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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간 자전거로 당진에서 파주까지 왕복 360㎞ - 김기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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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를 가까이에서 느끼고 싶어 떠난 자전거 여행, 시원한 바람, 친구 그리고 삶

 

<첫째날… 8월29일 금요일>


자전거 여행 첫날, 당진에서 오산까지는 처남이 트럭으로 데려다 줬다. 오산에서부터 자전거로 달렸다. 1번 국도를 타고 곧장 수원방향으로 달렸다. 오늘의 목적지는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수릉리 신태식의 별장까지이므로 팔당대교로 건너기 위해 하남시 방향으로 달렸다. 역시 길고 먼 오르막길은 너무나도 힘들었지만 수변을 달릴 때에는 다른 자전거 마니아들을 많이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팔당대교 근처 찻집에서 친구 윤봉이를 만났다. 커피 한 잔이 너무나도 시원했다. 윤봉이는 ‘에스프레소커피’라는 것을 마셨다. 요즘은 그게 신식이란다. 아주 작은 컵에 진하게 내려 마시는 커피인데 그 커피를 마시는 지역이라면 세련된 도시라나?

이제부터 둘이 달리기 시작했다. 팔당대교를 타고 한강을 건너 달리는 강변도로는 시원했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를 지나 양서면 부용리, 목왕리를 지나 서종면 수릉리 현장에 도착했다. 여기서 같이 가기로 한 친구 태식이는 벌써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포도주를 한 모금씩 마시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자정 너머까지 대화를 나눴다. 태식이는 산업시대에 우리나라가 성장하는 건설의 중심에 있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해외에서의 근무도 어려웠던 일로의 기억이 아니라 이 나라 발전에 기여한 자부심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일부 사람들이 건설업계를 부정적으로 말하는 것에 대해 동의할 수 없다고도 말했다. 그러면서 자기는 성직자나 교사처럼 높은 도덕성의 소유자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정한 방법으로 살아가는 자도 아니라고 했다. 다만 현실의 세계에서 서로 도우며, 직장에서도 동료와 상하자간에 마음과 정을 나누고, 사회에서 인사를 나누어야 할 때 인사를 나누고 그렇게 살았으며, 또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울러 대한민국의 건설업계가 부정의 집단이 결코 아니며 조국의 경제발전에 다른 어느 분야보다도 그 기여한 바가 크다는 것을 태식이는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둘째날… 8월30일 토요일>


자전거는 다시 2일째 질주를 시작했다. 팔당대교를 건너기 전에 남양주시 조안면에 소재한 다산 정약용 기념관에 들렀다. 문화관, 기념관, 생가 및 사당, 묘가 있고, 경내의 조경 등이 잘 돼 있었다. 언제 한 번 직원들과 함께 벤치마킹을 해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팔당대교를 건너 미사리 조정경기장으로 갔다. 배들을 보관해 두는 창고에는 여러 대학, 고교, 실업팀 등에서 맡겨 놓은 배들이 빼곡히 쌓여 있었다. 여기 조정경기장도 견문을 넓히는 견학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은 물론이다.

오후 주행은 한강 자전거도로를 달려 일산을 지나 통일동산이 있는 파주시 탄현면 성동리 하명근이 경영하는 프로방스까지로 했다. 한강 자전거도로는 자전거 마니아로 넘쳐났다. 젊은 청년층부터 부녀자, 노인들도 있고, 저마다 지나가는 자에게 손을 들어 인사했다. 간간이 물이나 음료수를 파는 편의점이 있고, 강물 위에 품위 있는 선상카페도 있었다. 강변에 여러 가지 편의시설이나 운동기구, 수영장, 야영장도 설치해 놓았다. 교각 밑에는 시민들이 앉아서 쉴 수 있도록 해 놓은 곳도 있었다.

잠실대교 밑에는 낙차시공이 되어 있는데 어도(魚道)를 설치해 놓은 것이 인상 깊었다. 마포대교까지 가니 너무 피곤해 다리 밑 벤치에서 20분간 잠시 눈을 붙였다.

목적지까지는 아직도 30여 ㎞는 남은 듯하다. 가도 가도 목적지는 멀게만 느껴지고 힘은 빠지고 지치고 시간은 늦어져서 우리는 할 수 없이 목적지인 프로방스를 8㎞를 남겨 놓고, 명근이를 불러 자동차로 들어갔다. 우리는 저녁 8시에야 도착했고 자전거는 100㎞를 달렸다.

그날 밤에는 찜질방에서 자는 새로운 경험도 하게 됐다. 6천원만 내면 찜질방에서 목욕하고, 하룻밤 잔다! 이렇게 기가 막힌, 또 경제적인 여행방법을 나는 지금까지 모르고 있었다니!

찜질방은 경제적이고 편리하기는 하지만 불편한 점도 있었다. 우리는 남녀 모두가 자유롭게 누워 잘 수 있는 넓은 공간에 자리하고 누웠다. 그런데 전등은 환하게 켜져 있지, TV소리는 요란하지, 사람들은 왔다 갔다 하지, 바닥은 딱딱한 마루바닥이지, 정말 못자겠다. 그래서 수면실로 옮겼다. 여기는 전등을 켜지 않고 매트리스도 있어 좋긴 한데 누군가가 쉬지도 않고 코를 고는 바람에 도저히 잘 수가 없었다. 윤봉이의 표현을 빌리면 ‘포크레인으로 바위를 긁는 소리’였다.


<셋째날… 8월31일 일요일>


오늘은 남쪽으로 가야 한다. 가능한 한 당진이 가까워 질 수 있게 가야한다. 아침 8시30분에 출발했다. 수색을 거쳐 상암구장 옆을 지나 성산대교를 건넜다. 자동차 전용도로인 서부간선도로를 따라 금천까지 매연과 함께 했다.

안양유원지에서 고등학교 졸업 후 36년 만에 반가운 친구 찬철이를 만났다. 그곳에서 우리 셋은 잠시 시간을 함께 한 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다시 헤어져야 했다. 찬철이는 집이 있는 의왕으로 가고 윤봉이도 여기서 서울로 갔다.

나는 다시 혼자서 달렸다. 당진을 향하여....... 1번 국도를 따라 계속 달렸다. 오늘 당진까지...... 아니면, 최대한 당진 가까운 곳까지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화성을 지나 청북에 오니 오후 6시인데 더 이상 가기는 너무 힘겨웠다. 자전거 미터기는 121㎞를 달렸다고 표시하고 있었다. 자전거 여행 마지막 밤은 청북에서 보냈다.


<넷째날… 9월1일 월요일>


당진으로, 당진으로...... 안중을 지나 아산방조제를 지나고 인주면 밀두리에 도착했다. 페달을 밟아 삽교호를 지나서 거산리 도로변에서 잠깐 쉬었다가 당진 집에 도착하니 아내가 ‘지금 막 대문에 환영 전단을 써 붙이려는 참이었는데 도착했다’며 반가이 맞아 주었다. 아내에게 정말 고마웠다. 시간은 정확히 11시50분이었다. 오늘 달린 거리는 46㎞이었다. 3박4일 동안 달린 거리는 총 360㎞였다. 여행을 무사히 마친 것에 정말 감사하다.


글 / 김기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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