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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6.01.16 00:00
  • 호수 596

험난한 세상, 짐이 되고 힘이 되어 사는 母子(모자) 환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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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없으면 나 거지야, 엄마 오래 살아라”, 간염에 위절제술 투병중인 60대 노모와 엄마만 바라보고 사는 30대 1급 정신장애 외아들

 당진읍 어딘가에 정신장애 아들을 둔, 한 나이든 어머니가 큰 병에 걸려 고생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집을 찾았다. 두 식구가 사는 곳은 당진읍 개나리연립 B동 201호. 
 많이 낡고 작긴 했지만 겉으로 보기에 그 집은 여느 연립주택과 다를 바 없이 평범하기만 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 동안에도 특이한 것을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주위로부터 들을 때 상황이 이쯤되면 이만큼 누추하리라 짐작했던 것에 비하면 현관을 들어서면서 느낀 그 집은 단촐한 살림이 정갈히 정리되어 있는 곳이었다.
 궁색한 살림에 함부로 기름을 때기 아까웠을 손바닥만한 거실은 손님을 위해 일부러 데워져 있을 만큼 살가웠다. 천정에 잇닿은 벽에 곰팡이가 슬었는지 새 벽지 대신 신문지들이 붙어있는 것과 바람 한점이라도 막아보려고 청테이프를 둘러놓은 베란다쪽 문, 그리고 다른 집에서는 다과상으로나 쓸 법한 작은 밥상 하나만 눈에 들어오는 점이 이집 식구들의 빈궁한 살림을 말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얼마간 빈궁하긴 해도 결코 옹색해 보이지는 않았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조준자(60세)씨는 자리에 앉아 거실에 깔아놓은 이불을 손님의 무릎 위로 덮어주며 자신도 끌어다 무릎 위에 덮었다. 아무리 겨울이지만 실내에서도 조준자씨는 두터운 목티에 털조끼, 두툼한 덧버선까지 챙겨신고 있었다. 창백하고 힘이 하나도 없어보이는 어머니 조준자씨는 정신장애 1급인 아들 허명수(30세)씨가 내복바람으로 무심하게 거실을 지나 작은 방으로 들어가고 나서야 조심조심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연인 즉, 조준자씨는 불과 석달 전인 지난 2005년 10월20일, ‘위장관 간질성 종양’이라는 질환으로 위장을 10Cm나 절제하는 대수술을 받았다. 요즘 세상에 종양은 흔하디흔해 누구하나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 병이지만 조준자씨의 가족관계와 형편을 보면 그렇지 않다. 기댈 사람이라고는 아들 하나뿐인데 이 아들은 엄마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환자인 데다 5년전부터는 엄마 조준자씨마저 간염을 앓고 있어 일도 못하고 영세민지원금으로 근근이 살아가고 있는 처지였던 것이다.
 이런 처지에 갑자기 닥친 위절제수술은 이미 약해질대로 약해진 조씨의 몸에만이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가족적으로도 그야말로 암담한 지옥을 예고하는 일이었다.
 아니나다를까. 복부에 심한 통증을 느껴 병원으로부터 입원수술하라는 권고를 받은 후에도 조씨는 열흘 넘게 침상에 누워 그 통증과 싸우며 생으로 견딜 수 밖에 없었다. 가진 돈은 없고, 열흘만에 멀리서 육촌조카가 소식을 듣고 올 때까지 누구 하나 수술 보증을 서 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구사일생으로 수술에 들어갔다가 병실로 나왔을 때 그녀에게도 희망이 없었고, 그녀에게서 삶의 희망을 본 사람도 없었다. 간염과 질병방치로 이미 약해진 몸, 양쪽 옆구리로 쏟아져나오는 피, 간호는 고사하고 차마 집에 혼자 둘 수 없어 병실로 불러들여 먹이고 재우는 아들 명수, 전세금을 저당잡혀 마련한 천만원이 넘는 빚....
