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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1.01.15 00:00
  • 호수 354

고개숙인 아이들, 고개드는 반사회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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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하는 초등학생, 도벽-체벌 악순환 속의 아이

고개숙인 아이들, 고개드는 반사회성

노숙하는 초등학생, 도벽-체벌 악순환 속의 아이

고리 끊으려면 전문가와 원인치료·가족치료를

아버지의 구타에 가출해 노숙 일삼는 10세 소녀

초등학교 2학년인 ○○○(여) 어린이는 이른 추위가 한창 극성을 부리던 지난 12월 초의 어느날 아침, 당진읍 인근의 어느 면소재지 길가에서 순찰중이던 경찰에 발견되었다. 이때 이 어린이는 길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얇은 봄잠바 차림이었다. 아이는 학교 담임선생님께로 인도되었고 며칠 뒤 선생님 손에 이끌려 당진군청소년상담실로 찾아왔다.

아이가 노숙을 한 것은 이날 만이 아니었다. 아이는 이날 경찰에 발견되어 선생님께 인도되기까지 이미 한달간을 가출해 노숙을 해온 것이다. 이 한달동안 아이가 학교에 가지 않은 것은 물론이다. 아이는 이곳 저곳을 떠돌아 다니며 숙식을 해결했다. 낮에는 안면있는 친구 집에서 식사를 해결하고 밤에는 아파트 지하 같은 곳에서 닥치는 대로 아무거나 덮고 잠을 잤다.

아이는 전에도, 또 그 전에도 가출과 결석, 노숙을 여러번 해왔지만 그 사이에 아이를 찾아나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초등학교 2학년의 노숙자. 학교를 1년 늦게 들어가 또래보다 한살이 더 많은 열살이었지만 아직 따뜻한 아랫목에서 부모에게 투정을 부리고 있을 나이에 추운 길에서 혼자 잠을 자야했던 이 아이에게는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일까?

나이 삼십초반인 아이의 아버지는 번듯한 직업은 아니지만 벌이는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잦은 폭력으로 아내가 가출한 뒤 새 아내를 얻었으나 번번이 폭력을 휘둘러 아내 또한 자주 바뀌었다. 단칸방에서 자주 바뀌는 젊은 새엄마와 아버지와 함께 지내야 했던 아이의 정서는 짐작할 만하다. 말을 안듣고 거짓말을 한다는 이유로 아이는 자주 매를 맞았다. 그리고 아버지가 무서울 때면 아예 이렇게 집을 나와버리는 것이다. 어렸을 때에는 ‘영아원’에 맡겨진 경험도 있었다. 아이는 오랫동안 이런 불안정한 환경에 적응이 되면서 순진함이나 정직성을 많이 잃어버렸다. 아이는 심한 불안감으로 얼마나 깨물었던지 손톱이 절반도 남지 않은 모습이었다.



관심끌기에서 비롯된 도벽, 공포의 체벌과 함께 악순환



초등학교 5학년인 ○○○(남) 어린이는 어려서부터 습관적인 도벽이 있었다. 학교나 친구집에서 만원, 2만원 훔치던 것이 점점 액수와 횟수가 많아졌다. 들킬 때마다 아버지에게 곤죽이 되도록 얻어맞았지만 아이의 도벽은 사라지지 않았다. 최근에 이 아이는 친구 아버지의 바지에서 12만원을 훔쳤다가 들켰다. 아이가 상담실을 찾았을 때에는 아버지의 체벌로 귀와 입술, 팔뚝 같은 데에 피멍이 들어 잔뜩 부어있는 상태였다.

다행히도 아이의 어머니, 아버지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보기로 하고 상담실의 문을 두드렸다.

아이의 아버지는 공사현장에서 일하는 분이었고 어머니는 아버지를 돕느라고 집을 비워 아이 둘은 늘 집에 방치된 상태였다. 한번 화가 나면 불같이 화를 내는 아버지는 아이에게 문제가 생길 때마다 방문을 안에서 닫아걸고 아이에게 혹독한 체벌을 가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기세에 눌려 아무리 심한 매질을 해도 무기력하게 바라보기만 하였다. 문제는 이러한 극단적인 방법을 되풀이하고 아이 역시 공포에 질려있으면서도 도벽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주먹부터 나가는 아이, 자기를 나쁜 아이라고 생각하는 아이



위처럼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 경우는 아니라 하더라도 우리 주위에 고개를 숙인 아이들은 많다.

초등학교 4학년인 ○○○(남) 어린이는 ‘싸움꾼’으로 친구들 사이에 정평이 나 있는 아이. 누구든 자기 마음에 들지 않거나 자기의 비위를 틀리게 하거나 실수로 건드리기만 해도 이유 불문하고 주먹부터 나간다. 분노를 자제하지 못하는 공격적인 아이, 자연히 교우관계가 좋을 리 없었다. 친구 부모들로부터 항의를 받는 아이의 부모는 화가 난 나머지 호되게 아이를 때리지만 그럴수록 아이의 분노는 더 크게 마음 속에 자리잡고 공격성도 더 커진다.

초등학교 3학년인 ○○○(남) 어린이는 똘똘함에도 불구하고 턱없이 자신감이 부족한 아이.

