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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안세영의 도서비평] 현직 판사가 들려주는 법원생활 에피소드
개인주의자 선언
2016년 07월 08일 () 09:29:19 안세영 mjmedi@mjmedi.com


가끔씩 제 직업과 직장이 제 성정(性情)에 합치하는 건지 의문이 들곤 합니다.

   
문유석 著
문학동네 刊

눈이 좀 밝고 매사 꼬장꼬장 시시비비를 따지는 편인지라, 이런 특장(特長)은 환자의 아픔을 어루만지거나 자라나는 후학들을 격려하기보다는, 기업의 분식회계를 잡아내거나 사건의 잘잘못을 가려내는 데 더 적합할 것 같거든요. 소소한 일상일망정 내 삶이 우선이고, 타인의 일에 시시콜콜 관심 갖지 않으며, 누가 뭐라 해도 나만의 방식을 고수하는 스스로를 직시하면서, 이따금씩 망상의 날개를 펼쳐보았는데…. 다행히 세상은 무척 넓어서, 저처럼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사람이 또 있더군요.

『개인주의자 선언』은 현 인천지법 부장판사로 근무하는 문유석님의 글 모음입니다. 「판사 문유석의 일상유감」이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판사라는 직함으로 법원이라는 직장에서 일하며 겪었던 이런저런 에피소드를 전작 『판사유감』처럼 유려하고 유머러스하게 풀어 쓴 여러 칼럼들을 한데 모은 것이지요.

문판사님은 이번 책에서 본인이 이타심 별로 없는 개인주의자임을 더욱 당당히 선언하면서(이전 책과는 어투가 다르거든요^^)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굴레는 전근대적 집단주의 문화이고,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근대적 의미의 합리적 개인주의”라고 주장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를 차가운 이성의 이기적 개인주의자로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그의 시선은 늘 따뜻하고 항상 사람을 향해 있거든요.

책은 크게 3부로 나뉩니다. 1부에는 「만국의 개인주의자여, 싫은 건 싫다고 말하라」, 2부에는 「타인의 발견」, 3부에는 「세상의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기」라는 소제목이 붙어있는데, 내용이 특별히 다르거나 하진 않습니다.

모든 글이 문판사님께서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재판을 통해 법·사람·정의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고, 또 법원이라는 조직을 통해 깨달은 한국 사회의 단면을 묘사한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밑줄 치며 읽었던 구절은 “다양성의 존중·숭상이 사회 다수 구성원의 행복을 위한 첩경이다”, “인간 세상에 하늘에서 뚝 떨어진 가치중립적인 팩트란 없다”, “저열한 본능을 당당히 내뱉는 위악이 위선보다 나을 게 없다” “데이의 세 황금문 - 그것이 참말인가? 그것이 필요한 말인가? 그것이 친절한 말인가?”, “아름다운 윤리와 당위만으로는 현실을 바꿀 수 없다. 인간의 이기심·욕망을 있는 그대로 일단 인정하고 그걸 출발점으로 타협할 지점을 찾는 냉정함이 현실적이다”, “바이킹 시대 술통을 돌려가며 마시는 풍습에서 유래한 스웨덴의 문화적 전통 라곰(Lagom) - 너무 많지도 너무 적지도 않게 적당히”, “덴마크 마을 얀테의 관습법 - 당신이 특별하다고 생각지 말라 남보다 더 낫다고 남보다 더 많이 안다고 남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남을 비웃지 마라”, “냉소적으로 구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어(Anyone can be cynical) 담대하게 낙관주의자가 되라구(Dare to be an optimist)” 등입니다.

우리 사회에 ‘판사 사람’이 있음을 확인시킨 책이었노라 여겨지는데, ‘한의사 사람’ 또한 실존하며 그 존재 이유까지 낱낱이 밝혀줄 책도 하루빨리 출간되면 좋겠습니다. (값 1만 3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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