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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이 봄에 그리운 사람 - 안효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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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효권 맑고푸른당진21 사무국장

이렇게 봄이 오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누구든 평생 잊지 못할 아름답고 소중한 사람이 있겠지만 이분은 내가 살아있는 동안 절대 잊지 않고 감사드려야 할 사람이다.

1988년 봄, 당시 경북 영덕에서 군 복무 중이던 나는 마지막 휴가를 나왔다. 6개월 전에 갑작스럽게 아버지가 돌아가셨기에 조금은 서글프고 착찹한 마음으로 고향을 찾았다.

당시 48세이시던 아버지는 친척 분들과 바닷가 갯벌에서 조개를 잡아서 드시고 비브리오 패혈증에 걸리셔서 발병 3일 만에 돌아가셨다. 4남매 중 장남인 나는 일주일간 위로 휴가를 받아서 아버지의 장례를 마치고 군에 복귀해 근무하다가 6개월 만에 다시 찾는 고향이었다. 젊은 나이에 한 가정의 가장이된 나는 전역 후 어머니와 동생들을 부양하며 살아가야할 심적 부담과, 한창 나이에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가슴에 담고 하루 종일 여러 번 차를 갈아타며 고향에 도착했다.

저녁 무렵 시내버스에서 동네 차부에 내려 만난분이 당시 마을에서 폐품을 주워 용돈을 하시던 이웃 할아버지였다. 남루한 옷차림에 약주를 한잔 하신 것처럼 보였지만 나를 알아보시고 반갑게 맞아주셨다. 그 할아버지께 휴가 나왔노라고 인사드리고 집으로 가서 분주한 휴가를 보냈다.

보름간의 휴가를 마치고 부대에 복귀하기 위하여 아침 일찍 읍내 나가는 버스를 타려는데 마침 그 할아버지가 동네 차부에서 폐품을 수집하고 계시길래 휴가 마치고 복귀한다고 인사드리고 버스를 탔다. 그러자 그 할아버지도 버스에 오르셨다. 나는 남루한 옷차림의 할아버지가 버스 안에서 내게 말을 거실까봐 일부러 버스 뒤쪽으로 들어가 할아버지를 외면하며 당진까지 나갔다. 당진 터미널에 내리자 할아버지가 뒤에서 나를 부르시고 ‘어린 나이에 갑자기 아버지 여의고 얼마나 힘드냐며, 건강하게 남은 군 생활 잘 마치고 오라’고 당부하시면서 내 손에 오백원 짜리 동전 한개를 쥐어주셨다. 가다가 기차에서 음료수 사먹으라시면서....

당시 음료수 빈병 한 개가 5원정도 했으니 오백원은 할아버지께서 여러 날 폐품을 수집하신 돈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젊은 나이에, 그것도 군복무 중에 아버지를 잃은 동네 손자가 안타깝기도 하셨을 테고, 폐품 수집을 하시는 할아버지께 깍듯이 인사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기에 기특하기도 하셨나 보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나를 당진까지 배웅 나오셨고 여러 날 모으신 돈을 내 손에 쥐어주신 것이다. 그런 고마운 할아버지가 아는 척 하시면 창피할까봐 버스 뒤쪽으로 달아났던 내 자신이 한없이 부끄럽고 미웠다.

할아버지는 몇 년 후 세상을 뜨셨다. 하지만 이렇게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내 가슴에 할아버지도 찾아오신다. 거칠지만 따뜻하던 손으로 내게 오백원을 쥐어 주시던 그 모습으로..... 당시 할아버지가 주신 오백원은 기차 안에서 군것질로 써버렸지만 지금까지 살면서 받은 선물 중에서 가장 고맙고 의미 있는 선물이다.

요즘처럼 경제가 어렵고 세상이 어수선하여 모두들 지치고 힘겨울 때, 나도 20년 전 봄의 그 할아버지처럼 다른 이들에게 작은 위로와 용기, 그리고 감동이 될 수 있을까?

할아버지! 제가 가장 어렵고 외로울 때에 할아버지께서 주신 그 용기와 희망 덕분에 이렇게 씩씩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할아버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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