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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한 해를 보내며 - 이정음 합덕이태리안경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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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덧 시간은 또 우리를, 한 해의 정점에 올려놓고 있다. 밀려오는 파도를 저항할 수 없듯이 거대한 시간 앞에 무력할 수밖에 없는 초라한 자신을 자각할 뿐 또 무엇이 있겠는가. 한 해를 보내고 또 한 해를 맞는 것은 물리법칙으로 본다면 누구나 가까이 죽음에 다가갔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어떤 문제를 안고 살고 있겠지만 우리들 서민들이야 늘 생활 속에서 높아지는 물가와 높은 세금, 얇아진 호주머니 문턱을 드나들며 그야말로 삶의 전쟁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 우리들 삶의 모습이 아닌가 한다.
 오늘날 풍요로워진 물질문명 속에서도 이렇게 어려움이 많은 데 60-70년대 어릴 적 물질적으로 무척 가난하던 때 우리 부모님들은 그 많은 자식들을 어떻게 키우고 교육시키며 성장시키셨는지 새삼 부모님들의 삶이 존경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다.
 따지고 보면 물질의 풍요가 인간의 삶을 편리하게 해주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러나 한편으로는 정신적 상실감과 상대적 불만족 속에서 늘 방황하는 우리들의 행복하지 못한 내면을 감지하며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우리 내면에 치열한 자기 정체성을 드러내고자 하는 본성을 저버린 이유가 아닐까 필자는 생각해 본다.
 그것은 자기 존재를 발견하고 그 존재로부터 나오는 진실성과 영원한 생명을 우리생활에 접목시키며 살아가고자 하는 욕구일 것이다.
 되돌아보면 지나온 삶이 아득하지만 언제나 가슴 속에 남는 것은 그 치열한 삶의 경쟁 속에서도 과연 나는 진실하게 살아왔는가라는 문제이다.
 허위와 부정직한 삶의 모습들이 판치는 사회 속에서 휩쓸리지 않고 진실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 되돌아보는 한 해 속에서 그러한 본성의 생명력이 왜 꿈틀거리는지 모르겠다. 그것은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점점 줄어들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시간이라는 위대한 명사가 우리 내부의 진실과 긴밀히 연결되었다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우리 조상들이 가난한 가운데에서도 정신적인 도를 찾으며 즐거움을 갖고 살았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높이 존중해야 할 삶의 방식이라고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우리가 현실 속에서 풍요로운 물질생활을 구하지 말라는 것이 결코 아니다.
 정신적인 풍요로움을 위하여 절제와 자족하는 방법을 조상들에게서 배워 오는 것이야말로 지혜로운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경제행위를 하는 것은 육신이 있기 때문이고, 그 행위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은 마음의 양심을 따지기 때문이다,
 그러한 문제는 개인의 마음속에서도 서로 싸우고, 사회와 역사 속에서도 계속 싸워왔다. 부를 축적함에 있어서 편법과 술수를 동원하여 그 목적을 달성한다고 하는 사실에서 그것이 민주주의에 합치되느냐, 아니면 배치되느냐가 지금 우리 사회에 화두가 되어있다.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는 우리의 자유이다. 민주주의는 자유로 표현되지만 그 자유 속에는 얼마나 진실이 반영되어 있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운명에 큰 영향을 미친다.
 진실을 얼마나 사랑하느냐에 따라 그 개인의 인격이 빛나고 그 나라 민주주의가 발전하는 척도가 된다.
 자본주의는 진실을 헐값에 파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문명인은 돈보다도 진실이 훨씬 비싸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또 한 번 진실의 정점에 내몰려 있다. 우리의 인생의 시간이 한 해의 정점에 올려진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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