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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를 활용한 온고지신으로 한의학의 위상을 드높이자
긱스타터 첫번째 포럼 참가기
2017년 01월 26일 () 08:38:45 윤태림 mjmedi@mjmedi.com
   
윤 태 림
경희대한의대 본4년
(2017년 기준)

긱스타터(Geek Starter)는 킥스타터(Kick Starter: 미국의 크라우드펀딩 사이트)의 변용(變用)으로 IT에 각별한 관심이 있는 한의사들의 IT 연구모임이다. 이미 지난해 10월 25일과 12월 1일에 두 차례 모임을 가졌으며, 지난 모임은 구글 문서도구 등을 활용하여 예진설문지를 만드는 방법이나 미밴드나 Athos Gear등 웨어러블 기기를 소개하고 진료에 활용할 방법을 모색해보는 등 짧은 주제발표 이후에 뒤풀이 장소로 자리를 옮겨 편안한 분위기에서 자신이 즐겨 쓰거나 남들이 잘 모르는 IT 기기 및 기술을 소개하며 서로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고 발전을 도모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지난 18일, 세 번째 긱스타터 모임에서는 좀 더 심도깊은 논의를 위해서 특별히 한의학 관련 앱을 개발해본 경험을 가진 세 분의 한의사들을 모시고 첫 번째로 포럼을 개최했다.

 

앱과 전자차트 활용한 아토피 진단 및 치료

강동경희대한방병원 안이비인후피부과의 윤영희 교수가 첫 번째 주자로 발표했다. 윤영희 교수는 병원에서 애플리케이션과 전자차트를 활용하여 아토피피부염 환자들을 효율적으로 진단하고 치료하고 있다. 애플리케이션과 전자차트 시스템의 장점은 크게 신속성, 객관성 및 정확성, 환자 만족도 상승, 임상 데이터 축적을 통한 임상한의학의 발전 가능성으로 정리할 수 있다.

   
◇윤영희 교수가 앱과 전자차트를 활용해 아토피피부염 환자들을 효율적으로 진단하고 치료하고 내용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원에서는 환자 당 진료시간이 불가피하게 짧기 때문에 충분한 문답이 이루어지지 않아 한의사와 환자 모두 만족스러운 진료를 하기가 쉽지 않다. 윤영희 교수는 전자차트를 활용하여 환자의 증상을 빠르고 객관적으로 기록함으로써 단시간에 정확한 진단이 가능하도록 했다. 아토피피부염의 증상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SCORAD(SCORing Atopic Dermatitis) 지표를 전자차트에 반영하여 환자의 주관적인 호소를 객관적인 점수로 환산함으로써 신속성을 확보하면서도 정확성, 객관성을 희생하지 않을 수 있었다.

간호사로 하여금 태블릿을 이용하여 환자를 예진할 수 있도록 한 것도 인상적이다. 환자가 스스로 아토피피부염의 발생부위, 증상의 양상 등을 입력하면 전자차트가 SCORAD를 기준으로 자동으로 계산하여 점수로 환산해준다. 또한 한의학 치료를 받으면서 증상의 호전도를 그래프로 보여주기 때문에 주관적인 느낌이 아니라 확실한 지표로써 자신의 변화를 지켜볼 수 있어 치료를 신뢰할 수 있게 된다. 증상이 갑자기 심해졌다거나 특정한 음식을 먹어도 될지 궁금할 때는 어플을 활용하여 기록해놓으면 한의사가 그것을 미리 확인하고 적절한 지도를 해줄 수 있어 환자들의 만족도를 크게 높일 수 있다.

기존 종이 차트의 가장 치명적인 한계는 기록은 쉽지만 데이터의 전산화가 이루어지지 않아 임상 데이터의 축적이 어렵다는 것이었다. 한의학은 그 특성상 생의학적 패러다임에 기반한 연구방법으로는 임상 효용성의 근거자료를 만들기가 쉽지 않다. 신뢰도 높은 근거자료의 생산이 절실한데 종이 차트로는 연구의 기반이 될 수 있는 데이터의 체계적인 축적이 어려워 한계가 많았다. 전자차트를 이용하면 객관적이고 정확한 정보들을 일목요연하게 축적할 수 있고 여러 기관들이 협력하면 빅데이터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임상한의학의 점진적인 발전을 기약할 수 있게 해준다.

