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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 명소기행 08] 고려 불교의학의 유흔, 한증막
소재지: 인천광역시 강화읍 교동도 고구리, 난정리
2019년 01월 25일 () 06:00:15 안상우 mjmedi@mjmedi.com
   
 

강화도는 대몽항쟁의 거점이었던 고려 궁터가 남아 있고 조선시대 외규장각이 설치되어있었던 역사문화의 고장이자 근세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에 걸친 양요洋擾와 외세의 침탈이 끊이지 않았던 수난의 현장이었다. 교동도를 비롯하여 석모도와 주문도 등 부속 섬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중 가장 큰 교동도와 석모도는 다리로 연결되어 있어 강화대교를 거쳐 교동대교나 석모대교를 지나면 배를 타지 않고도 차량으로 건널 수 있다. 다만 교동도의 경우, 북한의 황해남도와 마주보고 있는 해안경비 지역을 통과해야 해서 외지인의 방문시 초소의 검문을 거쳐야 한다.

작년 여름부터 한증에 나타난 조선시대 불교의학의 흔적을 추적하는 연구를 진행해 왔던 터라 오랫동안 꼭 들러야할 명소로 점찍어왔던 곳이지만 정작 논고가 마무리되는 시점에 이르러서야 겨우 둘러볼 수 있었다. 강화도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역사유적이 산재되어 있고 서울에서 접근성이 좋기에 여러 차례 답사여행의 대상지가 되었지만 교동도까지 일부러 찾아볼 기회는 없었는데, 마침 한증을 조사하다 보니 조선시대 한증막 유적이 남아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길을 나선 참이었다.

다행히 햇살도 좋고 오랜만에 하늘도 맑게 갠 날씨였지만 겨울 바닷가는 매서운 바람으로 야트막한 산길조차 걷기 어려웠다. 교동도에는 한증막 터가 몇 군데 남아 있는데, 먼저 들른 고구리의 조선시대 한증막 터는 인근의 연산군 유배지와 함께 볼 수 있고 입구까지 도로와 표지판이 잘 갖추어져 있어서 비교적 찾아가기 수월하였다. 다만 요즘 현대인들이 즐길 수 있는 사우나나 목욕시설처럼 주거지역에 인접한 곳에 위치해 있지 않고 계곡을 낀 산속에 만들었던 이유를 고민해야 했다.

앞서 한증이 불교의학의 흔적임을 암시했듯이 조선시대 한증막은 주로 절 근처나 스님[한증승汗蒸僧]들의 도움을 받아 운영했다고 한다. 조선 초에는 왕궁 안에 설치하기도 하였지만 아마도 땔감으로 쓰는 화목을 장만하고 목욕물을 공급해야 했기에 계곡을 낀 야트막한 야산이 적지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번에 답사한 두 곳의 한증막은 모두 차가 다닐 수 있는 도로에서 불과 100~200m 이내 거리에 구릉진 야산의 북사면에 설치되어 있었고 작은 계곡을 끼고 있는 입지조건이라는 점이 눈에 띠었다.

   
 

현재 남아있는 시설물로는 원형의 돔 형태로 돌을 쌓아 만든 한증굴이 가장 주요 시설이고 그 외에 땀을 식히고 휴식을 위해 마련했을 박석을 쌓아 만든 기단과 물을 받아두던 곳으로 보이는 석물 등이 잔존해 있을 뿐이다. 지상부 가옥이나 부대시설물들이 있었겠지만 현재는 남아있지 않고 고증하기도 여의치 않아 보인다.

한증굴은 인근 산야나 계곡에서 주어다 쌓았을 것으로 모이는데 문틀을 이루는 입구와 기단부에 커다란 돌들을 배치하고 동그랗게 돌려 쌓아 멀리서 보면 커다란 분묘 형태를 이루고 있다. 다만 비죽비죽 튀어나온 돌 사이에 흙을 발라 틈을 메웠고 자세히 살펴보면 입구 양 옆으로 통기를 위한 바람구멍이 뚫려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돌문으로 만든 입구는 몹시 좁아 성인이 허리를 구부려 겨우 드나들 정도인데, 안으로 들어가면 제법 넓은 공간이 드러나 대략 5~6인 정도 앉아있을 수 있는 면적이다. 돔 형태로 이루어진 천정은 위로 갈수록 점차 좁혀져 커다란 돌 2쪽을 맞붙여 마감했는데, 고개를 젖혀 올려다보면 웅장하진 않지만 마치 고구려 고분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벽면은 자연석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상태지만 바닥에는 가마니나 멍석을 깔아 두었을 것으로 보인다. 장작불을 지펴 돌집을 덥힌 다음 적당히 식었을 때, 솔나무 가지에 물을 뿌려 수증기를 내어 한증을 하도록 했다고 한다. 현재 가장 오래된 고려의학 치료법으로 단 1조문만 남아 있는 『제중입효방濟衆立效方』 역시 중풍 수족마비에 솔잎찜질을 사용한 치료법이어서 불교가 국교였던 고려시대에 이미 한증을 이용한 치료법이 널리 애용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한증은 원래 한의학에서 인위적으로 땀을 내어 외부로부터 인체 내부에 침입한 사기를 몰아내려 했던 한법(汗法)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 의학적 효과와 과도한 발한으로 인한 폐해에 대해서는 역대 여러 문헌에서 다소 논란이 있었다. 지금도 북유럽이나 러시아에서는 전통적으로 겨울철 한증을 즐긴다고 하는데, 사라진 우리의 전통 한증의 복원과 함께 어떻게 다른 지 비교 연구가 필요하다.

두 군데 한증 유적 가운데 난정리 한증막은 교동도 서쪽 끝자락 수정산 경사로 산책길 중간에 놓여 있는데, 표지판이 눈에 잘 띠지 않아 찾아가기 어려웠지만 원형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고 바닷물을 막아 만든 저수지의 원경이 가히 일품이어서 답사여행의 피로를 씻어내기에 충분하였다.

 

 

20190105

안상우 / 한국한의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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