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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명물소개 ④ - 합덕의 상징 합덕제] 흐드러진 연꽃과 번성했던 농경의 역사 '합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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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에는 아직도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문화유산과 문화유적, 그리고 후손에 전해주어야 할 가치를 가진 무형문화재가 많이 있다. 
그러나 이 문화유산들은 단순히 알려지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사장되고, 잊혀지고 또 없어지고 있다. 관광자원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의 명물들은 지금 이 시간 어디선가 없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본지는 이러한 문제의식 아래 지역의 숨어있는 명물과 문화유산을 발굴해 보도함으로써 넓게는 당진의 관광산업 발전을 돕고
 단기적으로는 지역의 문화유산 보존을 도모하고자 한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역신문발전기금으로  이뤄졌습니다.


합덕의 상징 ‘합덕제’
 김제 벽골제(碧骨堤), 황해 연안 남대지(南大池)와 함께 우리나라 3대 방죽으로 손꼽혔던 합덕제(合德堤). 그러나 예당저수지가 완공되면서 합덕방죽은 그 역할이 축소되어 후백제 시기부터 천여년 동안 해온 농경 중추적 역할을 마무리하고 1964년‘은퇴’했다.
 합덕제는 지난 1989년 4월 20일 충청남도기념물 제70호로 지정되었다. 신라 말기에 견훤(甄萱)이 축조한 것으로 전해지며 개수(改修)할 때 기록을 적어 둔 중수비가 5기 남아 있으나 축조 연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다. 합덕제 규모는 둑 높이 4m, 길이 1천771m에 만수면적만 102㏊에 이를 정도였으며 당시 합덕방죽의 저수 면적은 총 175만㎡로 거대한 저수지였음을 알 수 있다. 방죽에는 6개 마을에 관개하는 9개의 수문이 있었다 한다.
 저수지에는 연꽃이 많아 연지(蓮池)라고도 불렸으며 여름에는 연이 무성하게 자라서 103만㎡나 되는 넓은 면적에 연꽃이 만발했으나 현재는 1970년대 삽교천 유역 대단위 종합개발사업 등으로 저수지는 농경지로 변하고 둑만 원형대로 길게 남아있는 상태이다.
 합덕제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농경의 중심이었던 합덕이 얼마나 번성하고 유명했는지를 알려주고 있다. 이만한 규모의 저수지를 가져야만 농사를 지을 수 있었던 합덕. 합덕제는 합덕의 ‘상징’이다.

후백제 시절부터 치수의 중심 맡아와
 합덕제는 후백제를 세운 견훤(892∼936)이 신라말기에 축조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확한 연대에 대한 기록은 없지만 합덕주민들에게는 ‘후백제 견훤왕이 고려 태조 왕건과의 전투기간 중에 군마에게 물을 주기 위해 축성했다’는 구전이 전해지고 있다. 후백제 견훤과 고려 태조 왕건의 전투는 대략 17년(918-935년) 동안 지속됐었는데 이는 합덕제의 역사가 천년을 넘는다는 사실을 반증한다고 볼 수 있다.
 충남대학교의 발굴조사 결과 제방의 지엽은 1655-1950년 목질은 1650-1950년의 것으로 판명되었다. 이는 현재 대합덕리에 있는 여러 비문의 제작 연대와 일치하고 있다. 출토된 와편들과 토기들 또한 통일신라시대의 유물로 밝혀지고 있다.
 합덕방죽의 역사적인 기록들을 보면 세종실록에 “蓮池在合德地 長三千六十尺 灌漑田一百三十結(연지재합덕지장삼천육십척관개전일백삼십결)”라고 전하고 있어 그 규모를 추측하게 한다. 즉 합덕에 있는 연지는 삼천육십척에 달하고 130결(1결의 크기는 시대마다 달랐음. 평균적으로 1결은 약 5000평 가량)이 물을 공급받고 있다는 내용이다.
 성종실록에는 영사 홍윤성이 “합덕제는 전조 때부터 쌓기 시작했고 조선조에 이르러 정분이 또 감독해서 쌓았는데 길이가 2700여척이고 일곱 고을이 수리를 입고 있습니다. 그러나 둑이 본래 낮고 약해서 이제 또 비로 인해 터져서 무너졌으니 청컨대 제언별감을 보내 쌓게 하소서”라고 기록하고 있다. 수리시설이 중요한 국가 기반 시설인 당시에는 합덕제의 보수에 국왕이 직접 관여했다는 사실을 추측할 수 있다. 합덕제가 유실될 때마다 주민들을 동원해 보수했었는데 합덕제가 다른 지역의 저수지와는 약간 다른 부분이 있다.
 대부분의 저수지가 일자로 조성되어 있는 반면에 합덕제는 일부분이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곡선에 대한 합덕제 인근 마을에 세워져 있는데 이 비석에 따르면 제방이 너무 자주 터져 이를 막기 위해 곡선으로 조성했다는 것. 구불구불하게 제방을 조성하자 더 이상 제방이 터지는 일이 없었다고 비석은 기록하고 있다. 합덕제를 만든 선조들의 오랜 경험에서 얻은 지식은 현대의 과학적인 분석에 못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합덕제 복원, “3년 내에 완료할 것”
 충남도가 내포문화권 개발계획의 일환으로 합덕제 복원을 하겠다고 발표했을 때 합덕주민들은 합덕제 복원을 그동안 수차례 지방자치단체에 요구했었는데 이제야 반영이 됐다고 기뻐하며 침체된 합덕지역을 되살리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반가운 반응을 나타냈다. 그리고 합덕제 인근의 토지주들이 합덕제 복원을 기원하며 합덕제복원추진위원회(위원장 신관수)를 결성해 활동을 하고 있다. 신관수 위원장은 “합덕제 복원계획이 발표됐을 때 반대 의견을 표시한 토지주들이 한 명도 없었다”며 “올해 46억원의 예산이 세워졌고 연말부터는 토지보상이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신 위원장은 순조롭게만 진행되면 합덕제 복원은 3년 이내에 완료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쮌 참고자료
1. 합덕제(충남대학교 박물관 논문.1998)
2. 합덕연호의 역사성 및 민속문화적 고찰
   (홍석표, 1996)
3.‘후백제의 내성을 바라보는 연호의 꿈’
   (김윤태, 2006)

