4학년이다.

위풍센 컨테이너 박스가 보금자리

눈보라가 세차던 19일 저녁, 정재네 살림살이를 살짝 들여다보았다. 컨테이너박스에서 어린 두형제가 살고 있다는 소식은 이미 지역에 널리 알려져 형제의 방안에는 이곳저곳에서 후원한 물품들이 많았다. 대형 텔레비전도, 전기장판도 있었고 비록 중고지만 인터넷이 가능한 컴퓨터도 있었다. 어느 봉사 단체에서 담가다 준 김장김치도 있었고 형제의 사진과 함께  용기를 북돋는 편지글도 액자에 넣어져 방안 한켠에서 장식품 역할을 했다. 사내녀석들이다 보니 제때 청소를 안 해 방안이 좀 어지러운 것 말고는 생활하는데 큰 불편은 없어 보이는 살림이었다. 외투를 벗기가 꺼려질 정도로 위풍이 있었지만 기름보일러가 그런대로 방바닥을 덥혀주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티없이 순하고 착한 두 형제의 모습이 어여쁘기만 했다.

저녁밥 지어놓고 형 기다리는 둘째

정재는 서야중학교 2학년에 재학중이다. 성격이 활달하고 사교적이어서 주위에 친구가 많고 학교에선 4-H 활동도 하고 있다. 사회과목을 좋아하고 성적은 딱 중간이다. 얼마전 여자친구도 생겼다. 역사책 읽는 것을 좋아하고 장래희망은 사회선생님이 되는 것이라고 한다.
“전 소방관이 될거예요.”
형이 뭐라고 말하면  바로 끼어들어 제 생각을 말하는 근재. 근재가 소방관을 꿈꾸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어렸을 적 촛불 장난을 하다 살던 집을 몽땅 태워버렸기 때문이다. 지금 컨테이너박스에서 살게 된 것도 그때의 불장난 때문이었는데 그래서 근재는 소방관이 되어 다시는 그런 일이 없게 하고 싶은 것이다.
근재는 얼마전 사회시험에서 한개만 틀리고 다 맞았다며 자랑이다. 형을 닮아 사회를 잘하는 근재다. 가장 자신없는 과목은 국어. 받침을 곧잘 틀리고 읽는 게 아직 서투르다. 학원에 다닐수만 있다면 국어 학원엘 꼭 가겠단다. 우리말을 제대로 쓰지 못하게 될까봐 스스로도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세상에 하나뿐인 형. 하나뿐인 동생이지만 컴퓨터를 놓고 서로 먼저하려고 두 형제는 곧잘 싸운다. 그래서 근재는 용돈이 생긴다면 컴퓨터를 사고 싶다. 정재는 같은반 아이들 대부분이 갖고 있는 핸드폰이 가장 갖고 싶다. 라면을 끓여달라고 해놓고는 정작 끓여주면 먹지 않는 얄미운 동생을 쥐어박을때도 있지만 두 형제는 하나라도 없으면 못 살 한 몸이다. 서로에게 유일한 기둥이다. 근재는 자신보다 늦게 들어오는 형을 대신해 저녁밥을 지어놓는 착한 동생이고 정재는 학교갈 시간이 다 되어도 일어날 줄 모르는 늦잠꾸러기 동생을 깨워 학교에 보내는 아빠같은 형이다.

엄마의 잔소리가 필요한 아이들

“비오는 날 아빠 차타고 집에 가는 애들 볼 때 아빠 생각나구요 아플때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어요”(근재)
“시험 끝나고 부모님한테 용돈 받아 놀러가는 친구들 볼때 부러워요.”(정재)
제때 밥을 챙겨먹지 못해서인지 근재는 자주 감기에 걸린다. 아침밥은 거르는게 일상화되었고 저녁은 군것질로 대신하거나 어쩌다 생각나면 해먹는다. 쌀이, 반찬이 없어서가 아니라 귀찮아서다. 학교에서 먹는 점심급식이 두 형제의 유일한 영양공급원인 셈이다.
이 두 형제에게 필요한건 규칙적인 식사를 하도록 하는 엄마의 잔소리 같은 관심과 아플 때 토닥여주는 따뜻한 손길이었다.

 

저작권자 © 당진시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5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