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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韓醫學), 근대화를 넘어 세계인의 의학으로
2019년 01월 11일 () 06:00:18 류정아 mjmedi@mjmedi.com
   
 

2016년 타계한 지식인 신영복은 생전 <담론>을 비롯한 그의 저서들에서 ‘탈근대론’을 힘주어 말하였었다. 그는 「상품과 자본」에 대한 강의에서 “모든 탈근대 철학이 공유하고 있는 담론이 바로 주체의 해체이며, 존재론의 반성”이라고 일갈하며 “근대사의 전개 과정은 ‘나’라는 주체의 자유와 해방이 만들어 온 것이며, 자기의 존재성이 배타적으로 과도하게 추구되는 과정에서 생긴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해 ‘탈근대’는 바로 이 과도한 주체에 대한 반성에서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라고 통찰한 바 있다. 그러면서 제시한 대안은 ‘관계론’이다. ‘존재론’이 아(我)와 비아(非我)를 가르고, 비아(非我)의 희생 위에 아(我)의 존재를 키워가는 것임에 비해 ‘관계론’은 자타(自他)가 어우러져 이루어 가는 상황 자체에 초점을 맞춘다. 결과적으로 자(自)도 타(他)도 서로 간 그리고 전체와의 관계에 따라 시시각각 다르게 자리매김 된다.

새해 벽두부터 ‘탈근대론’과 ‘관계론’을 꺼내어 든 것은, 이러한 담론이 지금 우리 한의계가 처해 있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지난 번 기고문까지 한의학 근대화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한의사 면허 제도이며, 그 시원(始原)이 일제 강점기의 ‘의생규칙(醫生規則)’이 아니라 대한제국기의 ‘의사규칙(醫士規則)’에 있다는 설명을 했었다. 면허 제도란 바로 일정한 자격요건, 즉 교육과정 수료 및 자격시험 통과 등을 갖추지 못한 비아(非我)에 대해 이러한 자격요건을 갖춘 아(我)의 배타성을 제1의 전제로 하기에 의학 발달사에 있어 ‘근대화’의 핵심 요소가 되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한의사협회사(韓醫師協會史)란, 광복 후 한의사 면허 제도를 수립하고 안마사, 침구사, 정골요법사, 약사 등에 대하여 한의사 면허의 배타성을 지키고 확장해 옴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이제는 양・한방을 통합한 1차 진료의가 되고 그렇기 위해 통합의학 교육을 실시하자는 현 한의사협회 집행진의 방침이 대세가 되고 있다. 한의사의 업무 영역과 그에 따른 교육에 대한 이 미래 설계는 받아들이는 입장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될 여지가 있으며, 시비 또는 하나의 계획으로써 현실 적용에의 적절함과 부적절함에 대한 평가도 다 다를 수 있다.

필자가 오늘 지면을 빌어 밝히고 싶은 것은, ‘양・한방 통합 1차 진료의’ 주장의 바탕에는 많은 한의사들이 지속적으로 비주류의학에 머물고 있는 한의학의 현실을 비관한 나머지 마침내 자(自)를 버려서라도 비아(非我)의 처지에서 아(我)의 처지로 격상하고 싶다는 자아 확장의 욕망에 동조함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흡사 일제 강점 말기 이광수나 김성수 같은 이들이 일본 지배자들의 내선일체 주장에 동조하여 조선 국민으로 하여금 황국 신민으로의 격상을 희망하게 했던 광경과 비슷한 인상을 준다. 이광수나 김성수 같은 소위 지식인들의 내면에 언제 끝날지 모르는 비아(非我)로서의 처지가 주는 피로감이 상당히 누적되어 있었을 것임 또한 현재 한의사들의 내면에 비주류 의학계 종사자로서의 피로감이 오랫동안 누적되어 쌓인 것과 유사하다 하겠다. 그러나 과연 조선 국민이 자(自)의 정체성을 버리고 황국 신민이 되어 비아(非我)의 처지에서 아(我)의 처지로 올라설 수 있었겠는가? 세계사 혹은 인류사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조선 국민이 그 정체성을 잃고 일본제국에 편입되는 것이 조선 국민의 정체성과 강역과 언어와 문화와 국가를 독립적으로 유지하는 것에 비해 더 이득이 되었겠는가?

 

한의학은 한의사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동아시아 인류 수천 년의 질병극복과 건강・장수에 대한 염원과 탐구, 노력의 소산이며 미래 세계 전 인류에게 질명극복과 건강・장수의 또 다른 희망과 대안을 제시할 가능성의 보고이다.

한의학이 오늘날 제대로 된 자리매김과 역할을 못하고 있는 상황의 일차적인 책임은 한의사들에게 있다.

그들은 자신이 가진 것의 특성과 가치를 잘 알지 못하며, 그러기에 현대사회에 맞게 새롭게 갈고 다듬는 수고를 게을리 하였다가 마침내 쓸모없는 것으로 만들고 만다.

지금까지의 한의학은 그러하지 못했으나, 앞으로의 한의학이 쓸모 있어지려면 반드시 한의학의 정체성과 철학에 부합하는 새롭고도 적절한 의사(醫事) 및 교육 형식 즉 제도, 법령, 틀, 외관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고 신영복 선생의 ‘탈근대론’과 ‘관계론’은 각각 ‘근대화론’과 ‘존재론’에 대한 현 시대의 대안적인 담론이자 동아시아 고전인 󰡔주역󰡕 및 음양오행론(陰陽五行論)에 바탕을 둔 전통 철학의 현대적인 해석으로써, 어려움에 처한 한의학에 하나의 좋은 모범이 된다고 사료되어 새해 벽두에 꺼내어 든 것이다.

 

참고문헌

상품과 자본.(신영복, 『담론』, 돌베개, 2015)

한의사조직과 활동.(대한한의사협회, 󰡔1898~2011 대한한의사협회사󰡕, 2012)

한의학과 국가정책.(대한한의사협회, 󰡔1898~2011 대한한의사협회사󰡕, 2012)

‘내선일체’와 식민지 지식인의 ‘변절’ 문제.(김석근,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한 비판적 성찰󰡕, 나남, 2009)

김성수.(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52459&cid=46626&categoryId=46626)

 

류정아(柳姃我) / 부산대학교 한의학전문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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