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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윤희정의 도서비평] 해순이가 왔어요!
도서비평 | 조영일의 문학과 도둑
2017년 06월 02일 () 08:48:17 윤희정 mjmedi@mjmedi.com

 

오늘은 약간의 부채감을 안고 글을 시작한다. 요리에 능숙하지 못한 나는 끼니마다 동네 몇군데를 지정해놓고 순회한다. 수 년째 해물순두부를 사먹는 가게가 있다. 손바닥만한 가게는 늘 손님들로 북적거린다. 해물순두부를 기다리며 비좁은 틈을 뚝배기를 들고 곡예하듯 지나다니는 아줌마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아수라장인 주방도 그 집만의 고유한 구경거리다. 

   
'문학과 도둑'
조영일 著
새얼문화재단 刊

해물순두부를 고집하며 다른 훌륭한 메뉴를 맛보지 않는 내가 사장은 불만이다. 100개가 넘는 메뉴로 빼곡한 메뉴판은 그의 가장 큰 자부심이다. 그는 매번 내게 메뉴 독법을 알려준다. 그 집 메뉴판은 그 자체로 새로운 세상이다. 얼마나 광활한지, 일단 한 번 들여다보면 머리가 핑핑돌고, 길을 잃고 헤맨다. 그의 단계별 지시대로 따라가다가도 일찌감치 포기하고 결국 해물순두부를 주문하고 만다. 그 집 해물순두부는 정말 맛있다. 내가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면, 문앞의 직원이 “해순이 왔어요!”하고 주방쪽 아줌마에게 꽥 고함친다. 그러면 주방 아줌마는 내게 찡긋 눈짓을 한다.

어느날, 우연히 사장은 내가 글을 쓰려한다는 것을 알고는 흥분했다. 나중에 유명해지면 자신의 가게에서 내가 해순(해물순두부)을 백그릇 넘게 먹었음을 꼭 알려주란다. 그 날 이후 내 해물순두부 뚝배기엔 꽃게가 2개 넣어지고 있다. 모든 것이 순식간에, 내 의도치않게 벌어졌지만 꽃게가 들어간 해순의 맛은 일품이므로 짐짓 모른채 넘어가기로 했다. 

어떤 미혼 여성 작가는 맞선을 나가서 상대 남자가 작가들의 빈곤한 경제 상황을 걱정하자, 소식하면된다고 톡 쏘아붙였다고 한다. 작가의 가난은 낯익은 상황인데, 별다른 경제수단 없는 궁핍한 작가의 삶은 외롭고 쓸쓸하다. 게다가 세상 사람들은 돈벌기에 열광적이고 독서에는 인색하다. 급기야 우리는 패트런 노벨을 이야기하기에 이른다. 

소설가 김민정은 패트런을 위해 글을 쓰고, 생계를 유지하던 18세기 이전 작가들이 부르주아지의 등장으로 비로소 자유로운 창작을 하게 되었으나 사회 전부를 장악한 자본의 위력으로 다시금 패트런 노벨이 등장할 지경에 이른 오늘날의 세태와 작가들의 처지를 재미있게 소설에서 그린바 있다. 김민정의 짧은 글을 넘기며 정작 나는 딴생각을 품었다. 작가들은 이중의 삶을 살아내야하지 않을까하는 다소 틀에박힌 생각. 글과 삶이 따로가 아닐바에야, 창작의 독립을 위해 작가는 자립해야한다. 물론 우리 모두가 책읽기에 열심이고, 남는 시간을 긁어모아 책보는데 바친다면 이 세상 작가들은 배고프지 않다. 자본의 전략, 공공도서관의 증가, 여가시간의 부족, 정신적 여유가 부재한 시대 조류, 출판업계와 비평계간의 소수 스타작가 띄우기 협업도 문제다.

