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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6.10.23 00:00
  • 호수 634

제30회 상록문화제 주부백일장 대상작 [산문대상] 마흔한 살에 찾아온 사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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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군 송산면 유곡리 중명A 103/1503 천순란


도시를 벗어나 이곳으로 이사 온 지 어느새 7개월이 흘렀고, 난 이곳에서 봄여름을 지나 가을의 한 중간쯤에 머무르고 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송산면은 당진의 어느 다른 면 보다는 작지만 나를 무척 설레   이게 만든 곳이고 중년의 사춘기를 맞이하게 한 곳이다.
여기로 이사 오기 전 많은 것들이 나를 무척 두려워하게 했고 갈등하게 했었다.
제일 나를 두렵게 한 것은 애들의 교육문제. 도시문화와 동떨어져 있는 환경.
처음 이사 와서 잠깐은 힘들었지만 지금 우리 가족은 모두 이 시골생활에 조금씩 조금씩 젖어가며 색다른 행복을 느끼고 있다.
먼저 내 고장 송산면은 작고 작은 산들 굽이굽이 만들어진 길과 바다가 있어 작은 포구들이 여러 개 있고 논과 밭이 어우러진 작은 마을들...
큰 애가 다니는 송산중학교는 전학생이 150명도 되지 않지만 언덕에 자리 잡고 있는 아담한 학교. 그 앞에는 우리가 책이나 어떠한 사진 등에서 한번쯤은 본 500년이 넘은 회화나무가 듬직하게 버티고 있고 차를 타고 차창 밖으로 보이는 경치는 늘 내 가슴을 뛰게 한다.
봄엔 개나리, 진달래, 이름 모를 꽃들 동곡리 쪽으로 넘어 가다보면 배 밭이 있어 하얀 배꽃이 햇빛과 함께 나비 떼가 노니는 것 같고, 여름엔 장미와 키 작은 앉은뱅이 꽃들, 장다리 해바라기, 붉은 접시꽃, 하얀 감자 꽃, 밤엔 밤꽃냄새가 어둠 속에 자리하고 지금 이 가을엔 벼가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고 노오란 황금물결 붉게붉게 물들인 고추밭, 고소하고 향긋한 깨 냄새, 마을 집집마다 커다란 감나무들. 초록과 옅은 밤색 사이에 농익은 처녀의 모습처럼 주홍빛으로 물들이고 달려있는 감나무들을 해가 질 때 보고 있노라면 한쪽 가슴에서 애잔함이 밀려온다.
성구미로 가는 길목 옆에 불그스름하게 주렁주렁 열려있는 사과들. 그 향이 내 온몸을 휘감곤 한다.
길 양쪽으로 코스모스, 글라디올라스, 맨드라미 내 어렸을 적 아주 어렸을 적에 본 것들을 지금 난 맘껏 보고 즐긴다.
그 어느 누가 이러한 그림 속에 설레이지 않겠는가?
가끔 시간을 내어 성구미를 찾아간다.
바다를 유난히 좋아하는 아이들은 여름엔 그곳에서 많이 지냈고 지금은 저녁 무렵 해지는 모습에 반하여 즐겨 찾는다.
빠알갛게 이글거리는 붉은 노을을 보지 못하고선 그 느낌은 말로 설명 할 수 없고... 이러한 것만이 나를 설레이게 하는 것은 아니고 정말 나를 설레이게 하는 것은 시골생활에 조금씩 젖어들면서 하나하나 배워가는 농사일, 그 동안 주위 사람들에게 받기만 하고 살았는데 이젠 뭔가를 나누어 줄 수 있다는 것, 이것들을 준비하는 동안 많은 행복을 느낀다.
초여름엔 마늘쫑을, 여름엔 감자도 캐고, 마늘도 캐서 흙 털어 다듬고, 요즘은 고추도 따서 말리고, 깻잎도 따고, 고구마순도 따고 고구마도 캐고...
도시에서 집으로 놀러오는 지인들에게 고추 밀가루 묻혀 쪄서 말린 것을 양파주머니에 담아 예쁜 리본 달아주고, 깻잎 짱아찌 예쁜 병에 담아주니 얼마나 행복해하는지 감탄이 끊이질 않는다. 그 모습에 다시 감사함을 느끼고 행복해 한다. 이런 나의 생활은 십대에 찾아온 사춘기와는 다르게 설레임과 뭉클함, 그리고 삼십대를 지나면서는 잊어버리고 살아온 잔잔한 평화다.
십대에 사춘기와 그 무엇에 대한 열정과 도전이 함께 했다면 지금 내 나이 마흔한 살에 찾아온 사춘기는 나를 다시 돌아보게 하며 나만이 아닌 다른 누군가를 배려할 수 있게 만드는 사춘기임에 틀림없다.
우리 아이들이 이러한 큰 자연의 축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앞으로 다가올 겨울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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