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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형원 칼럼] 몸맘하나 멘탈클리닉(Mommamhana Mental Clinic) <6> 의미와 희망이 슬픔과 우울함을 이긴다(喜勝悲)
2016년 08월 19일 () 09:30:07 강형원 mjmedi@mjmedi.com


시대마다 그 시대의 고유한 질병이 있다고 한다. 현시대의 병리학적 증상은 단연 신경증적이라 할 것이다. 특히 우리 사회의 청년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은 청년 사망률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강 형 원
원광대 산본병원
한방신경정신과
교수

청년 사이에서 만들어진 신조어는 우리 사회의 청년 우울증의 진원이 무엇인지 대변하고 있는 듯하다. 노오력, 노답사회, 헬조선·탈조선, 혐오·벌레, n포세대, 이생망… 이와 같은 언어들이 자주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부정적 정서에서 기인된 개인의 탓으로 돌릴 수 없는 엄연한 이유가 존재한다.

최근 출간된 「노오력의 배신」은 신조어의 주체자인 청년들을 문화적 상대주의로 이해하려는 시도와 담론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취업 준비생의 대다수가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우울증을 겪고 있으며 나아가 은둔형 외톨이, 대인기피증, 자살, 화병 등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우울증은 청년들에게 급속도 번지는 사회 현상이기도 하지만, 전 연령대에 걸쳐 인생의 순환주기에서 언제든 누구에게든 발생할 수 있는 질병이다.

우울증 환자들은 공통적으로 세가지 인지적 어려움을 겪는다. 첫째, 자아 취약적 핵심신념이다. 자기비판과 자기비하에 사로잡혀 자책, 죄책감, 수치심으로 쓸모없는 인간으로 자신을 단정하며 점점 존재 의미를 상실하게 한다. 둘째,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적 단정이다. 힘듦은 계속될 것이고, 반복될 것이라고 포기해버린다. 셋째, 세상은 내편이 아니라는 부정적인 생각이다. 설사 일이 잘 풀려도 이번에 잘된 것은 운 일뿐이라고 부정해버린다.

이렇게 우울증은 작은 구멍(Hole)을 통해서 세상을 본다. 넓은 창(Window)으로 볼 여력이 없다. 어떻게 하면 우울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한의학 고서(古書)로 1228년에 출판된 장자화(張子和) 선생의 「유문사친(儒門事親)」에는 현대 한의 임상에 활용하고 있는 슬프고 우울한 감정을 극복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오행 상생상극 이론을 감정치료에 응용한 오지상승요법 중 화극금(火克金)의 원리를 이용한 희승비(喜勝悲) 방법이다.

우울은 기를 아래로 가라앉게 하고(憂則氣沈), 슬픔은 기를 소진하게 한다(悲則氣消). 감정을 이렇게 기의 흐름으로 본 것은 한의학의 특징이다. 기의 변화를 일으킨 우(憂)와 비(悲)는 오장 중 폐(肺)을 상하게 한다. 희승비의 원리에서 희(喜)는 기쁨을 넘어 의미, 희망의 뜻을 내포하고 있고, 비(悲)와 우(憂)는 모두 금(金)에 배속된 감정으로 ‘의미와 희망이 슬픔과 우울함을 이긴다는 뜻’이다. 희승비(喜勝悲)의 구체적인 방법으로 “기쁨은 슬픔을 다스릴 수 있는데, 실없는 말로 희롱하고 익살스럽게 하여 즐기게 하라(喜可以治悲 以謔浪藝狎之言 娛之)”고 하였다. 노인성 우울증에 걸린 어르신이 손자가 태어나자마자 웃음을 찾게 되는 것은 희승비의 좋은 예이다. 희승비(喜勝悲)는 한의학 고전이 현대인들에게 주는 우울감정조절 프로그램이자 의미프로젝트이다. 우울증, 양극성장애 등의 기분장애 환자들에게 유용한 치유법이다. 현대심리학의 시작이 분트가 독일 라이프치히 대학교에서 심리학 실험실을 설치한 1879년으로 보고, 프로이드의 정신분석 시작은 자유연상이 도입된 1896년으로 본다면 무려 650여년이나 앞서 한의 정신치료가 시작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오지상승요법에서 희승비 원리는 임상에서 세 가지 의미로 적용될 수 있다.