 

지식기반 한의학 플랫폼 개발

다음 주자는 닥터스랩의 전 대표이자 현재는 버키(balky)에 소속되어 있는 전상호 부대표였다. 전상호 부대표는 닥터스랩을 이끌던 시절에 방약합편 앱을 출시하여 아이튠즈에서 의료부문 1위를 차지한 내력이 있다. 지금은 동의보감 중심의 관계형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이를 기반으로 지식 기반 한의학 소셜 플랫폼을 개발하는데 힘쓰고 있다.

전상호 부대표는 네이버가 어떻게 구글이라는 거인과 맞서면서도 건재할 수 있는지에 주목했다. 구글은 방대한 양의 정보에 섬세한 알고리즘을 더하여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주는 강력한 거인이다. 네이버는 이런 구글에 맞서기 위해 사람의 노동력을 최대한 활용하여 질 좋은 정보를 신속하게 전달함으로써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네이버와 구글에 ‘RGB 색상표’, ‘미세먼지’ 등을 검색해보면 구글의 공세에도 불구하고 네이버가 살아남을 수 있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사람들이 자주 찾는 정보를 보기 좋게 정리하여 정보의 질을 극대화함으로써 충성스러운 이용자들을 유지하는 것이다.

동아시아의 고유한 전통의학인 한의학이 가장 왕성하게 활용되는 나라가 중국이라는 사실에 동의하지 않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 광대한 땅과 무수한 인구를 자랑하는 중국이라는 거인과 겨루기 위해서 한국은 정보의 질로 승부해야 한다는 것이 전상호 부대표의 기본 전략이다. 전 부대표는 한국 한의학의 상징이자 많은 한의사들이 임상에서 쓰고 있는 동의보감을 깔끔하게 정리하여 배포함으로써 중국을 제치고 세계로 나아갈 발판을 마련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 작업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처방마다 각자의 활용례가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주치증만 기억되는 바람에 잃어버린 활용 예시가 많다. 이름은 같은데 출전에 따라 약재 구성이 다른 처방도 많아서 혼란을 야기하기 쉬웠고 이진탕처럼 가미와 변용이 많은 처방은 효과적으로 검색되도록 구축하기가 만만치 않았다. 환제를 탕제로 바꿀 때의 용량에 대한 부분도 명확하지 않았고 ‘반 개’, ‘한 줌’처럼 그램 단위로 변환하기 어려운 용량단위를 어떻게 옮길지에 대한 고민도 있었다. 또 침구법, 맥법, 단방 등이 동의보감 전체에 분산되어 있어 한 번에 모아보기가 어렵다는 점도 문제였다.

이러한 여러 가지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전 부대표는 동의보감의 조문들을 층차별로 세분화하고 원문, 처방, 약재 등 모든 항목에 고유번호를 매겼다. 나눌 수 있는 가장 작은 단위들로 세세하게 나눈 뒤 연관이 있는 항목들끼리 유기적으로 연결시켜 ‘관계형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기로 한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네이버처럼 신속하고 섬세하게 검색할 수 있고, 질 좋은 검색 결과를 내놓을 수 있는 어플리케이션을 완성해나가고 있다. 이 모든 작업과 과정들이 결코 쉽지 않았음에도 전 부대표는 자신의 결과물이 한의계의 좋은 레퍼런스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모든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다며 발표를 마쳤다.

