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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봄꽃 연가 - 최경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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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용 당진초등학교 총동문회장

 

봄, 축제의 계절이다. 겨우내 꽁꽁 얼었던 대지를 비집고 나와 봄볕을 받으려는 새싹처럼, 사람들도 움츠렸던 몸과 마음을 열고 산으로 들로 봄의 향연을 만끽하러 길을 나선다. 축제의 장으로 나서는 길목마다 차량의 행렬이 길게 이어지고, 군락을 이루어 피어난 꽃들과 싱그러운 봄 햇살 사이에는 어김없이 인파가 출렁인다.

태동하는 듯한 그 힘찬 행렬 속에 끼면 좋으련만, 내년이면 태어난 간지(干 支)의 해가 다시 돌아오는 것을 기념하려 하는 것인지, 이른 봄에 태고의 아픔을 맛본지라 집에서 요양할 수밖에 없었다. 아쉬운 대로, 전파를 통해 들여다본 올해의 봄은 예년보다 빨리 찾아온 더위 탓에 짧지만 강렬하게 피고 진 벚꽃이 역시나 인상적이었다.

벚나무는 일제강점기 시에 민족문화말상정책의 일환으로 한국 혼을 없애려고 일본 놈들이 무궁화를 베어내고 심은 나무라 하여 달갑게 보지 않았었지만, 이제 지천명(知天命)의 나이를 훌쩍 넘겨 그런지 몰라도, 성격이 순화되어 본래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나무였는데 예쁘면 그만인걸. ‘이런들 엇떠하리 저런들 엇떠하리...’, 절로 방원의 하여가를 읊조리게 된다.

개나리, 진달래, 목련, 살구, 자두, 벚나무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이들은 이른 봄에 잎보다도 꽃을 먼저 피우는 꽃나무들이다. 잎과 함께 꽃을 피우면 더 보기가 좋을 텐데 얼마나 성질이 급하면 그럴까 싶었더니, 지난해 가을에 이미 꽃눈을 형성해 놓고 오랜 시간 기다렸기 때문이란다. 겨울 내내 낮은 온도 상태에서 꽃눈을 개화하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끝내 놓고 따스한 봄바람이 불면 그제야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인간의 삶에도 청춘(靑春)이 있다. 새싹이 파랗게 돋아나는 봄철처럼 십대 후반에서 이십 대에 걸치는 인생의 젊은 나이, 그런 시절을 이르는 말이다. 자신의 꿈을 일찍 발견하고 노력한 사람은 분명히 청춘에 빛을 발하고 그 누구보다도 먼저 주위에서 사랑받고 인정받게 된다. 반면, 뒤늦게 시작하는 사람은 여름이나 가을에 꽃을 피우거나, 아무도 집밖에 나오지 않는 추운 겨울날에 꽃을 피워 소리 소문 없이 스러져 가기도 하고, 영영 꽃을 피워내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는 이도 있다.

꽃을 피운다는 것은 열매를 맺기 위한 일련의 과정이다. 누군가는 그럴 것이다. 꽃을 피우지 않고 열매를 맺을 수도 있지 않은가. 천만의 말씀이다. 하늘을 봐야 별을 딴다는 만고의 진리는 여기에도 적용된다. 흔히 꽃을 피우지 않고 열매를 맺는다는 무화과(無化果)역시 꽃받침과 꽃자루가 열매를 담고 있는 주머니로 변형된 것이니 꽃 없이 열매를 맺는 일은 없다 하겠다. 우리네 인생도 꽃을 피웠으면 열매를 맺어야 할 것 아닌가. 화려하게 피어올라 사람들에게 주목만 받고 사라져서는 안 될 일이다. 꽃은 열매를 맺기 위해 다시 한 번 각고의 시간을 보낸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꽃이라는 희망이 열매라는 행복을 만든다.

사람의 생을 사계절로 비유하자면 지금 나의 삶은 겨울로 접어들고 있겠다. 돌이켜보면 여태껏 작은 꽃눈 하나 튼 적이 없는 듯하다. 자연의 계절은 돌고 도는데, 혹여나 남은 삶 속에서 다시 한 번 봄이 허락된다면 혼신의 힘을 다해서 꽃을 틔어 내고 싶다.

인류 역사의 무슨 업적을 남기지는 못하겠지만, 이 부족한 촌부의 잠시 스쳐가는 인생도 누군가에게 작은 행복으로 기억 될 수 있지 않을까. 마지막 가는 길마저도 벚꽃의 낙화처럼 아름답게 분산하기를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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