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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재의 8체질] 命運
2019년 06월 22일 () 06:18:19 이강재 mjmedi@mjmedi.com

2000년 1월 15일에 신기회(新紀會)가 발족했다.1) 그리고 health8.co.kr2)이라는 홈페이지도 열었다. 하지만 그곳은 회원에게만 공개되는 비밀공간이었다. 모든 정보는 폐쇄적으로 유통되었다. 그때 신기회에 들어가 있던 고교 후배3)에게 간절히 요청했지만 그는 결코 password를 알려주지 않았다. 그들의 결속력은 그렇게 단단했다.

 

[1] ⅠoⅤoⅢ"oⅨo

2001년 여름, 중년 여성 한 분이 금박으로 인쇄된 명함을 들고 방문했다. 제천에서 대전까지 체질침을 맞으러 다닌다면서, 명함에 적힌 처방대로 침을 맞고 싶다고 부탁했다. 그 분은 명함 속 원장의 가까운 친척이라고 했다. 명함 뒷면에, [Hep.ⅠoⅤoⅢ"oⅨo] 이렇게 적혀 있었다.

나는 당시에 체질침 처방을 로마자로 표기하는 방식에 익숙하지 않았고, 이 처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알지 못했다. 그래서 먼저 대구에 있는 후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를 통해서 간신히 그것이 류마티스성 관절염에 쓰는 처방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알파벳 기호로 KFPD이고 5수(數)로 반복하는 처방이다.

그런데 이 처방을 환자에게 어떤 방식으로 운용하는지, 처음 보는 처방이라 더 궁금했기 때문에 명함 속의 번호로 전화를 돌렸다. 전화 속의 그가 대답했다.

“이유는 묻지 마시고, 다섯 번 하고 중간에 간혹 무릎이 아프다고 하면 다른 쪽으로 척추방을 써 주세요.”

간혹 척추방이라니, 나는 이유를 알려 달라고 다시 요청했다. 그가 귀찮다는 듯이 말했다.

“그거 말 해줘도 잘 모르실테니 그냥 시키는 대로 해 주세요.” 딸깍.

속에서 뜨거운 불이 솟구쳤다. 너무 분했다. 그날 바로 Onestep8.com에 넋두리를 올렸다. 퇴근하는 길에 휴대폰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내 번호를 어떻게 알았는지, 권우준 씨였다.4)

그의 목소리는 매력적이고 부드러웠다. ‘이 원장이 열 받은 건 이해하는데 사이트의 책임자라는 사람이 그렇게 개인사로 흥분하면 되겠느냐.’ 하지만 내용은 ‘같이 8체질의학을 공부하는 사람을 공개적으로 성토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훈계였다. 그때만 해도 그는 내게 작은 신(small god)5)과 같았으므로 글을 바로 지웠다. 하지만 분한 마음이 삭지는 않았다. 환자가 침을 맞으러 올 때마다 그 일이 자꾸 상기(想起)되면서 더 끓었다.

그리고 굳게 다짐했다. 내가 죽을힘을 다해서 정말 열심히 공부를 해서 그날의 굴욕을 꼭 갚아 주리라고. 내가 오늘 이 자리에서, 8체질의학을 공부하는 동료들로부터 조금이라도 신뢰를 얻는 사람이 되었다면, 나를 끌고 온 원동력은 그때의 분(忿)과 다짐이다. 나는 아직도 그 분을 풀지는 않았다. 그리고 내 승부욕은 여전히 끓고 있다.

 

[2] 오직 한 길

엄마의 뱃속에서 나와 첫 울음을 터뜨린 아이가 문득 ‘내 부모가 마음에 안 들어!’ 하면서 다른 부모를 선택할 수 없듯이, 체질은 부모에게서 물려받는 것이고(유전되는 것이고) 생명(生命)을 끝내는 날까지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체질론(體質論)은 운명론(運命論)이다.

운(運)은 움직일 운이고 명은 명령할 명으로, 명(命) 자는 명령 령(令)에 입 구(口)가 들어간 형상이다. 명령한(口) 대로 움직이는 것이 운명(運命)이고 명운이다. 체질이란 나(我)란 생명체가 가지게 된 개성(個性)이다. 나의 개성이 되는 모든 특징6) 속에 명령이 들어 있다.