 

인터뷰 | 합덕제복원추진위원회 신관수 위원장

“합덕읍민 모두가 복원을 찬성해”
 “지난해 11월 합덕읍민 전체의 동의를 받아 합덕제복원추진위원회가 발족했습니다. 1300년 역사를 가진 합덕제의 복원이 침체된 지역을 되살리는 데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한결같은 겁니다.”
 합덕제복원추진위원회의 신관수 위원장은 “합덕제는 우리나라 3대 저수지의 하나로 13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며 “당진군에서 합덕제와 솔뫼, 합덕성당, 신리성지를 잇는 성지순례코스를 관광자원화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소개했다.
 “합덕제의 면적이 1090914m²(33만평)인데 일차로 373000m²(113000평)를 복원할 계획입니다. 완전한 합덕제 복원을 위해 앞으로 더욱 노력해야 할 겁니다.”
 올해 확보된 46억원의 예산으로 연말에 토지보상이 시작될 것이라고 전망한 신 위원장은 “군에서 업체를 선정해 설계용역 중인데 공사에 중대한 방해물이 생기지 않으면 합덕제의 모습을 3년 정도 후에는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합덕제 복원 본격 추진 움직임
기본계획수립 위한 용역 발주

 당진군은 내포문화권 개발사업의 일환으로 합덕제를 복원, 정비해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하여 5천만원의 예산을 들여 충남발전연구원(CDI)에 ‘합덕제(연호방죽) 정비 기본계획 용역’을 발주했다.
 지난 9월 시작돼 6개월간 진행되는 이번 용역에서는 합덕제 주변의 자연 환경 및 역사성 등 인문 환경 조사를 거쳐 합덕제를 원형대로 복원할 수 있는 정비 방안을 마련하고 토지이용 체계, 동선 체계, 사업투자 계획, 개발 방향 등을 설정하게 된다. 이 연구용역이 완료되면 당진군은 도비 지원을 받아 2010년까지 120억원을 들여 합덕제 둑을 복원하고 일부 구간의 방죽은 연못으로 조성할 계획이다. 군은 이미 수리공원 조성에 필요한 민간 토지를 매입하기 위해 지난 제1회 추가경정예산에 48억원의 예산을 세웠으며 내년부터는 합덕제가 있었던 토지를 본격적으로 매입, 2009년부터 토목공사에 들어갈 방침이다.
 당진군은 합덕제가 원형의 모습을 갖추면 지난 2005년 10월 개관한 `합덕수리민속박물관'과 성지순례 코스인 솔뫼성지, 합덕성당, 신리성지 등과 연계한 문화관광 벨트로 만든다는 계획이다. 또 조선시대 초기의 토목공법과 수리농경 문화를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는 교육장으로도 활용할 계획이다.
본보 674호 보도(2007년 08월 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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