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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8.11.10 00:00
  • 호수 735

●기획 | 직불금 사태, 현장을 가다 “직불금 수령, 지주와 소작농 합의하에 이뤄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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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주가 양도소득세 감면받기 위해 직불금 수령 소작지 뺏길까봐 ‘울며 겨자먹기’

 

풍년이란다. 하지만 수확철 농민들에게 돌아 온 건 풍년의 기쁨보다는 낮은 수매가와 인상된 영농비, 쌓여가는 부채에 대한 걱정이었다. 게다가 공무원들의 직불금 불법 수령 소식은 더 무어라 할 말이 없게 만들었다.

지난 1일과 4일, 직불금에 대한 현실과 농민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기 위해 농촌 현장을 찾았다. 농민들은 “직불금을 농민이 아닌 지주가 챙기는 일이 어디 어제, 오늘 일이냐”며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엉터리 법을 가지고 이제 와서 서로 떠넘기는 공무원들의 작태가 한심스럽다”고 말했다.


지주가 직불금 수령,

도지 삭감해주는 게 ‘공식’

“직불금은 직불금대로 챙기고, 도지(땅을 이용한 돈)는 도지대로 비싸게 받는 악덕지주들도 많아. 도둑놈이지. 그래도 그거라도 지어야지 근근히 먹고 사니까 별 수 있나. 수천만원씩 빚내어 산 기계를 놀릴 수 없는 것 아니야.”

우강에서 농사를 짓는 이만영씨는 “임대를 놓칠까봐 지주가 직불금을 챙겨가도 뭐라고 못하는 농민들이 허다하다”고 말했다. “그래도 우리 지주는 좋은 사람이라 임대료를 계산할 때 직불금을 제하고 선불로 주는 도지도 이자 10%를 뺀 만큼만 받는다”고 말했다.

순성면 ㅇㅇ리 이장은 “직불금을 지주가 수령할 경우 도지를 한마지기(661㎡, 약 200평)당 쌀 1가마(80㎏)를 받고 직불금을 농민이 받을 경우 도지를 한마지기 반으로 치르는 것이 우리 마을 ‘공식’”이라고 말했다.

한 영농회장은 “지주와 농민이 서로 합의 하에 직불금은 지주가 챙기고 도지를 삭감해 주는 것이 일상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ㅇㅇ리에는 직불금도 지주가 챙기고 도지도 비싸게 내는 사람도 있지만 그나마 그 땅이라도 빼앗길까봐 뭐라고 한마디 못한다”며 “그런 사례들이 실제로 있지만 지주가 알면 피해를 볼까봐 아무도 말해주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평생토록 농사를 지어온 김영태(61) 씨는 “임대농 대부분이 다만 얼마라도 땅을 임대해 먹고 사는데 직불금이며 도지에 대해 왈가불가했다가 땅을 다른 사람에게 빼앗길까봐 큰 소리도 못친다”며 “임대를 원하는 사람들이 워낙 많다보니 지주 눈 밖에 날까 농민들은 불안해 한다”고 말했다.


이장들 “불법인 거 알지만...”

유모(순성) 이장은 “연초가 되면 지주와 농민이 경작확인을 받기 위해 도장을 찍어달라고 온다”며 “대부분이 지주와 농민이 직불금을 받으면 한가마 반, 못 받으면 한가마로 사전에 합의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불법인 걸 알지만 다른 동네사람에게 땅을 뺏길까봐 최대한 우리 마을사람이 손해를 덜보도록 조정해 도장을 찍어주고 있다”고 말했다.

김모(순성) 이장은 “임대를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지주가 직불금을 챙기고 있다”며 “지주가 양도소득세를 감면받기 위해 추후에 다시 농민에게 돌려주더라도 직불금을 자신이 수령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지주가 직불금을 수령하는 것은 양도소득세 때문이라는 게 농민들의 설명이다. 자경의 경우 추후에 땅을 매각할 때 발생하는 양도소득세가 임대농에 비해 2배가량 차이 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질적으로 농사를 짓는 농민들의 쌀 소득을 보전해주기 위해 마련된 제도인 직불금을 수령했다는 것이 자경을 했다는 증거가 되는 셈.

한편, 감사원이 발표한 8개 시·군, 관외경작자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당진군은 총 63개 농가(51만8110㎡)가 관외경작자로 조사됐으며 이중 18가구만 직접 경작을 했고, 나머지 57%에 해당하는 33개 농가는 현지 농민에게 임대하면서 직불금을 수령한 것으로 나타났다.

군 한 관계자는 “양도소득세를 감면받기 위해 직불금을 본인이 수령하고 농민들에게도 돌려주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며 “공무원들의 직불금 불법 수령으로 문제가 불거졌지만 본질적인 문제는 제도의 허술함 자체에 있다”고 말했다.

이모(우강)씨는 “직불금 문제가 불거지면서 지주들이 앞으로 영농회사에 농사를 맡겨 버려 농민들이 소작지를 잃는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며 “이번 참에 직불금 제도를 전면 개선해 직접 농사를 짓는 농민들이 혜택을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평생토록 농사지어도 내 땅 안된다”

우강에서 농사를 짓는 강규모(36) 씨는 “땅 값이 평당 8만원이라고 해봤자 그 땅에서 나오는 것은 8만원의 값어치가 안 된다”며 “농민들은 평생을 농사지어도 자신의 땅으로 만들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농가마다 수천만원씩 하는 농기계를 사기 시작하면서 농가부채가 늘어났고 더 이상 돌아올 수 없는 길로 가는 것 같다”며 “실질적으로 농민들을 위한 제도개편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순성면 백석리 한 농민은 비료값을 비롯한 모든 영농비가 두 배 이상 오르면서 이것저것 제하고 나면 남는 건 마지기당 1가마도 채 안된다고 말했다.

“논 한마지기에서 평균 4가마정도가 나와요. 그럼 그 중에 도지로 지주에게 한가마니가 나가요. 그리고 비료값 제하고, 농약값 제하고, 기계 빌린 값 제하고 나면 쌀 한가마니 정도 남는다고 보면 되요. 그런데 요새는 그나마 비료값이고 뭐고 안 오른 게 없잖아요. 이런 상황에서 직불금마저 지주가 챙겨간다고 하니... 그래도 별 수 있나 이런 시골에서 할 수 있는 거는 농사뿐이니까...”

우강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이만영 씨는 “그나마 땅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도 최근 당진 땅값이 오르자 빚을 갚을 요령으로 땅을 조금씩 팔아 임대농으로 바꾸는 사람들이 허다하다”며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소작농으로 전락하고 농가들이 어려움에서 빠져 나오기 힘들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지주에게 땅을 임대받기 위해 저렴한 도지를 제시하는 등 이웃간에 못 믿는 상황도 종종 발생한다”고 덧붙였다.


석양이 지는 들녘, 볏짚을 싣고 돌아가는 한 농민을 불러 세웠다.

경운기 한 가득 실려있는 볏짚을 가리키며 논에 되돌려 줘야 좋지 않으냐고 물었다.

“그렇기야 하지만 소 먹이로 주려고 가져가는 거여... 사료값이다 뭐다 죄다 오르는 바람에 조금이라도 아껴보려고...”

그는 “비료값이니 뭐니 생산비가 죄다 올라 한 해 농사지은 보람을 느낄 새도 없는데 돈 잘 벌는 사람들이 농민들 직불금까지 가로챘다는 소식에 힘이 쭉 빠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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