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칼럼] 호천웅 신성대학 교수 수필가-어떤 기러기 아빠의 사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 사건이 오래 전에 있었던 한 선배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했다.
 남매를 유학보내면서 부인도 같이 미국생활을 하게 했다.
 혼자서 기러기 아빠 생활을 수년간하다 보니 내가 왜 이렇게 사는가싶은 생각이 들어 가족과 함께 살기로 결심했다.
 직장을 그만두고 재산을 정리해서 미국으로 가보니 웬 미국 남자가 거기서 가족과 함께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부인 말이 어쩌다 만나 여러 가지 도움을 받다보니 정이 들어 동거한지가 꽤 오래됐다는 얘기였다.
 그러면서 미안하지만 당신과 헤어질 수밖에 없으니 용서해달라는 것이었다.
 아이들을 불러 놓고 엄마와 헤어져야겠으니 너희들은 아버지와 함께 한국으로 돌아가자고 했다.
 아이들의 얘기가 더 충격적이었다. 미국 생활이 재미있고 무뚝뚝하기만 한 아빠보다는 공원에서 함께 뒹굴고 야구도 하며 재미있게 놀아주는 미국인 아저씨가 좋다며 이대로 미국서 살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얼마 후 한 친구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친구의 아들과 딸이 유학중이며 부인도 함께 미국에 살고 있다는 얘기를 듣게 됐다. 얼근히 취한 탓에 그 선배 이야기가 튀어나왔고 순간 황당해하던 친구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날밤 그 친구는 바로 미국으로 전화해 아들은 하던 공부를 계속하되 부인과 딸은 바로 귀국하라는 소환 명령을 내렸다고 했다.
 남의 말을 쉽게 하는 게 아닌데 아차 했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 아들은 미국 대학을 졸업하고 캐나다에 정착했으며 유학을 중단한 딸은 영어 강사로 일하면서 결혼해 나름대로 행복하게 산다고 한다.
 많은 기러기 아빠들의 헌신과 희생에도 불구하고 해외 연수나 유학이 성공하지 못하는 일도 적지 않다. 자녀의 해외 유학으로 가정이 깨어지고 삶이 엉망이 된 경우는 부지기수이며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글로벌시대를 살아가는데 해외 연수나 유학의 필요성은 더 커질 것이며 그 숫자도 더 늘어날 것이다.
 많은 문제와 어려움 가운데 가장 근본적인 것이 언어 문제라고 한다.
 현지 적응이나 정서적인 어려움을 겪게 되는 가장 큰 이유도 외국에서 말을 잘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얘기이다.
 외국어를 배우기 위해서는 그 나라에 가서 배우는 것이 최상의 방법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길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영국 특파원을 지낸 한 후배 얘기다.
 외국 여행 한번 한 적이 없던 대학 시절 어느 세미나에서 만난 미국인 교수와 토론했는데 세미나가 끝난 후 미국인 교수가 그 학생처럼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사람은 미국에서도 보기가 힘들 정도라고 극찬했다고 한다.
 그가 공부하던 시절보다는 요즘 한국에서 영어공부를 할 수 있는 여건은 훨씬 좋아졌다.
 많은 돈과 시간을 필요로 하는 학원이 아니라도 인터넷 등의 미디어를 통해서 외국의 뉴스를 직접 듣거나 영화나 드라마도 접할 수 있으며 외국인과의 접촉을 통해서 외국어를 단련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1년에 수천만원씩 드는 유학 경비 등을 감안할 때 바람직한 영어 학습의 한 방편으로 등장한 영어마을이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사실은 안타까운 일 중의 하나다.
 어떤 방법으로든 효과적으로 한국에서 외국어를 배우고 연습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하고 운영하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자신이나 자녀를 유학보내려면 먼저 어학 실력을 기르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무작정 가서 성공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영어 단어 하나라도 더 알고 가면 훨씬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 고생한 이들의 경험담이기도 하다.
 말못하고 외국 가서 당하는 어려움과 극복하려는 노력을 한국에서 외국어를 공부하는데 투자한다면 성공하는 외국유학은 담보될 것이다.
 외국어를 배우기 위해서 연수나 유학을 가기보다는 외국어를 어느 정도라도 익힌 다음에 가야 한다는 것이 경험자들의 산 충고다.
 홀로 유학 가서 2년 이상 걸리는 석사과정을 우수한 성적으로 1년에 해치우는 젊은이도 있고 말을 못해서 어머니의 보살핌을 받으면서도 4년의 학사과정을 5년 이상 헤매는 젊은이도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저작권자 © 당진시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5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