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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8.09.22 00:00
  • 호수 728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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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전체가 사라지게 됐다” - 소소리 류제신 이장

“소소리에는 80호가 살고 있습니다. 이중 10가구가 이번 합덕테크노폴리스에서 제외되고 나머지는 모두 포함됐죠. 먼저 합덕 산업단지 개발로 당시 9가구가 수용된데 이어 마을이 사라지게 된 것입니다. 마을 전체가 사라지는 거죠.”

류제신 이장은 “소소리는 축산과 과수, 밭농사가 주를 이루며 토질이 좋아 작물이 잘자라는 곳”이라며 “예전부터 조용하고 인심좋은 대표적인 시골마을로 인근마을에 비해 장수 마을이기도 하다”고 마을을 소개했다.

또 “마을단위 담배재배 면적이 전국에서 제일 많은 곳”이라며 “이런 이곳이 합덕 테크노폴리스 산업단지에 포함돼 개발된다고 하니 마을 주민 모두가 불안하고 근심만 쌓이고 있다”고 불안한 심정을 전했다.

그는 “합덕지역에서는 낙후된 합덕발전을 위해 반기겠지만 소소리가 희생해야 한다는 것에 마을 주민들이 불안해 하고 있다”며 “합덕산업단지에 이어 합덕테크노폴리스로 인해 마을 전체가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고 말했다.

“합덕산단 개발 당시 주민들은 크게 동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번 합덕테크노폴리스는 주민들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습니다. 삶의 터전을 떠나 다른 곳에서 정착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평생을 농사지으며 살아왔고 배운 것이라고는 농사뿐인데 어디 가서 무얼 하며 살수 있겠습니까.”

그는 “주민들이 원해서 추진되는 사업도 아닌데 보상가도 현실성이 없고 대토도 불가능한 상황에서 양도소득세를 내야한다”며 “제도적으로 개선돼어야 한다”고 말했다.

“평생을 농사지으며 살아온 젊은 사람들이 타지에 가서 다시 시작하기도 힘든데 나이많은 노인들에 대한 생계대책도 세워지지 않는 채 희생만 강요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걸맞는 보상이나 대책이 세워져야 합니다.”

 

 


“주민들의 삶은 보상이 불가능”- 소소리 최봉묵 새마을지도자 

6년여간을 소소리 새마을 지도자로서 마을 일을 맡아온 최봉묵(50) 지도자.

그는 소소리에서 약 4천여평의 과수원을 25년째 운영하고 있다. 처음 그의 부친(최병석)이 일궈놓은 과수원을 젊은 시절부터 이어받아 지금까지 운영해오고 있다. 그는 지금 생활에 더 없는 만족을 느낀다고 했다.

아버님을 모시고 부인과 함께 과수원을 운영하며 직접 설계한 집에서 대학다니는 큰딸과 늦둥이 아들을 보며 욕심내지 않고 지금처럼만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시간나는 틈틈이 집앞에 나무를 심고 잔디를 깔아 작은 정원도 만들었다.

평생을 살며 일궈놓은 과수원에서 수확을 앞둔 사과들이 가을 햇살에 탐스럽게 익어가고 있었다.

농부이기 보다는 학자이길 원했던 부친은 아들에게 과수원을 맡기고 늦깍이 학구열을 올리며 인근 초등학교에서 한자를 가르치며 자상한 할아버지로, 아버지로 커다란 바람막이가 되어 주었다.

그런 이곳이 산업단지로 인해 개발된다고 하니 그는 막막하기만 하다.

“25년을 넘게 노력과 땀을 쏟아부어 결실을 맺으며 더 이상 바랄 것 없는 생활을 해왔습니다. 평생을 살려고 직접설계해 집도 짓고 정원도 만들었는데 이 모든 것을 버리라구요.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또 배운 것이라고는 농사짓는 것 뿐인데 어디가서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겠습니까.”

해나루 사과 연구회 감사이기도 한 최병묵씨. 사과연구회 회원들의 노력 덕분에 다른 지역의 명품 사과 못지않은 인정을 받고 있다. 곧 공동 선별장도 완공될 예정이다.

“일부 사람들은 보상받아 나무를 옮겨 심으면 된다고 하지만 정상적으로 과실을 맺고 소득을 올리기 위해서는 최소한 5~6년은 걸립니다. 과수원을 다시 운영할 만한 토지를 구입하기도 힘들뿐더러 다시 옮겨심는다 하더라도 정상적인 과실을 수확하기까지 손실이 너무나 큽니다. 마을주민 대다수가 과수원이나 축산업과 시설하우스를 하고 있는데 이 주민들이 어디가서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엄두도 못내죠.”

