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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최동식 당진교육장-5월의 교육 단상(斷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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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교육은 본질적으로 미래를 위한 사업이다. 학생 개개인을 위해서도 그러하거니와 사회와 국가의 차원에서도 그것은 아름답고 찬란한 훗날을 기약하고자 하는 이상주의의 몸부림이다. 교육은 이상주의이며 교육자는 당연히 이상주의자여야 할 것이다.
 교육은 일차적으로 그 자체로서 가치있는 사업이기 때문에 외부의 어떤 실용적인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기능해서는 아니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학교가 지식교육을 충실히 수행해서 지적인 안목을 갖춘 훌륭한 시민을 길러냈다면 학교는 일단 그 임무를 충실히 해낸 것으로 볼 수 있다. 그가 가진 지식이 어떤 사회적 지위와 보수를 보장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교육의 본질과는 무관한 것으로 보아야 하는 것이다.
 학교교육의 목적이 결코 개인의 이기적인 욕구나 실용주의적인 목적을 위한 수단일 수 없음을 인식한다면 이런 논리는 비교적 쉽게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학교는 개인들의 무분별한 이기주의와 실용위주의 천박한 쾌락주의로부터 인류의 문명을 보존하고 발전시키려는 고차원의 문화보호장치인 것이다.
 그러나 현대 교육은 이러한 이상주의적인 본질인식만으로 충분히 설명될 수 없는 측면이 있다. 각종의 테스트에서 우수한 성적을 발휘하고 특별한 재능을 발굴해서 연마하도록 하여 유수한 대학에 입학시키는 일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대학 입학시험 제도의 현실을 비판하고 사교육비 지출에 대한 우려와 걱정의 소리가 높지만 자본주의의 운용원리가 경쟁에 있는 한 결코 경쟁과 고비용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는 일인 것이다.
 학교는 교육 본질에 기초한 이상주의와 현실적인 욕구 충족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동시에 잡아야 하는 지난한 과업에 늘 직면하곤 한다. 인간교육이라는 교육철학의 원리에 충실해야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일도 결코 소홀히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두 마리의 토끼를 한꺼번에 잡는 일을 교육적으로 원만하게 성취하려면 두 가지의 조건이 갖추어져야 할 것이다. 하나는 인간교육의 원리에 충실한 교육풍토를 세운 후에 이를 바탕으로 실용주의적인 목적이 추구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인간교육의 원리를 고려하지 않고 기능적인 목표달성에만 치중하면 이미 교육의 영역을 벗어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페어플레이 정신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는 점이다. 경쟁이 교육적인 배려 위에서 이루어지려면 학교와 학부모 모두가 공정한 게임정신을 지니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페어플레이 정신이 없으면 두 마리 토끼 모두를 놓치게 될 뿐만 아니라 토끼 대신 두더쥐를 잡고 말 가능성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5월에는 특별히 교육을 생각하고 학교교육을 보호하는 일에 관심을 기울였으면 한다. 튼튼한 아이와 허약한 어린이가 함께 어울리고 혹간 경쟁에서 좀 밀렸다 할지라도 페어플레이 정신을 자부할 수 있게 하며 내 아이 뿐만 아니라 모든 아이들 그리고 그들 모두의 장구한 미래를 함께 생각해 보는 넉넉하고 훈훈한 마음으로 5월을 기렸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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