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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6.04.03 00:00
  • 호수 607

아픔딛고 제2의 인생 사는 자활센터의 두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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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차연씨


“내 아픔은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장애아동 통학보조교사로 활약하는 공차연씨

공차연(송악면 영천리)씨가 하는 일은 정신지체 장애인인 ‘샬롬이’의 학교생활을 돕는 일이다. 올해 신평중학교에 입학한 샬롬이는 정신지체2급으로 발달정도가 일곱살 어린이 수준이다. 공차연씨는 샬롬이의 통학길을 함께하는 것에서부터 화장실가기, 과제물챙기기, 식사하기 등 샬롬이가 아직 혼자해내기 어려운 일들을 곁에서 돕는다. 그러나 보다 궁극적인 역할은 장애학생과 비장애학생이 서로 동등한 인격체로 어울리며 학교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이다.
공씨는 국가로부터 일정 금액의 보수를 받으면서 이 일을 하고 있다. 공씨 자신도 아직은 홀로설 수 없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공씨의 남편은 경찰이었다. 운동을 잘했던 남편은 공직생활을 청산하고 서울에 큰 헬스클럽을 차렸다. 그런데 아이엠에프가 터지면서 사업장은 부도가 났고 가지고 있던 집이며 재산을 모두 날리고 길바닥에 나앉게 됐다.
공씨가 당진에 온 건 5년 전, 장애인 자녀를 두고 있던 이웃사람이 시골에 내려가 함께 살자고 제안해 처음으로 당진땅을 밟게 됐다. 남편은 부도로 얻은 스트레스로 갑상선 암에 걸려 제대로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됐고 전업주부로 집안에서만 살았던 공씨는 시어머니와 남편, 두 아들의 뒷바라지를 담당해야 하는 가장이 되었다. 벼랑끝에서 공씨는 아는 사람의 소개로 당진군자활후견센터에 들어와 간병 일을 배우게 됐다. 그리고 병든 무의탁 노인의 집을 매일 방문해 간병을 해주는 일이 그에게 맨 처음 맡겨진 일이었다.
“이 일을 하면서 나보다 더 어려운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알게 됐어요. 센터에 나오는 주부들 중에는 이혼이나 가정파탄으로 상처를 입은 분들이 많아요. 그 분들을 보면서 아, 나는 비록 돈은 잃었지만 가족을 잃진 않았구나. 사람을 잃는 것이 돈을 잃는 것보다 훨씬 큰 상처가 된다는 것을 알았고 내 아픔이 아무 것도 아님을 알았지요. 거기서 위안과 용기를 얻었습니다.”
누굴 위해서 일을 한다는 것이 큰 기쁨이고 자신보다 못한 사람들을 위해 봉사할 때 힘이 된다는 것도 알게 됐다.
빈 농가를 얻어 살고 있는 공씨는 앞으로 방이라도 한 칸 더 달린 집을 구하게 된다면  무의탁 어르신들 몇 분을 모시고 함께 사는 것이 꿈이라고 한다.

 

“잠재돼 있던 나의 능력 알게 됐어요” 
경노당 돌며 레크리에이션 봉사하는 전은주씨

“누구 앞에 선다는 것은 엄두도 못냈어요. 말도 제대로 못했었죠. 그런데 지금은 나 자신도 놀랄 정도로 바뀌었어요. 내 안에 잠재되어 있던 끼를 발견하게 된 거죠.”
당진군 자활후견센터의 은빛보라미 사업단에서 활동 중인 전은주(순성면 봉소리)씨는 동료들 사이에서 못하는 게 없는 사람으로 손꼽힌다. 은빛보라미 사업단은 하루에 두 군데씩 일주일에 10여군데의 경노당을 방문해 건강체조도 가르쳐주고 노래와 율동 등 레크리에이션을 통해 무료한 노인들에게 기쁨과 건강을 안겨주는 봉사활동이다.
그가 하는 일은 밝고 역동적이지만 이 일을 하기까지 전씨는 긴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직장을 그만두고 시작한 사업이 잘못되는 바람에 여기저기서 카드빚을 얻어 썼고 남편과 전씨 모두 신용불량자가 되었다. 사채까지 얻어 쓰게 된 님편은 빚독촉을 피하기 위해 집을 나갔고 아직까지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전씨는 오전 9시30분이면 센터에 출근해 같은 팀원들과 그날 활동계획을 짜고 율동연습을 한 다음 경노당에 나가 노인들을 만난다. 갈때는 부담감이 들때도 더러 있지만 일단 노인분들을 만나고 돌아올땐 마음이 짠하다는 전씨.
“한번은 소망의 집으로 봉사활동을 간 적이 있었는데 치매증상이 있으신 한 할머니가 저를 따님으로 잘못 알고 이름을 부르시며 반가워하시는데 코끝이 찡했어요. 사실 예전엔 무의탁 노인들이나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어요. 내 가족만 챙기는 이기적인 사람이었는데.. 막상 제가 밑바닥까지 내려가 보니 어려운 사람들의 삶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더라구요.
전씨는 한달에 한번씩 아이들을 데리고 복지시설 등을 방문해 레크리에이션 봉사활동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수화통역 봉사를 위해 수화를 배우고 있으며 여건이 허락된다면 사회복지학 공부를 해서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의미있는 일을 하고 싶다고 한다. 전씨가 이일을 하고 나서 달라진 것은 성격뿐 아니라 꿈도 많아 졌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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