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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윤희정의 도서비평] 아침놀을 향한 좁은 문
도서비평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2016년 03월 18일 () 13:20:40 윤희정 mjmedi@mjmedi.com


‘제기랄! 빌어먹을 칙칙한 골방. 나를 둘러싼 책 더미. 모든 지식의 희뿌연 안개에서 벗어나, 오관을 열고, 가슴을 아침놀에 씻자!’

   
프리드리히 니체 著
정동호 譯
책세상 刊

연금술적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괴테의 「파우스트」 첫 장면을 기억한다. 괴테가 60년에 걸쳐 완성한 대작은 신이 특히 아끼고 사랑하는 파우스트의 깨달음으로 시작한다. 주님의 충실한 종이며 고뇌하는 참 지식인 파우스트는, 우주의 내밀한 원천이자 존재의 근원을 꿰뚫기 위해 인간적 쾌락을 포기했다. 오로지 고뇌하고 또 탐색하는 그는, 종국에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한다. 어느 날, 대우주의 비밀을 담은 상징과 부호를 마주하고 파우스트 박사는 각성에 이른다. 아침놀!

파우스트의 깨달음은 그 뒤, 니체의 외침으로 이어진다. 평생을 어떤 신념에 의해 지하에서 작업했던 니체. 한없이 뚫고, 파내고, 오랫동안 햇볕과 공기, 사람들의 주목을 갖지 못하면서도 어둠 속에서 행해지는 자신의 일에 만족했던 니체는 아침놀을 맞이하게 된다. 니체의 아침놀은 바로 자신의 구원이었고 이는 세상의 아침놀로 번진다. 니체는 지하에서 나오는 날 사람들에게 자신의 아침놀을 반드시 이야기 해주리라 맹세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로 니체는 약속을 지킨다.

30살에 고향을 떠나 구도자의 길로 들어선 예수를 상기시키는 차라투스트라는, 광야에서 40일간 명상에 잠긴 예수와 달리 꼬박 10년 동안 산 속 동굴에 은거한다. 세상에 충격을 준 이 작품에서 니체는 차라투스트라의 입을 빌려 자신의 사상을 설파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는 니체의 핵심 사상이 전부 담겨있다. 모든 인간이 도달해야할 이상적 인간상으로서 위버멘쉬(초인)와 그 유명한 영원회귀사상의 가르침이 펼쳐진다. 차라투스트라는 니체 자신인데, 우주의 원리와 생의 의미를 자각한 니체의 사유를 따라가며, 위대한 깨달음을 마주하는 감격적인 체험 앞에 그 누가 몸을 떨지 않을까.

처절한 고독, 정신적 기쁨의 세월 끝에 인간 세상으로의 몰락을 자처한 차라투스트라에게서 인간을 통과하지 않는 초월은 없음을 새삼 확인한다. 굳이 다시 세속으로 하강을 선택한 차라투스트라는 인간이야말로 참인간의 필수 조건임을 알았다. 우린 이미, 우주와 인간이 따로 흐르지 않음을 예수가 구현한 ‘초월의 공식’에서 목격한 바 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포함하여 니체의 저서를 읽을 때면 나는 니체의 준엄함에 깜짝 놀라곤 한다. 그의 언설 앞에 야단맞는 학생 마냥 부들부들 떤다. 니체는 왜 이런 강경한 문체를 고집했을까. 아마도 몰각성과 나태에 빠져 허우적대는 인간들에게 변화의 시급함을 일깨우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우매함에는 죽비로 내리치는 충격요법이 때론 가장 효과적이다.

인간에 대한 사랑에 눈이 멀어 준비 안 된 자들에게 서둘러 도움 주는 것을 무엇보다 경계했던 니체. 사랑의 실천에서 성급한 애정은 독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글에서 숨길 수 없는 인간에 대한 자애와 연민을 눈치챈다.

자기 자신조차 찾지 못하면서 끊임없이 뭔가를 찾아 나서는 사람들에게 니체의 꾸짖음은 종교와 신앙의 참 본질을 넘어 삶의 의미를 성찰하게 한다. 짐승의 상태와 니체가 궁극의 목표로 상정했던 위버멘쉬의 중간단계에서 헤매고 있는 인간들은, 몰락을 박차고 도약해야한다. 타자(신)에 의해 추동되는 삶에서 벗어나 주체의 의지를 통해 자기를 극복해야함을 니체는 강력하게 주장한다. 위대한 정오를 가진 자만이 찬란한 아침을 맞을 수 있다.

자신을 기다리는 법을 철저하게 습득한 니체는 날고자 하는 자는 서고, 걷고, 달리고, 춤추는 법을 배워야 함을 강조한다. 앎의 지난한 여정을 오롯이 겪어낸 자만이 고양된 영혼이 누리는 충만한 기쁨을 맛볼 수 있음을 말하고 싶었으리라. ‘때가 되면 저절로 주어질 것이다.’라는 말은 치열한 정신에게만 해당됨을, 즉, 일상의 안일과 몽매에 빠져있는 자는 가진 것마저 모두 빼앗길 것임을 니체는 엄혹하게 말한다.

끊임없이 우아할 것. 아무런 특권도, 더 좋은 음식이나 더 맑은 공기도 갖지 않고 보다 가난해지기. 사람들에게 잊힌 싸구려 여관처럼 존재하기. 시기 받지 않을 정도로 비천할 것. 생의 의미를 깨닫고, 존재를 터득하는 데에 필요한 3가지, 군인 같은 생활 습관, 홀로 거주, 신중한 독서를 실천하기. 특히, 남녀의 사랑에 관해, 사유와 고뇌 없이 이루어지는 결혼은 고약한 결합이 될 것임을, 그러한 결혼은 머지않아 개인을 파괴하고 말 것임을 기억하기. 차라투스트라가 주는 조언이다.

높은 돛대 위해서 깜박이는, 비록 작지만 표류하는 사람들에게 큰 위안이 되는 불빛이기를 희망했던 니체. 그럼에도, 자신이 또 하나의 종교, 도그마로서 남길 바라지 않는다.

앙드레 지드의 소설 「좁은 문」에서 알리사가 영혼을 다하여 사랑한 제롬을 향해 부르짖듯, 생명과 깨달음에 이르는 길은 두 사람이 나란히 들어갈 수조차 없이 좁다. 각자의 아침놀을 향한 길은 그토록 좁고 기나긴, 결국 홀로 걸어가야 하는 길임을 위대한 사상가 니체는 자신의 삶으로 터득했다. 그의 자각은 우리의 미망에 불씨를 던져준다. 불씨를 품고, 생성을 이뤄내는 것은 스스로의 몫이다. 누구도 나의 아침놀을 대신 맞이해줄 수 없다. 자, 이제 오관을 열고, 가슴을 아침놀에 씻자. 우리의 지향, 구원의 아침놀을 서둘러 맞이하자. <값 2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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