이 민족의학신문 1193호의 내용이 올라온 인터넷 화면을 지금(2019년 6월 22일) 제주시에서 보고 있는 한 분께 묻는다. 당신은 20년 전, 1999년 6월 22일에 어디에 있었나? 또 같은 시간에 서울시 서초구에서 이 글을 읽고 있는 다른 한 분께도 동일한 질문을 던진다.

나는 1999년 6월에 충북 제천시에서 중앙한의원을 하고 있었다. 그럼 15년 전에 두 분은 어디에 있었나? 2004년 6월에 내 한의원은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었고 집은 서울시 강남구 청담동이었다. 자, 기억이 가까워진다. 10년 전이다. 2009년 6월에는 서울시 강서구 화곡동에 있는 8체질 한의원에 다니고 있었다. 5년 전에는 지금도 근무하고 있는 경기도 시흥시이다. 집은 동작구 상도동이었다.

제주시와 서초구에 있는 두 분께 다르게 물어본다. 1999년 6월 22일이 만약 오늘이라고 가정하고, 그 시점에서 앞을 향해서 5년 후, 10년 후, 15년 후, 20년 후의 당신의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었나? 많은 계획과 혹 꼭 이루고 싶은 꿈이 있었나? 그렇다. 그때 당신의 앞에는 가고 싶은 많은 길들이 펼쳐져 있었을 것이다. 당신의 기대와 계획대로 20년이 흘러왔는가?

지금 시점에서 과거로 돌아서서 당신이 지나온 날들을 보라. 당신이 지나온 길은 과연 몇 개인가? 우리가 익히 알다시피 우리가 지나온 날들은 고정(固定)되어 있고 그 길은 오직 하나뿐이다. 이제는 몸을 반대로 돌려서 미래를 보자. 우리의 앞날은 아직 당도하지 않았다. 그런데 현재에서 10년쯤 앞으로 가서, 오늘 두 분이 나와 했던 것처럼 바로 오늘을 향해서 등을 돌려 본다면 우리가 10년간 걸어간 길은 과연 몇 개이겠는가? 총명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잠시만 생각해보면 쉽게 답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과거가 고정되어 있듯이 우리의 미래 또한 고정되어 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살면서 걸어가는 길은 오직 하나밖에는 없다. 이 의미를 더 넓게 확장해 보면 온 우주(宇宙)가 나아가는 길은 오직 하나 뿐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명운(命運)이다.

모든 관계에서 선(善)과 악(惡)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 그것은 항상 상대적(相對的)이고 또 상황에 따라서 바뀌기도 한다. 그때 대전에 있던 O원장은 내게 큰 자극을 주었다. 당시에는 울화가 치밀었고 오래도록 상처로 남아 있었는데, 지금 보면 결과적으로 참 고마운 일이기도 하다. 그는 내 삶에 들어와서 그런 역할을 했다.

 

[3] 痛風과 K'FB

「2차 논문」7)을 준비하고 발표한 1970년대 초반에, 권도원 선생은 류마티스성 관절염이 체질침 2단방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Rheumatic diseases are not included in this category.”8)

위와 같이 ‘류마티스성 질환이 장계염증방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고 논문에서 특별히 언급한 것은, ‘류마티스성 관절염에 장염방을 시도하던 시기가 있었다’는 의미라고 추측한다. 이명복 선생의 가르침을 토대로 저술된 심 영의 『팔상체질침』에 “류마티스성 관절염에는 장계염증방을 2배로 시술하라.”는 내용이 있다.

2001년 여름에 KFPD를 알기 전에 내가 알고 있던 류마티스성 관절염 처방은 K'FP'Z였다. 그 이전에는 [K'FB / KFP / DFP / K'BP / D'BP'] 이런 3단방 자료들이 남아 있다.

