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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천의 교사일기187]
동생을 떠나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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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국화꽃들 속에서 밝게 웃고 있는 동생을 바라보며 어린 시절 함께 했던 시절을 반추해보았다.
억척같은 어머니마저도 동생의 외고집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그러기에 그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그가 비범한 인물이 될 것이라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은 이후부터는 어머니의 동생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유별났기에 그의 고집은 더욱더 기세를 더해갔다.
동생은 요즘 말하는 범생이었다. 경기고와 성대법대를 거쳐 사법고시에 응시하였으나 1차 시험에 실패하자 정부관계부처에 답안공개를 요청하면서 가족들을 불안케 했다.
그 이후 극동석유회사의 기획실에 근무하게 되면서 안정을 찾아가던 중 어느 날 갑자기 부모와 한마디 상의도 없이 사직서를 제출하면서 가족간의 갈등은 시작되었고, 친구 법조인들의 도움으로 합동법률사무소에서 몇개월 근무를 마지막으로 그의 공식적 사회생활은 끝이 났다.
그 이후 그는 목회자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그의 한마디는 가족 누구도 그 뜻을 꺾을 수없을 만큼 절대적이었다.
신학대학을 이수한 후 서울 신림동의 한 대형교회에서 전도사 생활을 시작한지 2년 만에 개척교회를 시작했다.
 그리고 불과 2주후 소설과도 같이 꼿꼿이 누워있는 동생의 주검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차디찬 동생의 뺨에 얼굴을 부비며, 진정한 사랑을 주지 못했음을 참회하는 것 뿐 이었다. 그를 마지막으로 떠나보내기 전날 아침 가족예배를 위해 영정 사진 옆에 펼쳐있던 성경 속에 빨간 볼펜으로 밑줄쳐있는 성경 구절을 울먹이며 읽어 내려갔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지금은 고통과 질병이 없는 하늘나라에서 52세의 짧은 나이에 영원한 안식을 취하고 있을 동생을 생각하며 한없는 슬픔에 잠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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