 

한의고서 텍스트 마이닝

마지막 주자는 경희대학교 침구경락융합연구센터 인지 의과학 연구실의 정원모 박사 후보생이었다. 정원모 씨는 ‘한의고서의 텍스트 마이닝’이라는 주제로 발표를 시작했다. 그는 데이터 마이닝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는데 텍스트 마이닝은 데이터 마이닝의 하위 분류이다. 그가 한의고서의 텍스트 마이닝에 힘쓰고 있는 이유는 한의 고서의 지식 및 이론이 한의학 정체성을 형성하는 밑거름이기 때문이다. 한의 고전 문헌의 텍스트 마이닝을 통해 현재 구축된 한의 의료정보 데이터를 분석하고, 이를 통해 앞으로 구축해 나가야할 한의 의료정보의 틀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지금까지 텍스트 마이닝의 대상이 된 고서로는 동의보감, 상한론, 본초강목, 치구경험방, 급유방 등 다양하다. 한의 고서는 종이와 먹이 귀했던 과거의 특성상 굉장히 응축된 형태의 정보를 담고 있기 때문에 함축된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고서를 숙독하는 것이 정도(正道)이다. 그러나 텍스트 마이닝을 통해서 숙독으로는 얻기 힘든 정보들을 발견할 수 있다는 데에 정원모 씨의 연구가 의의를 지닌다. 지식정보의 수치화를 통한 양적 분석, 인간 인식능력으로 파악하기 어려운 새로운 정보의 발견, 데이터 시각화를 통한 직관적 이해는 기존의 독서 방식으로는 얻기 어려웠던 새로운 정보들을 쉽게 얻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텍스트 마이닝을 활용한 그의 연구 성과들을 소개하자면 먼저 침구경험방을 바탕으로 병변부위에 따른 경혈의 특성을 시각화한 자료가 있다. 족음경은 배와 다리, 수음경은 가슴과 팔, 수양경은 머리와 팔의 병변 치료에 사용된다는 원리를 데이터 시각화를 통해 직관적으로 볼 수 있도록 했다. 이밖에도 동의보감을 통해 병인에 따른 취혈 원리, 감정과 오장간의 관계, 팔요맥과 27맥의 속성을 밝혔고, 사암도인침구요결에서 NMF 알고리즘을 활용해 오수혈의 복잡한 특성을 간단한 몇 가지 key로 파악하여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자료를 내기도 했다.

그러나 텍스트 마이닝도 한계점이 있다고 그는 말했다. 추출된 지식이 임상적으로 정말 유효한가에 대한 검증이 필요하고, 한정된 고서의 수로 인한 태생적인 데이터 풀(pool)의 부족이 그것이다. 데이터의 신뢰도, 임상 데이터의 부족, 한의학 용어의 상호교환성 부족, 데이터가 구축될 수 있는 생태계의 부재가 이러한 연구의 어려움이라고 토로했다.

따라서 그는 한의계의 발전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용어의 상호교환성을 지닌 신뢰도 높은 임상정보 수집 플랫폼’이라고 역설했다. 그러한 플랫폼의 개발도 중요하지만 한의사들의 활발한 플랫폼 사용을 유도하기 위해 기록 작성의 불편과 시간 소모를 최대한 줄이고, 플랫폼 활용을 통해 주어지는 가치는 극대화해야 한다.

임상정보 기록에 들어가는 시간 및 노력의 소모를 줄이기 위해 정원모 씨가 제시한 처방은 차팅 랭귀지(Charting Language) 플랫폼이다. 자유기술문과 같은 형태의 입력 방식으로 쉽고 직관적으로 입력할 수 있으면서도 용어 라이브러리를 통해 데이터의 상호교환성을 유지하고 자동입력, 저장입력 등을 통해 빠른 기록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관건이다. 이러한 차팅 랭귀지를 통해 수집한 진료정보와 신체증상을 수집하여 선혈에 따른 병소부위의 분포 패턴을 파악하고, 더 나아가 인공신경망을 이용해 환자에게 적합한 경혈을 제시하도록 할 수도 있다.

세 명의 한의사들이 IT를 활용하여 각자의 영역에서 한의계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고전 문헌을 통한 한의 지식 및 이론 추출로 한의학의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임상의료정보의 분석을 통한 유효성 검증으로 옛 지식을 끊임없이 보완해나간다면 한의학의 미래는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과 같이 밝을 것이다. 옛 사람들의 경험과 지혜에 두 발을 딛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의 태도로 정진한다면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의 의료를 선도하는 한국 한의학으로 발돋움할 수 있으리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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