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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어느 농민의 절박한 하소연 - 김후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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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후각 한국농어촌공사 당진지사장

“지사장님! 지사장님! 내 논 옆에 있는 용수로 및 배수로를 제발 물 안 새게 해 주실 수 없습니까? 흙으로 된 수로라 농사철 물만 내리기만 하면 너무나 많은 물이 논으로 스며들어 제초제를 비료를 줘도 효과가 없습니다. 여름에는 수로에 수초가 우거져 논둑이 자주 무너집니다, 반대로 수로 아래 하발 지에서 농사짓는 사람은 물이 안 온다고 아우성입니다. 그러니 제발 내 논 옆 수로를 구조물화 해 주실 수 없습니까? 아무리 지소에 사정사정해도 예산이 없다고 들어주지 않으니 미칠 지경입니다. 80세 가까워 몸은 점점 약해지고 병들어가고 기댈 데도 없고, 오늘도 병원엘 가야 하는데 이러고 있습니다. 정말 어느 땐 죽고 싶은 심정입니다”

이 절박한 하소연은 미개한 나라의 외국 농민의 하소연이 아닙니다. 국민소득 3만 불 시대를 열어가는 선진국이라 하는 대한민국, 그것도 전국에서 쌀 생산량 1위라 자랑하는 당진군의 전형적인 곡창 지대인 당진군 합덕읍 00에 사시는 어느 어르신의 몇 일전의 민원 현장에서의 대화 내용을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저는 직책이 한국농어촌공사 당진지사장이기에 이 같은 내용의 농민들의 절박한 하소연을 하루에도 여러 건 접합니다. 막상 민원 현장에 가보면 정말 눈물겹습니다. 그 누구라도 현장에 가보면 매년 수로에 임시방편으로 비닐 또는 천막 지를 포설하고(깔고) 농사를 짓고 있는 실정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삽으로 논둑을 파헤쳐보면 겹겹이 9층 내지 10층의 비닐 층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최소한 9년 내지 10년 그 이상을 이 같은 원시적인 낙후된 수로를 이용하여 매년 농사짓고 있다는 단적인 증거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해는 떴다가 서쪽으로 항상 집니다. 새해를 맞이하는 태양도 여전히 어제의 똑같은 태양입니다. 새해가 시작되었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하루하루 맞이하는 시간도 여전히 어제와 똑같은 그런 오늘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반복되는 시간임에도 ‘새해’ ‘새날’이라고 합니다. 매일 매일 되풀이 되는 똑같은 시간을 두고 ‘새해’ ‘새날’이라 불리는 것은 우리가 그 날에 대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며 희망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흐르는 세월을 붙잡을 수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가는 세월을 안타까워하며 지금의 시간을 어떻게 최선으로 활용하는가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똑같은 시간과 공간 속에 사는 우리들은 하는 일에 따라 또는 생각하는 삶의 태도에 따라 전혀 다른 가치나 삶을 경험하게 됩니다. 똑같은 날을 새해 새날이라는 의미 부여를 통하여 우리가 맞이하는 날을 새롭게 시작하는 날로 인식하고 그리 생각하듯이 우리의 일상에 일어나는 모든 상황에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하면 우리의 삶은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는 것도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시간도 내일이 아니라 오늘이고 오늘 중에도 지금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내일을 위한 계획을 세우고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하며 새해를 맞이하며 잔뜩 기대한다고 하더라도 농촌에는 변화가 일체 없습니다. 농민의 이 하소연은 매년 절박한 새해 희망이었을 것입니다. 그 희망 사항이 매년 절망으로 변한 슬픔의 현장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당진군 구석구석이 도시화다 산업화다 뭐다 하여 상대적 박탈감에 화도 날 법 하신데 오히려 자식 같은 연령대의 저에게 사정하시는 이 분의 고통은 그 누가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당장에 해결해 드려야 하는 것이 사실 아닙니까?

현행 법률에서 그 책임이 1차로 저에게 있는데 해마다 예산 부족으로 해 드리지 못하는 현재의 한계를 뼈 속 깊이 처절하게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날씨가 추워지면 닭은 나무 위로 올라가고, 오리는 물속으로 들어가듯 똑같은 추위를 가지고 피하는 방법이 각기 다르듯, 사람마다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다름을 모르는 바 아닙니다. 그러나 예산을 집행함에 있어서는 균형과 우선순위 그리고 완급 조절은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닙니까?

이 분들이 절박한 민원을 즉시 해결하여 그 고통을 덜어드려야 하는 저에게 그 어떤 지혜로운 리더십이 더 필요로 하는지 그 해답을 찾기 위해 밤잠을 설치는 날이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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