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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윤희정의 도서비평] 연인들에게
위기의 여자
2016년 06월 17일 () 09:08:38 윤희정 mjmedi@mjmedi.com


오늘은 사랑에 관해 말해보자. 변덕스럽기 그지없고, 불안하며, ‘돈’과 함께 번민의 양대 원천인 사랑을 잠시 생각해보자. 이것은 ‘주체’를 자각해가는 한 여자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시몬 드 보부아르 著
손장순 譯
문예출판사 刊

주인공은 모니크. 진실을 추구하고 모차르트를 들으며, 부부사이의 성실성을 신조로 삼는 그녀는 남편 모리스를 믿고, 사랑하며 그에게 헌신하고, 의지한다.

아프리카가 바라보이는 푸른 해협에 앉아 죽을때까지 변함없는 사랑을 맹세했던 모리스는 어느덧 식은죽처럼 밍밍해지더니 어느날 모니크에게 불륜을 고백한다. 그것도 8년 전부터 시작된(상대는 여럿!). 모니크는 자신과 정확히 정반대 스타일의 여자와 바람이 난 남편을 보며 극심한 혼란에 빠진다.

8년을 속여온 남편의 뻔뻔함과, 남편과 자신이 평소 역겨워하던 모든 것(속물근성, 경박함등)을 지닌 여자와 사랑에 빠진 남편의 낯선 면모를 마주하고 그녀는 정신이 무너져내린다. 이기적이고 후안무치한 남편앞에서 울부짖는 모니크는 남편의 변심 이유를 찾기 위해 점성술사, 필상학자를 찾아가기에 이른다.

그러나 그녀는 결국 가정과 남편에 대한 자신의 일방적이고도 헌신적인 사랑이 완전하게 실패했음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여기서 또 한명의 여자를 불러들이자. 소설가 은희경의 빈처. 빈처는 남편의 끈질긴 구애로 결혼했으나 결혼후 당연한 듯 기다리는 외로움을 대면하며 홀로 일기를 쓰기에 이른다.

이루어진 사랑 뒤끝에 따르는 남루하고 지루한 일상을 겪어내며 빈처는 글쓰기로 마음을 달랜다.

기대했던 사랑이 틀어지는 미묘한 상황은 두 여인에게서 다르게 벌어지지만 어찌됐건 두 작품속 주인공 모두 자신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퇴색한 부부사이의 사랑앞에 배신감과 허망함, 외로움과 분노를 느낀다. 물론, 두 주인공들은 정신적 갈등과 방황끝에 각자의 정체성과 생에 대한 소소한 자각에 이른다.

페미니즘의 선구자이자, 놀라운 지성의 소유자였던 시몬 드 보부아르는 여성을 둘러싼 비합리적인 사회 구조 뿐 아니라 여성 자체의 종속적이고 비자율적인 태도를 냉철하게 관찰한다. 그녀 자신, 장 폴 사르트르와 스무살이 갓 넘어 계약 결혼을 하며 엄숙하게 자율적 사랑을 선언한다.

이것은 평생 주체적 사랑을 향한 그녀의 과감한 실험이고 도전이었다. 삶의 가장 사적인 영역인 사랑에서조차 앎과 삶을 일치시켰던 보부아르는 자신의 지성에 대해 누구보다 정직했다. 그녀는 선진적이고 용감하고 양심적인 여자였다.

보부아르는 여성들에게 사유없이 맹목적으로 하는 결혼과 출산의 덫에 빠지지 말라고 조언한다. 양육 조건을 고려하지 않은 출산은 예속적인 모성애 굴레에의 속박을 초래함을 경고한다.

또한 여자들에게 ‘관습적이고 타자적이며 몰주체적인 사랑’의 위험성을 강조한다. 보부아르는 그녀의 이러한 ‘여성관’, ‘사랑관’, ‘결혼관’을 「위기의 여자」전반에 걸쳐 잘 나타낸다. 경제적, 직업적 독립은 여성의 주체적인 자립의 전제조건이라는 작가의 신념을 우리는 이 작품에서 목격할 수 있다.

이는 이미 성차별과 가부장적 관습에 반발했던 버지니아 울프가 주장했던 것이다. 울프는 여성이 사유할 수 있는 여건으로서 고정적인 수입(1년에 500파운드)과 자기만의 방을 가져야한다고 말했던 터이다.

어차피 결혼과 사랑은 그 시작부터가 너무도 불안하다. 굳건한 맹세는 허물어지고, 애초에 연인을 결속했던 공통된 지향과 관심은 세월감에 따라 변하고 만다(특별한 사랑을 제외하고!).

우리는「위기의 여자」를 읽으며 기존 관습에 무비판적으로 순응하므로서 파국을 맞는 한 프랑스 중년 여성을 통해 여성들의 각성과 자아성찰이 얼마나 절실한지 체감한다. 깨어있는 여성만이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다.

하지만, 「위기의 여자」스토리는 시대에 뒤쳐진 감이 있다. 최근의 사회 동향은, 바람나 가정을 뛰쳐나가는 여자의 수가 바람난 남자에 결코 뒤지지않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보부아르가 던지는 메시지는 여전히 강력하게 유효하다. 가부장적 구조는 우리 사회에 아직도 건재하며, 몰주체적인 사랑으로 하루 행복했다 이틀 비참했다를 반복하는 제정신이 아닌 인간들로 넘쳐나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걸린 ‘사랑과 삶의 공식’ 최면에서 깨어나야한다. 여자 이야기로 시작했으나, 이것은 여성과 남성을 넘어 우리들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

사랑 이야기로 출발했지만, 생에 관한 이야기이다. 단순한 중년여성의 위기를 넘어 보편 인간의 이야기이다.

타자가 아닌 주체로 살아가기. 실존적 존재로서 자신의 삶을 스스로 책임지고 궁극에 절대적 자유를 얻는 주체적 존재가 되기. 사랑(과 결혼)은 그러한 존재들에게만 의미있고, 충만함과 기쁨, 풍요로움은 그들에게만 특권적으로 주어질 것이다. 사랑, 생의 운명, 삶의 은총은 처음부터 끝까지 주체의 문제이다.

상대의 마음을 얻지 못해 안달하고 안타까워하는 연인이여. 우울하게도 지루함과 진부한 평범함을 낳은 결합에 그치고 만 자들이여. 이 순간 불안한 사랑의 번뇌에 빠진 이들이여. 그럼에도 불구, 「위기의 여자」는 그대들에게 가장 시급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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