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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1999.05.17 00:00
  • 호수 274

책을 보는 아빠, 앞을 보는 엄마 - 정강현, 양순임씨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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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가정의 달 특집 - 우리부부



책을 보는 아빠, 앞을 보는 엄마



과수원 일 짬짬이 우리는 볼링친구



신평면 거산리 정강현·양순임씨 부부



과수원 일을 마친 정강현(43세)·양순임(40세)씨 부부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집으로 돌아왔다. 우강면 세류리에 사과과수원 6천몇평을 갖고 있는 이 부부는 나란히 과수원으로 출근해 나란히 퇴근하는 동업부부.

3년전 쯤 신평으로 이사나오기 전에는 과수원집 하얀 사과꽃밭에서 딸하고 아들하고 아담하게 살았다. 사과나무보다 빨리 자라는 아이들의 성장을 좇아 신평 거산리로 이사온 뒤로 과수원 오가는 길은 이 부부에게 이제 먼 출퇴근길이 되었다.

그래도 좋았다. 웃으면 함박꽃이 되는 아내의 얼굴을 보며 궂으나 좋으나 한결같은 남편과 더불어 다니는 일은 16년이 지나도 싫지 않다고 한다.

게다가 이 부부는 4년전부터 볼링동호회 ‘부부클럽’ 회원으로 참가하고 있는 ‘한 취미부부’이기도 하다. 둘이서 우연히 시작한 게 어느새 남들 눈에 띄어 클럽회원까지 됐다.

“해보니까 참 재미있더라구요. 그렇다고 제가 볼링실력이 있다고 보면 오산이에요. 처음처럼 볼링공이 뒤로 가거나 도랑으로 빠지는 일은 없지만 아직 실력은 형편없어요.”

부인 양순임씨가 명랑하게 깔깔 웃으며 하는 말이다. 웃는 모습이 가히 일품이다. 덧니가 웃음을 더 풍성하게 하는 함박웃음. 무슨 꽃에 비유해야할지 싱그러운 웃음은 나이 마흔이 무색해보일 지경이다. 아! 이러니까 이 집에 웃음꽃이 안필 수 없겠구나 싶었다. (혹시, 남편 정강현씨를 매료한 것도 바로 저 웃음?)

그러면서도 양씨는 남편 정강현씨의 볼링실력은 꽤 수준급이라고 칭찬해마지 않는다. 어쨌든 이 부부는 주위에 잉꼬부부로 소문이 자자한 터다.

“잘 모르겠어요. 왜들 그렇게 보는지, 우린 아무것도 특별할 게 없는 부부에요. 그저 생활일 뿐인걸요. 뭐...”

아내 양순임씨가 또 명랑하게 말을 받는다. 하지만 그때 이들이 잉꼬부부임을 증언할 증인 한사람이 등장했다. 바로 큰딸 주영(16세)이다. 저녁식사 후 하나뿐인 남동생 상원(14세)이와 컴퓨터학원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제가 봐도요, 우리 엄마 아빠는 참 재미있게 사세요. 볼링도 같이 치러 다니시고요, 애교스럽고 다정다감한, 잘 어울리는 한쌍이에요.”

뜻밖의 참견에 놀란 듯하더니 양순임씨의 표정이 슬그머니 피어 올랐다. 주영이는 말도 잘하고 글도 잘쓰는 컴퓨터광이다. 물론 공부도 잘한다. 하지만 운동과 노래는 참 못한다.

“그건 아빠 좀 닮지 그랬니?” 엄마의 한마디다.

주영이가 증언해준 것은 또 있다.

“엄마는요, 뭐든 결정할 때 우리 의견을 존중해주시고요, 시대에 맞는 걸 배울 수 있도록 정보를 주세요. 피아노 배울 때나 컴퓨터 배울 때 다 그랬어요. 그리고 아빠는요, 말만 잘하면 코앞에 있는 학교까지도 태워주시는 다정한 분이시고요, 착하고, 책을 많이 읽고, 도서관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책도 빌려다 주세요. 가장 좋은건요, 여행을 많이 다녀요. 그 덕분에 보충수업도 빠져요.”

주영이가 ‘착하다’고 어른식으로 말한 것은 ‘바르다’는 것이다. 주영이가 봐도 과수원 일에 최선을 다하고 노력한 이상의 댓가를 바라지 않는 아빠가 정직해 보였을 것이다.

남편 정강현씨는 이집 도서관 담당이다. 평소에도 책을 많이 읽어서 애들이 어려서부터 책을 좋아했다. 일주일에 한번 오는 이동도서관에서 애들이 적어준 목록대로 책을 빌려주고 그래도 독서에 목마른 아이들이 일요일날 도서관에 가자고 그러면 주저없이 합덕도서관으로 향한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잔소리가 없다.

아내 양순임씨가 ‘남편은 좋은아빠’라고 자랑하자 금방 정강현씨는 ‘집사람은 더 바랄게 없는 좋은엄마’라며 한술 더 뜬다. 부부 각자가 상대를 ‘좋은 아빠’, ‘좋은 엄마’라고 볼 수 있다는 게 이들 부부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비결처럼 보였다.

“더이상 욕심이 없어요. 더이상의 행복이란 것도 없을 것 같아요. 저희들도, 아이들도 지금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다보면 그에 맞게 그때마다 새로운 길이 열릴 거라고 믿어요.”

세류리에 살 때 가까운 세류공소에 나가면서 맺게 된 천주교와의 인연이 아니더라도, 이 소박한 믿음이야말로 이 부부가 행복하게 사는 비결인 듯 싶었다.

신평면 거산리 두성아파트, 24평짜리 조그만 집에는 남부러울 것 없는 한 부부와 두아이가 저마다 씩씩하게 살고 있었다.

김태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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