 

 

 

소소리 김성호 주민대책위원장

“남부권 발전도 좋고 산업화도 좋지만 마을 전체를 수용해 개발한다는 데 찬성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균형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주민들의 피해를 강요하고 있습니다. 조상대대로 살아온 삶의 터전을 내어 주고 나가서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할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김성호(55) 위원장은 “배운 것이라고는 농사뿐인데 보상 몇푼 받아 어디가서 땅을 살 수도 없는 현실”이라며 “주민들의 재산을 가지고 건설업체만 부자 만드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주민들에게 지역이 발전되고 상생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하지만 이 곳을 떠나야 하는 주민들에게 그것이 무슨 소용입니까. 효의 고장이었던 소소리가 이번 합덕테크노폴리스 개발발표 이후 마을 주민들의 감정이 격해져 있고 민감해져 사소한 다툼도 잦아졌습니다. 먼저 개발이 시작된 합덕산업단지에 수용된 주민들 중 형제간 고소고발도 생겨났구요”

김성호 위원장은 또 “소소리의 경우 축산농가와 과수 농가가 많은데 이들이 외지나가서 돈사며 축사와 과수원을 어떻게 다시 운영할 수 있겠냐”며 “동네 주민이 하니까 그냥 넘어가는 것이지 타동네에서는 받아 들여지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주민들이 원해서 하는 사업도 아닌데 현실적인 보상은 커녕 양도소득세와 노인 등 주민들의 생계대책도 없는 개발을 반대할 수 밖에 없다”며 “지역주민의 60% 이상이 반대한다면 산업단지가 개발이 안된다는 소리도 들었고 부재지주들도 산업단지 개발에 반대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 곳을 지키기 위해 주민들의 힘을 모아 끝까지 투쟁하는 방법 밖에는 없습니다. 이대로 삶의 터전을 빼앗길 수는 없습니다”

 

 


“삶이 뿌리채 뽑히는 것”- 국화재배하는 이태규 씨 

1990년대 초 한우를 사육하다 당시 우루과이라운드 등으로 축산이 어려울 것이라 판단하고 시설하우스로 전업한 이태규(57)씨.

이씨는 국화를 재배하며 일본에 수출까지 할 정도로 국화재배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성공했다.

그러나 아이엠에프(IMF) 이후 국화값은 10년째 같은 가격이지만 원자재가는 해마다 오르며 힘에 버거울 정도다.

극동건설이 당진군과 공동으로 추진하는 합덕산업단지로 인해 그의 시설하우스의 일부가 수용됐다.

그런데 이번에 합덕테크노폴리스 개발로 인해 또 다시 수용당할 위기에 처해졌다.

“그냥 한우를 키울 걸 그랬어. 이제와서 후회한들 소용 없지만 말이여. 20여년동안 국화를 재배했는데 포기할 수 없잖어. 그래도 끝까지 해야지.”

어린 국화묘목을 만지는 이씨의 손길에는 애정이 가득했다.

그도 다른 지역으로 옮겨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엄두도 못내고 있다고 말했다.

가진 것이라고는 집터와 하우스 자리가 전부인 이씨는 여기서 보상받아 다른 지역에서 대토한다는 것은 사실상 어려운 현실이라며 걱정했다.

원자재가는 오르고 10년째 같은 값인 국화값에 경기마저 좋지 않아 더 없이 힘들기만 상황에서 합덕테크노폴리스 산업단지 개발이라는 악재까지 겹친 것이다.

“현실적인 보상이 이뤄지는 것도 아니고 양도소득세 내고 나면 남는 것도 없어. 집한칸 땅한평 마련하기도 힘든데 어디가서 이만한 땅 마련해 다시 시작해. 삶이 뿌리채 뽑히는 것이나 마찬가지지.”

 


 

“효의 마을이 없어지게 돼 아쉬워”- 소소리 최병석 노인회장 

흰백발이지만 여든이 넘은 나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정정한 소소리 노인회 최병석 노인회장. 최병석 회장은 지난해까지 종로에 있는 족보제작 회사에 근무해왔다고 한다. 느지막한 나이에 성균관대학에 다니며 학구열을 불태웠고 방학이면 인근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한자도 가르쳤다고 한다.

최병석 회장은 40여년전 우강에서 벼농사를 짓다가 소소리로 이사와 과수원을 운영하며 마을일을 도맡아 해왔다.

“우리마을은 다른 마을에 비해 장수마을이지. 65세 이상 노인이 65명에 이를 정도로 노인들이 많어. 최고령으로 92세의 어른이 있으니까. 할머니 회원들이 많은데 그중에서도 혼자 살고 있는 노인들이 절반을 차지해.”

최 회장은 “소소리는 보편적으로 부촌”이라며 “마을 사람들간 욕심부리지 않고 우애가 돈독하다”고 말했다.

최병석 노인회장은 소소리를 효의 마을이라고 소개했다.

“지난 1985년 마을 노인회가 구성되면서 매월 15일에는 85세 이상의 노인에게 봉송하는 전통이 있었는데 주로 닭을 봉송했지. 그런데 지금은 기금이 부족해 명절에만 내복 등으로 봉송하고 있어. 그리고 부녀회에서는 농한기가 되면 매일 번갈아가며 점심을 대접해오고 있지. 아주 고생들이 많어. 고맙기도 하고.”

최병석 노인회장은 이웃간 정이 넘치던 효의 마을이 산업단지로 개발된다는 것에 아쉬워 했다.

“평생을 같이 살아오던 주민들이 뿔뿔이 흩어지게 생겼어. 특히 노인네들은 어떻게 살라는 건지. 그냥 이곳에서 살면 먹고 사는 데 부족함이 없는데 말이야. 이웃지간 서로 정답게 살게 놔두면 얼마나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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