이러한 가운데, 작가의 경제난에 다른 견해를 지닌 평론가 조영일은 뭉칫돈을 꿈꾸며 독자에게 영합하거나, 상업적 성공을 문학적 성공으로 착각하는 최근 분위기를 비난한다. 조영일은 일본 근대문학의 거목, 시마자키 도손의 ‘재물은 도둑질이다’라는 생각을 인용하며 문학가는 궁핍과 소외의 쓸쓸함을 당연히 감당해야한다고 주장한다. 한편, 소설가 로맹가리는 빵 한 덩이를 구걸해야만 했던 처절한 가난의 시절, 하늘을 노려보고 탄식했다. “도대체 누가 배고픔이 글을 낳는다고 했단말인가!”하고. 나는 조영일의 팡세와 냉소, 로맹가리의 부르짖음에 전부 공감한다. 서러운 궁핍과 패트런의 온정은 종국엔 작가가 주옥편을 생산하는데 각기 일조할 것이다. 

그럼에도, 조영일의 견해를 발전시켜보자. 설움과 가난을 문학가로서의 자존감으로 받아들이더라도 작가는 자신의 생계를 구체적이고 평범하게 설계해야한다. 정책적, 사회적 지지도 필수 사안이지만, 작가 스스로 생계 확보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글쓰기와는 별도의 생계를 통해 작가는 보편 일상에 처하며 온전히 삶으로 침투할 수 있다. 사실, 직업으로서 작가는 부조리하다. 작가와 창작에 대한 판타지를 걷어내고 글짓기는 바로 삶짓기 다름아님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지성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글도 그 진정성은 반지성적이고 몰지성적인 일상에 기댈 따름이다. 소외의 쓸씀함에 파묻혀 술마시고 흐느적거린다거나, 정처없이 고독 속을 헤매이며 패트런의 구원을 바라느니 차라리 글쓰려는 지향을 거두는 것이 낫다. 물론 누구의 해설처럼, 패트런 소설이 문학의 새로운 방향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고전적으로, 내 기쁨이 기대고 있는 수많은 역사상의 슬픔들을 떠올린다. 같은 맥락으로, 모든 창작의 패트런은 삶 자체라고 생각한다. 해물순두부집 사장의 호의, 가족의 사랑, 동업자의 배반, 고통의 눈물, 생활의 감동, 미래의 불안, 과거의 잘못, 역사와 정치... 이 전부가 내 글쓰기여정의 패트런이다. 사랑으로 충만하고, 상황과 사건에 너그럽고, 세상과 삶에 깊은 시선을 가진 ‘나’일때 비로소 쏟아낼 수 있는 좋은 글. 그 경지에 다다르는데 필요한 것이 일상의 누적, 세월이다. 글쓰기와 상관없는 독자적인 생계활동으로 채워진 작가의 일상은 아이러니하게도 좋은 글을 위한 물질적, 정신적 연료가 되어줄 것이다. 

나의 사적인 일상, 이도저도 아닌 정체불명의 이야기로 가득하지만, 지극히 사적인 사건이 공적인 행위로 이어지는데 튼튼한 밑거름으로서의 작가의 생계를 말하고 싶었다. 김민정은 작가는 글쓰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한다고 말한다. 나는, 그것은 다만 부수입일뿐 글쓰기의 주수입은 삶을 잘 지어내는 것 그 자체라고 여긴다. 우리 모두는 각자 자신들의 삶을 잘 지어야하는 창작의 숙제를 떠안고 산다. 생계 돈벌이는 아름다운 삶짓기(와 좋은 글짓기)를 위한 입문이다. 

내 생계벌이에 도움을 주는 이웃과 환자들, 가족, 사장님의 따뜻한 지지가 담긴 꽃게를 듬뿍 넣은 해물순두부, 일상의 혼란과 시련. 이 모든 것에 나는 말할 수 없는 부채감을 안고 살아간다. 내 생계, 일상 전부가 내 글짓기, 삶짓기의 눈물나게 고마운 패트런들이다. 삶을 잘 살아내어 마침내 이 모든 채무관계에서 자유롭게 해방되기를 상상해본다. 그 날이 바로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글을 써내는 날이 되리라. 오늘은 사장님의 간곡한 권유대로, 새로운 메뉴에 도전해보아야겠다. 비록, 그의 소원대로 유명한 작가는 아니지만, 내 삶짓기와 글쓰기에 그가 어떤 조력을 하고있는지 이야기해주련다. 그가 무척 기뻐할 것이다.   

윤희정 한의사 / 광주광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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