K'FP'Z와 KFPD 이 두 처방 형식 중에 먼저 성립한 것은 K'FP'Z인 것 같다. 그리고 한동안 두 처방이 공존한 시기가 있었다고 생각한다.9) 두 처방이 공존하던 시기에 우선적으로 선택되던 처방은 K'FP'Z였는데, 그러다가 KFPD로 굳어진 것은 1990년대 후반인 것 같다. 권우준 씨의 2000년 강의자료에서는 KFPD만 소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KFPD보다 K'FP'Z이 먼저 성립하였다면 이 처방은 통풍 처방으로 시도되었던 K'FB10)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4] 프린스호텔 강의

ⅠoⅤoⅢ"oⅨo를 처음 알게 되었던 때로부터 한참 후에, 신기회가 만든 자료집을 볼 기회가 있었다. 권우준 씨의 강의 중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 많은 경우에 보면, 류마티스성 환자를 보면 디스크 증상과 유사한 증상을 같이 겸해서 갖고 있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 일단 류마티스는 류마티즘 치료를 하다가 디스크 관절을 어느 정도 해 놓은 다음에, 진정시킨 다음에 반드시 디스크 치료를 해야지 그 다음 번의 치료가 상승세를 타는 경우가 없지 않습니다. ~”

이것은 2000년 2월 26일에 대구 프린스호텔에서 강의한 것이다. 내게 환자를 보냈던 대전의 원장은 신기회 회원이라 이 강의에 참석해서 이 말을 들었을 것이다. 그가 권우준 씨가 전달하고자 했던 의미를 제대로 이해했는지 잘 모르겠다. 자료집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위 강의 내용이 선뜻 이해되지는 않았다.

강의란 현장감이 중요하다. 그리고 2000년 이후에 류마티스성 관절염을 보는 권우준 씨의 개념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 2014년 5월 10일에 열린 ‘스승의 날’ 행사에서 권우준 씨는 관절염증방(KZP)을 운용하는 방법에 대하여 강의하였다. 그때 류마티스성 관절염 처방을 쓰는 요령을 아래와 같이 설명했다.

“류마티스성 관절염 방을 쓸 때, 반대쪽에다 KZP에 B를 붙여서 쓰시는 것이 좋아요. 그리고 간혹 이걸 3배방으로 쓸 때가 있어요. 이걸 3배방을 쓰고, 반대쪽에다가 KZPB를 한 번 쓰는 경우가 있어요.”11)

이런 개념은 아마도 2000년 2월에 대구 프린스호텔에서 강의한 내용과 같은 인식의 연장선에 있다고 판단한다.

 

※ 참고 문헌

1) 김용옥 『醫山問答』 통나무 1994. 1.

2) 심 영 『팔상체질침』 동의과학원 1995. 2.

3) 2014년 스승의 날 행사 [권우준 강의 녹취록] 2014. 5. 10.

 

이강재 / 임상8체질연구회

 

각주
1) 신기회(新紀會)는 새 천년(New Millenium)을 준비하는 모임이라는 뜻이다. 2000년 1월 15일 오후 8시에 상신한의원 모임에서 정식으로 발족하였다.
2) 2000년 5월에 오픈했다.
3) 이 후배는 1997년 봄에 나와 함께 정인기 선배를 통해서 8체질에 입문했다. 그런 후에 대구(大邱)를 중심으로 신기회 활동을 했다. 대구에서는 고신한의원의 서용원 선배가 모임을 주도했다. 
4) 그분과 직접 나눈 첫 통화였다.
5) 도올(??) 김용옥(金容沃)이 『의산문답(醫山問答)』에서 권도원 선생을 ‘살아 있는 신(神)’이라고 했다. 선생에 대한 최고의 찬사였다. 2009년까지는 나도 권도원 선생을 그런 정도로 생각했었다. 
6) 체형, 체격, 체취, 음성, 성격, 기호, 취미, 재능, 필체 등 
7) Dowon Kuan 「Studies on Constitution-Acupuncture Therapy」 『中央醫學』 1973. 9.
8) 그런데 이 말은 마치 ‘류마티스성 관절염을 치료하는 처방이 개발되었지만 이 논문에는 싣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9) John Baik이 권도원 선생의 진료실에서 참관한 시기인 1993년에서 1994년 사이 쯤.
10) K'FB처럼 3단에 신경방[P]를 붙이지 않고 [기본방+부방+부방]의 형식으로 시도한 자료들이 남아 있다. 다른 예, KZaBa
11) ⅠoⅤoⅢ"oⅨo ×3 +ⅠoⅦoⅢ"oⅥo (KFPD5555 ×3 + KZPB5555)
   KFPD를 체질측(목양체질의 경우에 오른쪽)에 쓰고, KZPB는 반대쪽에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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