 “너무나 아팠고, 살 희망이 없어 보였어요. 사람들도 그렇게 본 것 같아요. 이제 아들 명수가 불쌍해서 어떡하냐고 돌려서 말하긴 했지만요.”   
 “아무리 인생길이 험하다고 저만큼 고초를 겪은 사람이 또 있을까요? 우리 아들처럼 불쌍한 애가 또 있을까요? 나이 일곱 살에 트럭에 치었는데 운전수가 아주 죽여버릴 심산으로 깔고 지나가는 바람에 창자를 다 쏟아냈던 아이예요. 쟤를 업고 돌아다니며 안해본 일이 없어요. 정말 열심히 살았어요.
 그런데 명수가 스무살이 넘어서 아파트 전세도 얻고 이젠 한시름 놓을려나부다 할 때였어요. 명수가 이상해져 있었어요. 모르는 사이에 우울증 같은 병이 악화돼서 병원에 입원할 만큼 되어버린 거예요. 저 착하고 잘생긴 애한테 정신장애 1급 진단이 나왔어요. 그 뒤로 5년넘게 정신병원에 다니면서 우리아들 면회를 하고 나올 때마다 병원 현관에 주저앉아 통곡을 했습니다. 언제까지 이렇게 시련을 겪어야 하는지 땅을 치며 울었어요. 너무 괴로워서, 이대로 죽으면 괴로움도 끝날 거 같아서 죽으려고 한 적도 많았어요. 눈물없이 잠든 날이 하루라도 있었겠어요. 지금은 조금 나아졌지만 저도 한동안 우울증을 심하게 앓았어요.” 
 몇마디 이야기에 지쳤는지 수술한 배를 쓸어내며 어머니 조준자씨는 이제는 말라 나오지도 않는 눈물 대신 힘없이 가느다란 한숨을 내쉬었다. 수술 후에라도 잘 쉬어야 하는데 빚 걱정에, 추위 걱정에, 아들 걱정에 끼니때마다 일어나 거동해야 하는 어머니는 온몸이 쑤시고 결리고 기운없어 늘 녹초다. 이러다 의식이 까무룩해지면 어쩔 수 없이 또 병원신세를 진 게 수술 후에도 여러 번이었다.
 “그래도 지금은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감리교회와 개나리연립 이웃들이 모금도 해주고 간간이 죽도 끓여다주고 해서 이렇게 살아있습니다. 고맙지요. 너무 고맙지요. 그런데 그렇게 마음을 먹어도 기운없이 쓰러져 있다보면 지금도 가끔은 사는 걸 놓아버리고 싶을 때가 있어요. 그러면 안되는데 말이에요.”
 조준자씨가 걱정하는 것은 아직도 다 갚지 못한 빚 때문이다. 가진 것은 없어도 염치있게 살아왔고, 어려운 사람 보면 외면하지 않았고, 공공근로건 남의 일이건 내 일처럼 요령 안피우고 열심히 일하며 떳떳하게 살아왔다.
 그런데 아직도 갚지 못한 빚이 늘 마음에 걸리는 것이다. 추운 겨울인데 자꾸만 말썽을 부리는 보일러도 심신이 아프고 지친 그녀를 불안하게 한다.
 타향도 아닌 이곳 당진. 고향이 코앞에 있는 ‘성구미’지만 부모도, 형제도 다 세상을 떠나 이제 의지할 데라곤 한군데도 없는 조준자씨. 그녀의 소원은 남은 빚 갚고, 빚 때문에 저당잡힌 얼마 안되는 전세금이라도 찾아 컨테이너박스라도 하나 얻어서 아들하고 저하고 남의 눈치 안보고 사는 것이다. 그것이 가진 것 없이 일평생을 살았어도 사람답게 살고팠던 그녀의 소망이다. 지금도 아픈 몸 때문에 사람도리 못하고 사는 게 여간 답답한 게 아니다.
 조준자씨에게 이제 가족이라고는 아들 명수씨 뿐이다. 어려서 순하고 총기가 있어 시키는 일도 곧잘 하고 특히 기계다루는 일을 잘했지만 정신병이 발병한 20대로 넘어서면서부터는 어디 변변히 취직할 수도 없었다. 명수씨의 질환은 다른 사람을 괴롭히거나 힘들게 하지는 않아도 한가지 일에 대한 지나친 집착 때문에 수시로 현실세계와 상상세계를 구분하지 못한다는 문제가 있다.
 요즘도 핵무기와 관련된 공상을 현실로 착각해 본인뿐 아니라 엄마 조준자씨도 밤잠을 설쳐야 하는 때가 많다. 그러니 수술 회복이 될 리가 없는 것이다. 그럴 때는 불현듯 아들이 주는 짐이 무겁기도 하다.
 게다가 시도때도 없이 경찰서에 전화해 “핵무기×××가 나타났다”고 다급히 신고하는 바람에 여러번 경찰서 신세를 지기도 한다. 그래도 어머니는 착한 아들이 살갑고 그만큼 눈물겹다.
 “그래도 요즘은 이만하기가 다행입니다. 이녀석 때문에라도 좀 더 살아야 하는데... 걔가 말이 없다가도 가끔씩 제 손도 쓰다듬고 머리며 어깨를 주물러주면서 이렇게 말해요.”

 “엄마. 엄마는 오래 살아라. 엄마 없으면 난 거지다. 그러니 엄마는 꼭 오래오래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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