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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 사라지는 마을 열두번재…송악면 한진2리 “재산권 묶어놓고 개발계획 설명없어 답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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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어려운데 개발이 되긴 되는 건지…”

마을의 일부만 개발돼 분위기는 뒤숭숭


편집자 주
 당진군에는 현재 현대제철의 일관제철소 건설을 위한 송산 제1산업 단지를 중심으로 연관 산업 단지 입주계획이 잇따르고 있다. 현재 군내에는 송산제1산업 단지를 비롯해 대규모 산업단지가 추진중에 있다. 기존 고대부곡 공단을 합친다면 전국 최대 규모다. 이처럼 전국 최대 규모의 산업단지가 조성됨에 따라 조상대대로 살아온 삶의 터전을 떠나야 하는 이들이 있다. 산업화, 도시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마을 전체가 지도속에서, 역사속에서 사라져야 하는 현실에 처해 있다. 또한 우리나라 10대 아름다운 포구로 불리웠던 성구미포구는 산업단지에 수용됨으로써 이제는 역사로만 남게 됐다. 이에 본지는 산업화로 사라져 가는 마을과 주민들의 이야기를 취재 보도할 계획이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이뤄졌습니다


마을의 일부만 수용되는 한진2리

일요일 오전, 농한기로 접어든 한진2리는 한산했다. 상록초등학교 맞은편 당진소방서 송악지대 주차장에 서서 한진포구 쪽을 바라본다. 마을 어른들의 말에 따르면악지대 주차장에 서서 한진포구 쪽을 바라본다. 마을 어른들의 말에 따르면 바닷물이 차오르는 것이 눈앞까지 펼쳐지고 아침이면 굴을 따러 나갔다던 한진포구의 풍경은 이미 오래전 가로 막혔다. 고대공단에 빼곡히 들어선 공장들의 높다란 건물과 곳곳에 솟아오른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흰 수증기가 그 풍경을 대신하고 있다.
또 연신 공단을 오가는 덤프트럭과 대형 화물차들로 619번 도로는 곳곳이 움푹 패여 울퉁불퉁하다.
심훈 선생의 필경사가 자리한 송악면 부곡리와 619번 지방도를 사이에 두고 마주한 한진2리 일부가 황해경제자유구역 송악단지로 묶여 황해경제자유구역개발계획에 의해 개발이 진행될 예정에 있다.
고대공단 부근에 자리한 한진2리 중 38번 국도를 기준으로 내륙지역 일부가 황해경제자유구역 송악단지로 지정되었다. 120여 세대가 살고 있는 한진2리 중 송악단지에 포함된 세대는 40여대 세대로 그 중에서 오랫동안 한진2리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토착민은 10여가구, 나머지는 외지에서 이사와 정착해 살거나 외지인 소유의 땅이다.
마을의 일부가 개발구역으로 지정되었고 그 중에서도 땅을 소유한 토착민들의 수가 수용되는 다른 마을보다 적은 것이 한진2리의 특징이다.
박주석 한진2리장은 “80년대 말 고대, 부곡 공단이 조성되면서 전형적인 어촌 마을이었던 한진2리는 농사도, 바닷일도 제대로 할 수 없는 마을이 되어 갔다”며 “또 다시 마을 일부가 개발구역으로 선정되는 바람에 마을 분위기가 뒤숭숭하다”고 전했다. 그는 “이주대책을 세워주던가 일괄보상 등 개발 계획과 주민들의 보상 대책에 대해 분명한 설명을 해줘야 하는데 재산권만 묶어 놓아 주민들만 고충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어려운 경제상황, 개발계획 설명없어 답답하기만

마을에서 만난 사람들은 “경기가 어려운데 황해경제자유구역이 되긴 되는 것이냐”고 물어왔다. “사업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 땅이 묶여 있어서 재산권을 행사할 수도 없고 답답하다”는 심정도 내비췄다.
얼마 전, 본지에서 보도한 바와 같이 현재 황해경제자유구역 송악지구의 사업자 선정이 늦어지고 있는 이유는 ‘일괄보상’에 대한 협의가 늦어진 것에 따른 것으로 나타났다.
황해경제자유구역청과 당진테크노폴리스 사업단 양측은 올해 안에 사업 시행사를 선정해 협약을 체결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는 가운데 주민들은 명확한 사업 진행 여부도 알지 못한채 불투명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10여 년 전 고대공단 조성으로 인해 한차례 개발이 진행된 바 있는 한진2리는 당시 보상을 받고 주거지를 현재 경제자유구역 송악단지로 옮긴이도 있다. 헌데 또 한 차례 산업개발이라는 명목아래 삶의 터전을 버리고 떠나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
한진2리 어귀에서 포도밭을 일구고 있는 박용문(62)씨는 “스무살 때부터 지금껏 연구하고 땀 흘려 일궈 놓은 포도밭인데 또 다시 개발한다며 떠나라 하니 이젠 정말 어찌해야 하나 막막하다”고 말했다. 그는 “보상을 받는다고 해도 주변 땅 값은 천정부지로 오른 상황에 현 시가가 아닌 정부 고시 가격으로 보상받아 양도소득세며 세금을 제하고 나면 다른 땅을 살 수도 없는 상황”이라며 “완전히 발가벗겨 내 쫓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상록초 맞은편에서 상가를 운영 중인 한 주민은 “요즘 경기가 어려운데 황해경제자유구역이 계속 진행되는 것”이냐고 물었다. 그는 “이렇다하는 분명한 말도 없이 땅을 묶어놔 돈이 필요할 때도 팔지 못하는 상황이라 답답하다”는 심정을 밝혔다.

 

한진2리의 지명과 전설

큰 나루터, 한진의 ‘봉월미’

한진2리는 본래 면천군 신북면의 지역으로서 아산만의 큰 나루가로 대진 또는 한나루라 하였다고 전해진다. 고종 32년 1895년 지방관제 개정에 의해 면천군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나루머리, 옥우물, 큰동미를 병합해 한진리라 해서 당진군 송악면에 편입되었다.
진두, 옥정, 동촌, 해방촌, 큰동미라는 마을이 모여 이뤄진 한진리 중 황해경제자유구역이 조성되는 한진2리 송악단지는 봉월미라는 산 아래 자리한 곳으로 현재는 부락을 이루고 있다기 보다는 도로변에 들어선 상가와 다세대 주택이 곳곳에 들어서 있다.
한진리에서 나고 자랐다는 박용문 씨에 따르면 봉월미라는 산에는 봉황이 놀았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공동묘지였다는 봉월미는 달이 뜨면 바위에서 봉황이 울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 봉황이 밤마다 찾아와 노닐만큼 명당이었다는 봉월미에 좋은 묘자리가 있었다고 한다. 헌데 그 묘는 남자를 묻어야 할 자리인데 여자 묘를 써서 그 가문이 망했다는 이야기도 함께 내려오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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