첫째, 관계성 회복은 새로운 희망이다. 관계 단절은 우울증의 시작이자 끝이다. 자기 자신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타인과도 관계를 단절해버린다. 관계성 회복의 키워드는 존중과 동행이다. 관계 속에서 자기 자신을 보고 타인과 함께 성장하게 한다. 혼자서는 차마 내보일 수 없었던 부끄러움, 수치심, 죄책감 등을 내보일 수 있는 안전한 대상을 만나고 존중감을 느끼고 함께한다는 관계성 확립으로부터 치료가 시작된다. 깊은 우울증으로 자살을 여러 번 시도하고 더 이상 가망이 없다 생각한 끝에 만난 40대 중반의 부인도 치료적 관계 설정이 확립되면서부터 회복이 시작되었다. 꺽인 식물 줄기도 지지대에 한동안 묶어놓으면 어느새 지지대 없이도 꼿꼿하게 줄기에 힘이 생기고 꽃잎을 피우면서 자란다. 관계성 확립은 우울증 치료의 시작이자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둘째는 의미 찾기이다. 의미 찾기는 새롭게 설정된 치료적 관계성에서 밑거름이 된다. 우울증은 존재의미를 상실하는 병이다. 만사가 귀찮고 식욕저하, 흥미저하, 자기비하, 무가치감, 과도한 죄책감, 무망감, 자살사고 등 몸과 마음이 함께 병들어 조용히 사라졌으면 하는 맘이 의지와 무관하게 드는 병이다. 존재자체로서의 의미와 가치는 대상을 통해서 함께 찾아갈 수 있다. 빅터 프랭클(Viktor Frankl)은 ‘인간 존재의 본질은 의미와 목표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의미를 추구하는 것은 인간 존재의 본질이다. 나 자신에 대한 존재(Being)로서의 의미를 느낄 때 행동(Doing)은 뒤따라온다. 우울증 환자에게 ‘니가 뭐가 부족해서 그러냐’, ‘마음을 좀 먹어라’, ‘운동을 해라’, ‘밖으로 나가서 친구를 만나라’ 등의 말들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권유나 명령으로가 아닌 존중과 사랑, 함께하겠다는 의지의 표명, 진실성 있는 눈빛이 중요하다. 이것은 3회차 칼럼에서 언급한 러빙프레젠스(Loving presence) 개념이다. 치료자로서 ‘당신의 존재 자체로서 빛나는 부분만 보겠다’는 결단과 의지로서 말이다. 이렇게 무조건적 긍정적 수용의 자세를 취해주는 것은 환자에게 있는 그대로 진실성이 전달되는 행위이다. ‘나도 나 자신을 버렸는데 나와 함께 해주겠다고?’ 반신반의했던 마음은 치료적 관계 속에서 좋은 경험이 되고 느낌이 되어 얼굴에 웃음 띠는 횟수가 점점 늘어나게 된다.  

세번째는 유머이다. 웃음은 만병 치료약이다. 희승비는 즐기고 웃다보면 우울이 달아난다는 것이다. 희(喜)의 가장 좋은 표현은 웃음이다. 웃음은 굳게 닫힌 마음을 여는 키이다. 빅터 프랭클은 유머를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신의 선물이자 특권이라고 했다. 인간 얼굴 표정근이 이렇게 많은 것도 맘껏 웃으라는 것이 아닐까?

진료실에서 자주 등장하는 스토리텔링이 있다. 하루는 식당에서 바지락 칼국수를 먹다 조개껍질 무늬에 반하여 들여다보다 진료실까지 가지고와 책상위에 올려놓았다. 당연 고개숙인 환자의 눈길은 각양모양의 조개껍질로 이어졌고 환자에게 조개이야기를 들려준다. 따끈한 칼국수 속에서 너무 이뻐 훔쳐왔다는 말에 환자는 금방 웃음을 터트린다. 이 순간 관계성은 이미 시작된 것이다. 조개껍질 이야기를 더 해보자. 한 쌍인 껍질을 가만히 살펴보면 같은 짝이면서도 서로의 무늬가 다르다. 무생물인 조개껍질도 이렇게 자기만의 무늬가 있는데 하물며 생명체인 인간은 어떻겠는가? 나는 누구처럼 안되어 불행하고 누구처럼 잘나지 못해 열등하다. 끊임없이 비교하며 나의 못남을 채우기 위해 노력과 좌절을 반복한다. 그러나 우리는 누구처럼 사는 삶이 아니라 나만의 인생을 나답게 살아가야 한다. 이것을 돕는 게 모든 심리치료의 목표이다. 나처럼 사는 건 나밖에 없다고 바다의 조개에게 배웠다고 웃어보면 어떨까? 매몰된 우울에서 나오게 하는 것, 시의적절한 웃음이고 유머이다. 

건강한 관계회복을 통해 삶의 의미를 다시 발견하고 그 의미가 웃음을 줄 때 건강한 일상으로의 회복은 계절의 변화를 체험하듯 순간 맛보게 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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