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독자투고]어버이날은 어떠한 철학(哲學)을 가져야 하는가 - 박우선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우선 이리농대출신학생회장 중고등학교 정년교사

 

조상(組 上)에게 감사를 부모에게 효도를 어른에게 존경을 어버이날표어다

5월8일은 어버이날이다. 1955년에 어머니날로 정했다가 1973년에 어버이날로 고쳤다.

나는 어디서 왔는가, 나의 부모에서 왔다. 나는 어디에서 생겼는가, 나의 조상에서 생겼다. 나의 몸에는 부모님의 피와 살과 뼈가 깃들여 있다. 아버지의 정자와 어머니의 난자의 결합에서 나의 생명이 탄생했다. 나의 부모의 사랑에서 나의 목숨이 태어났다. 나의 부모는 나의 조부모와 외조부모에서 태어났다.

나의 생명 속에는 내조상의 뼈와 살과 얼과 혼(混)이 맥맥히 흐르고 있다.

나는 결코 나 혼자의 힘으로 태어나서 나 혼자만의 힘으로 성장한 것이 아니다. 나를 낳아 정성껏 기르시고 사랑으로 가르쳐주신 부모님의 태산보다도 높고 바다보다도 깊은 은혜에 대해서 우리는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한자의 효(孝)는 노(老)와 자(字)의 합자(合字)다. 아들이 늙은 부모를 등에 없고 있는 효도의 모습을 상형한 글자다. 은혜를 아는 것이 지은(知恩)이요 은혜를 느끼는 것이 보은(報恩)이다. 은혜를 모르고 은혜에 배반하는 것이 배은망덕(背恩忘德)이다. 어버이날을 맞이하여 어버이 가슴에 꽃 한 송이 달아드리는 것이 연례행사로 따라 하는 것 같다. 때로는 사람이 가야할 옳은 길로 보은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평소 어버이에 대하여 어떠한 태도와 어떤 정신을 갖고 살아왔는가를 반성해봐야 할 것이다. 부모와 자식 형제와 자매는 운명적인 만남이다. 인간은 자기의 부모를 선택하는 자유가 없고 내가 자식을 선택하는 자유가 없다. 선택 이전의 운명이요 인륜(人 輪)인 동시에 천륜(天 輪)이다. 아무리 못나도 부모는 부모요 아무리 어리석어도 자식은 자식이다. 부모는 나의 뿌리와 어버이가 없었더라면 내 생명은 이 세상에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의 생명은 어디서 자랐는가, 부모의 품에서 자랐다. 인간 최초(最初)의 학교가 어디냐 나의 가정이다. 인간최대의 스승이 누구냐 나의 부모다 교대중국의 제일 오래된 교전은 시경(詩經)이다. 시경에는 부모의 사랑과 은혜를 노래한 시가 많다. 애애 부모(哀哀父母) 생아 구로(生俄   勞) 구(  )는 수고할구요 부지런할구다 애처롭도다, 나의 부모님이여 나를 낳아 키우시느라 고생하시는 도다 자식을 낳아 기르는 수고를 구로(  勞)라고 한다. 좀 더 차원 높은 동양 철학적 개념의 진리다. 나를 낳아 기른 어버이의 은덕을 구로지은(   勞之恩)이라고 일컫는다. 특별히 어버이날에 천하 만물(天下滿物)은 정도(正道)가 있다. 부자유친(父子有親)은 유교의 근본도덕이다. 오늘을 생각하니 부모와 자식사이에는 사랑과 친밀(親密)의 정이 두터워야 한다. 이 세상에 부모처럼 친근한 사람이 없고 내 자식처럼 소중한 생명이 없다. 나를 낳아 정성과 사랑으로 키우신 어버이에게 우리는 항상 감사하고 보답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이것이 효(孝)다. 우리의 몸은 머리카락 하나에서 피부 한 조각에 이르기까지 모두 부모한테서 받은 소중한 몸이기 때문에 우리의 몸을 애지중지 하여 조금도 손상시키지 않는 것이 부모에 대한 효도의 시작이다. 우리의 몸을 부모의 유체(遊體)라고 한다. 부모가 물려준 신체라는 뜻이다. 어버이는 자식을 잘 키우고 가르쳐서 사람다운 사람을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또한 어버이의 도리다. 친친자자(親親子子)어버이는 어버이구실을 잘하고 자식은 자식노릇을 다 할 때 비로소 행복한 가정이 탄생한다. 사랑과 의가 충만할 때 하늘나라 천국이요 미움과 불의가 넘치는 곳은 지옥이다. 효는 인간성의 가장 아름다운 표현이요, 휴머니즘의 극치다. 현대를 살아가는 자식들은 핵가족화로 인한 부모만이 노년에 인생행로를 고독과 좌절로 소외되고 우울하게 사는 부모들이 적지 않다. 참으로 가치관의 상실이요 윤리 부재다. 세월의 여신은 언젠가 우리도 노년이 된다는 진리를 명심하자 중국에 유명한 주자(朱子) 십회문(十悔文)에 의하면 이런 명문이 있다. 부모불효사후회(父母不孝死後悔) 즉 부모 살아 계실 때 효도 못하고 돌아가신 뒤에 후회나 탄식(歎息)한들 무슨 소용 있겠나, 십회문중이귀절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좌우명(座右銘)이 됨과 경구(警句)다. 동시에 금언(金言)이 아닐 수 없다. 사심이 없이 외롭고 공(恭)과 혜(惠)와 의(義)와 경(敬)은 자기를 바로 잡을 만한 이런 자식이야 말로 효를 좋아한다고 말 할수 있다. 이 말은 공자의 말이 아니고 유자(有子)의 말이다. 효제(孝弟)야 말로 인(仁)의 기초다. 효는 부모에게 효 하는 것이요 제(弟)와 같은 뜻으로서 동생이 형에게 공손 한 것이다. 제(弟)는 공손할 제요 공경할 제다 형제간에 우애가 좋은 것이 제(弟)다. 효와 제는 인(仁)을 행하는 시초요 근본이다. 부모가 자식을 친애의 정으로 사랑할 때 자식은 부모의 사랑을 느끼는 동시에 부모에게 효도 해야 된다는 마음이 우러나온다. 형이 동생을 사랑할 때 동생은 형의 사랑을 느끼고 동시에 형에게 공손해야 되겠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것이 효제(孝悌)다. 효제야 말로 인간의 사랑의 원형(原型)이다. 효제는 인륜의 근본이다.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동네가 가장 오래된 학교 중에 효제동과 효제초등학교가 있다. 효제는 사랑의 제일과(悌一課)과요 사랑의ABC다. 끝으로 어버이날을 맞이하여 부모에게 못 다한 효를 실천하여 부모를 기쁘게 하는 도리를 강조하며 조상을 아끼는 존친경조사상(尊親敬組思想)은 인간의 가장 훌륭한 논리다. 이것은 한국인의 자랑이요 덕목(德目)이다. 우리는 이 전통을 아끼고 계승하고 존중해야 한다.

저작권자 © 당진시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5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