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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윤희정의 도서비평] 링링의 가난
공선옥의 마흔살의 고백
2016년 04월 29일 () 11:35:45 윤희정 mjmedi@mjmedi.com


가난을 처음 대면한 건 십 수 년 전이다. 중국에서 유학중이었고, 마침 노동절 연휴라 중국인 친구, 링링과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북경에서 그녀의 고향, 내몽고까지는 짜장 멀어 귀향길은 마치 해외여행 같았다. 북경 서역에서 대륙의 인파를 뚫고 올라탄 기차 안에서 나는 남루하고 궁핍 자체인 중국인들을 마주해야 했다.

   
공선옥 著
생활성서상 刊

그들의 까칠하고 서글픈 얼굴은 긴 시간 서서 짊어진 자신의 무거운 짐들만큼이나 서러웠다. 15년도 더 지난 5월의 그 날, 후허하오터역에 발 딛는 착잡한 나를 비추던 내몽고의 어스름한 새벽빛을 기억한다. 하나 뿐인 자식의 외국인 친구를 온 몸으로 환영했던 그녀의 부모의 가난한 식탁과 음식 앞에 나는 또 한 번 서글퍼졌다. 이후, 내 일상으로 돌아와 씻은 듯 잊었으나 마음 밑바닥 한 켠엔 그 때 그 ‘가난’의 서러운 모습이 자리했던 것 같다.

풍요의 시대에 성장한 나는, 가난을 직접 체험하지 않아 고작 한다는 것은 가난을 공부하는 것이다. 주린적 없는 이는 최선을 다해 물질적 결핍을 마음으로 헤아릴 뿐이다.

가난은 무엇이고, 도대체 왜 빚어지는가. 가난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온 삶을 통해 치열하게 가난과 대결하는 사람이 있다. 가난에 의한, 가난을 위한, 가난의 작가 공선옥. 스스로 지독한 가난의 체험자로써 그녀는 정직하게 가난을 고뇌하고 분석한다. 가난한 자들을 양산하고, 가난한 사람을 더욱 가난하게 만드는 부조리한 체제와 구조적 모순을 사유하며 그녀가 내린 최종 결론은 이렇다.

자신이 하는 일(글쓰기)이 체제를 변화시키고, 고통 받는 이들을 구제할 순 없지만 최소한 그들에게 위안이 되어주리라. 비록, 삶과 사회를 바꾸진 못하나 죽을 때까지 빈곤의 본질을 통찰하는데 작가로서의 삶을 바치리라. 그녀의 다짐과 맹세 앞에 숙연해진다. 남보다 크게 소리 내고, 글 한 줄 더 쓰고, 남보다 많은 돈을 벌고, 더 좋은 집에 살며, 좋은 음식을 먹는 것이 그만큼 죄를 짓는 것이리라는 어느 가을 밤 작가의 고백 앞에선 죄인처럼 숨고싶다.

일찍이 소설가 이호철은 「판문점」에서 깜찍하고 영리한 북한 여기자의 입을 빌려 “자유 이전에 정의가 있어야한다. 자유는 반드시 도덕과 결부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 자유는 검불이며, 흐느적거리고 감미로움 속에 머물 뿐이다.”라고 말했다. ‘나의 이익은 곧 타인의 손해’임을 인식한 공선옥에게 가난은 체제 성찰과 문명을 향한 거센 이의 제기의 빌미이다.

그녀는 복잡한 세상에서 비참함과 서글픔을 조장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실체를 파악하려 애쓴다. 공선옥에게 가난은 그리하여, 사회 정의와 뗄 수 없는 문제다. 자유에 앞서 정의 추구가 얼마나 절실한지, 부정의는 말할 수 없이 목메는 것임을 그녀는 잔잔한 글들로 설득한다.

정의롭지 못한 사회 체제 아래 상처받는 이웃을 위해 펜을 드는 공선옥에게서 작가의 소명을 넘어 인간으로서 책무인 연대를 배운다. 마흔 언저리에서 쏟아낸 그녀의 살아가는 이야기들은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이 생각들이 씨앗이 되어 세상은 충분히 따뜻해질 수 있다. 포기하기엔 이르다. 관념은 어찌됐건, 변화의 단초다.

물론, 체험이 바탕이 된 튼튼한 관념이라야 할 것이다. 진정한 체험은 직접적이건, 간접적이 됐건 우리가 각자의 일상에서 깨어있을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의사들은 특히 가난한 환자들의 세상에 눈을 떠야한다.’는 사회학자 김동춘의 주장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매일 서있는 임상에서 유념해야할 소중한 조언이다. 눈을 뜨는 것, 쉽지 않은 일이다. 장님을 강요당하거나, 안락한 장님의 생활에 자발적으로 안주하는 이 시대에 깨어남은 부단한 개인적 노력과 긴장을 요청한다. 감상으로서가 아닌 긴장은, 체험과 더불어 관념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공선옥의 가난과 울음을 함께 ‘체험’하며, 반성하고 긴장하자. 그녀의 메시지에 귀 기울여 삶의 방향을 조정해보자. 가난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이 예수의 연민과 자비로 위로받았듯, 우리는 삶 안에서 서로에게 위안이 되어야한다.

사람은 오직 사람만이 치유할 수 있다. 그건 그렇고, 가난하지만 똑똑했던 내몽고의 친구는 지금 무엇을 하려나. 가슴 한 켠 그녀의 가난을 간직한 채, 누구를 위로하고 있을까? 링링이 세상 어느 쯤에 서있을지 문득 궁금하다. <값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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