누가 자기를 칭찬하면 냉소적인 표정을 짓고 자기가 나쁜 아이라는 생각을 확고한 신념처럼 가지고 있는 아이다. 이 아이의 머리 속에는 평소 가족과 주위 어른들이 화가 나서 자신에게 던진 부정적인 말들로 만들어진 이미지가 가득 고여있다. 아이의 엄마는 아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 말하는 내용이 언젠가 엄마가 화가 나서 던진 말들 그대로인 것을 듣고 가슴이 철렁했다.



아이들의 문제행동, 부모 자신에게서 원인 찾아야



가출, 노숙, 도벽과 같은 심각한 행동 단계에서부터 공격성, 피해의식에 이르기까지 아이들의 문제는 그야말로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원인은 한가지라는 게 전문가들의 말이다.

상담심리학 석사이며 상담사로 활동중인 김남철(42세) 목사는 프로이드 심리학 이론보다 한층 더 깊어진 ‘대상관계 이론’을 토대로 “아이들의 의식과 정서 및 행동양식은 최초의 인간관계인 엄마와의 관계를 통해서 형성되며 가장 접촉이 빈번한 가족들을 통해 강화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당진군 청소년상담실의 이영근 전임상담원도 “아이의 문제행동과 문제정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부모의 정서와 행동의 특징을 먼저 이해해야 하며 부모가 자신의 문제를 이해하고 변해야만 아이의 문제행동도 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작 아이들의 문제행동이 심각한 까닭은 문제행동의 근본원인인 대상관계(즉 부모와의 관계)가 조금이라도 개선되지 않는 한 아이들은 그대로 반사회적인 문제‘성인’으로 성장해간다는 것이다.

김남철 목사는 “이 아이들이 계속 지금의 환경에서 살아간다면 성인이 되어서 상실감과 피해의식으로 인간관계를 제대로 맺지 못하고 결국 사회에 대한 보복심리를 키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열살의 나이에 가출과 노숙을 할 수밖에 없었던 여자이이의 경우 아버지의 폭력은 아이의 행동에 대한 결과라기 보다는 아이의 행동을 유발한 원인이라고 보아야 하며 당장 부모의 협조를 기대하기 어려운 아이의 환경을 볼 때 교사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고 이영근씨는 말했다.

매일 한마디씩 다정한 말을 건네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자포자기’라는 최악의 상태로는 치닫지 않을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물론 최선의 방법은 ‘사랑’이 있는 좀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도벽이 있었던 ○ 어린이의 경우는 다행히 부모가 자신들의 한계를 인정하고 해결의 의지를 갖고 전문기관을 찾은 덕택에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진단과 함께 해결의 길을 찾을 수 있었다.

이 어린이의 가족이 받은 상담은 여러가지였지만 특히 그림치료였다. 가족 각자가 그린 그림을 통해 각자의 내면의 문제와 성장과정에서의 부모 자녀 관계가 드러났다. 어린이의 부모는 모두 자녀에 대한 존중과 배려, 사랑 대신에 무관심과 엄격함이 지배하는 가정에서 자랐으며 이러한 부모의 정서는 다시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아이는 소극적이고 의기소침한 성격으로 친구들 사이에서 ‘왕따’를 당하게 되고 아이는 그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돈을 훔쳐서라도 친구들의 환심을 사려했던 것이다. 아이의 그림속에 죽음의 공포로 그려진 아버지의 무서운 체벌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세상 어딘가에 기댈 곳을 만들기 위헤 다시 친구들의 환심을 사야만 했고 그래서 또다시 훔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의 도벽은 부모가 안전한 보호처가 되어주지 못했기 때문에 빚어지고, ‘이해’없는 극단적인 체벌로 더욱 확대된 문제였던 것이다.

그러나 체벌 이전에 사랑과 관심이 필요하다는 이들 부모의 눈물어린 반성과 지속적인 참여로 아버지와 아들은 서로 마음을 열게 되고 마음으로부터 서로 화해해 6회만에 상담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아이가 사춘기를 맞기 전에 이런 과정을 거치게 된 것은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한다.



보여주지 않는 사랑 효력없어, 책 읽어주기도 방법



맞벌이와 분주함으로 대표되는 생활유형 속에서 많은 아이들이 부모의 부재 속에서 살고 있다. 사랑의 품앗이가 가능했던 대가족 대신 핵가족 속에 고립되면서 이런 현상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늘 부모들은 자녀를 사랑한다고 생각하지만 자녀의 입장에서 볼 때 부모는 일터에서 돌아와 지치고 짜증내고 자녀의 사정은 안중에도 없이 벌부터 주는 몰인정하고 무서운 사람인지도 모른다. 이 기초적인 인간관계의 왜곡은 의지처가 필요한 아이들에게 수많은 유혹을 제공한다.

보여주지 않는 사랑은 사랑의 효력을 갖지 못한다. 시간을 내고 관심을 갖고 이야기를 듣고... 사랑은 이렇게 보여지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아이의 문제와 부모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진단하기는 어려우므로 전문가와의 상담이 가장 바람직하다.

또 ‘동화읽는 어른 모임’을 발족한 임수현씨는 짧은 시간을 내어 꾸준히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것만으로도 부족한 사랑을 메울 수 있을 것이라고 권한다.

아무리 짧은 시간이라도 아이를 위해 집중한다면 사랑이 전달되고 교감이 이루어져 문제해결의 실마리가 점차 풀려갈 것이라고.

클린턴 부부가 수치스러운 섹스스캔들에 휘말려 있을 때에도 딸 K가 흔들리지 않은 건 ‘잠들기 전에 책을 읽어주던 좋은 아버지가 기억에 저장되어 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김태숙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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