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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06.01 00:00
  • 호수 763

[당진판 워낭소리 - 당진읍 시곡리 홍문희 할아버지]칠순 농부와 스무 살 소의 ‘마지막 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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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간 손으로 모심고, 소로 밭 갈아 2남1녀 키워  
“보채지 않아도 때가 되면 땀 흘린 만큼 곡식은 여물어”

한낮 더위가 수그러들 무렵, 할아버지가 누렁이를 앞세우고 비탈진 산길을 오른다. 30년 전 척박한 뒷산을 개간해 손수 만든 밭으로 가는 길이다. 할아버지는 올해도 밭에 깨를 심을 생각으로 며칠 전부터 누렁이 등에 쟁기를 걸어 밭을 갈고 있다. 집집마다 트랙터 하나는 기본으로 가지고 있는 요즘이지만 할아버지는 우경만을 고집하고 있다. 할아버지가 살고 있는 시곡리에서는 유일하게 소로 밭을 갈고 손으로 모를 심는다.
“뭐 얼마나 된다고 기계 들여 해유. 예전에는 다 소로 밭 갈고 논 갈고 했지. 소가 있으니까 써야지...”
일흔을 넘긴 할아버지의 숨소리가 가쁘다. 그런 할아버지만큼이나 누렁이의 발걸음도 무겁다. 산 등선에 일군 밭이라 비탈져 평지보다 힘이 곱절로 든다. 게다가 뿌리를 깊이 들게 하기 위해서 쟁기를 깊이 대다 보니 속도가 더 안 난다.
“소가 사람보다 나서... 얼마나 영리하다고... 워~ 하면 서고 이리야~ 하면 가고 다 알아 듣지유. 늙지 않았을 때는 팔팔 뛰어 다녔어. 이제 늙었으니까 그렇지...”
누렁이는 올해로 스무살을 넘겼다. 보통 소의 수명이 15년인 데에 비하면 고령이다.
“나만 힘든 게 아니라 소도 그려유, 쉬엄쉬엄 하면 되지유~”
할아버지는 느릿느릿 서산을 너머 가는 해만큼이나 천천히 누렁이를 앞세우고 밭을 간다.


큰 딸이 태어나던 해부터 농사를 짓기 시작했으니 30여년 동안 논과 밭을 지켰다. 800평 남짓한 논과 산비탈을 개간해 만든 밭 300평에서 난 곡식들로 2남1녀를 길렀다. 자식들이 어릴 적에는 농사일만으로는 ‘고등교육 시키기가 어려워’ 더러 바깥일도 다녔다. 지금은 농사지은 곡식으로 아이들 먹이고 조금 남는 건 장에 내다 팔아 두 내외가 복닥복닥 살고 있다고.
할아버지와 누렁이가 밭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할머니(이명자, 69)는 “이제 힘든 농사는 그만 지었으면 싶다”고 말했다.
할아버지도 누렁이를 올해만 부리고 팔 작정이다. 누렁이가 많이 늙어 일하는 것이 신통치 않아서다. 농삿일이 힘들기는 할아버지도 마찬가지다. 몇 해 전부터는 천식으로 반나절은 병원에, 반나절은 논과 밭에 사신다고.
“동네 사람들도 흉보지, 편케 살지 손모 심고 소로 밭 갈고 한다고. 애들도 이제 일 그만하라고 야단이고... 아프지만 않으면 우리 둘이 재미로 조금씩 하는 거야 괜찮지. 그래도 저렇게 아프니까 이제 그만해야지 않겄어요.”
할아버지는 누렁이를 팔고 나면 다시 소를 사지 않을 생각이다. 허나 돈 벌려고 짓는 농사가 아니라 자식들 먹이려고 짓는 농사이니 내 손으로 조금씩 짓는다는 생각, 손으로 모를 심어야 못자리가 더 튼튼하고 물 바구미도 덜 먹고, 농약을 안 줘도 건강한 벼로 자란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소가 있는데 굳이 돈 들여 남의 기계 빌려 지을 필요 없다는 고지식한 아버지의 마음이다.


봄에 뿌리고 가을에 거두어 자식들을 키웠다. 힘에 부칠 때면 멈춰 서서 하늘 한번 올려다보고 숨을 고른다. 소도 쉬었다 가고, 할아버지도 쉬었다 간다. 기계로 하면 반나절도 안 걸릴 테지만 급할 것 없다. 쉬엄쉬엄 하면 그만이다. 재촉하지 않아도 때가 되면 계절이 가고 온다는 것을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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