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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길 원로목사] 어떻게 쟁취한 자유민주주의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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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금 1800여명의 대학교수들과 종교인, 사회원로들이 줄이어 시국선언을 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이는 국민의 기본권인 집회결사의 자유, 언론표현의 자유가 심각히 훼손되었다는 염려 때문이다. 그래서 국정기조를 바꾸라는 것이다. 사실 이명박 정부는 4대강 정비사업 등 경제회복을 빙자해 가진자들 편에만 서고 힘없는 자, 가난한 자들은 도외시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용산철거민 화재 참사일 것이다. 아직 장례를 치르지도 않고 주검앞에서 통분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무엇보다도 귀중한 인간의 생명을 개발과 경제발전이라는 바퀴로 깔아 뭉개는 이 정부의 인명경시풍조를 본다.
오늘의 인권신장이나 민주주의 발전은 값비싼 대가를 치른 것이다. 그 분수령이 1987년 6.10 민주항쟁이라고 본다. 군사 쿠데타로 시작한 박정희의 3공화국에 이어 광주대학살의 주역인 전두환의 제5공화국, ‘한국적 민주주의’나 ‘정의사회 구현’ 등은 허물 좋은 명분일 뿐 자유민주주의를 뿌리채 흔드는 폭압을 서슴없이 행하였었다. 집시법, 노동관계법, 국가보안법, 언론기본법 등 악법으로 개악하여 정권유지를 위해 정치적인 반대세력은 물론 바른말하는 양심있는 사람들조차 탄압하였었다. 심지어 교회까지 도청하고 프락치를 넣어 감시하였다. 그러던 중 1986년 6월 부천 경찰서에서의 노동운동자 권인숙 양의 성고문사건이, 그 다음해인 1987년 1월14일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서울대생 박종철 군이 끔찍한 고문으로 죽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에 격분한 국민들은 이 정부를 자신들을 대표하는 정부로 인정하지 않았다. 국민들은 직선제 개헌을 열망했으나 4.13호헌조치를 내려 민정당의 노태우로 신군부의 권력승계가 이루어졌다. 이에 국민들은 각계와 지역을 대표하는 2200여명이 발기인이 되어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를 만들고 6월10일 국민대회를 열었다. 전날 6월9일 연세대생 이한열 군이 최루탄 파편으로 중태에 빠졌다는 뉴스는 불에 기름을 부은 듯 급속히 시위 군중이 더해 갔었다. 서울, 부산, 대구, 대전, 인천, 공주 등 전국 22개 지역에서 24만명이 참여하는 가두시위였었다. 최루탄 가루를 뒤집어 쓰고 목이 터져라 외친 구호는 ‘독재 타도, 호헌철폐, 민주쟁취’ 였다. 6월18일 최루탄추방대회에 이어 6월26일 ‘국민평화대행진’에 무려 100만 군중이 참여했다. 드디어 6월29일 노태우는 항복하여 직선제 개헌을 보장하는 소위 ‘6.29선언’을 내놓았다. 서슬퍼런 권력 앞에 힘없는 국민이 거둔 승리요, 진리와 정의는 반드시 이긴다는 역사의 증명이었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도 있듯이 숱한 의로운 열사들의 죽음의 대가로 오늘의 자유민주주의가 우리에게 주어졌다. 어떻게 쟁취한 자유민주주의인데 이 고귀한 유산을 훼손하는 자, 역사의 수레바퀴를 뒤돌리는 자는 민족의 이름 앞에 사죄해야 마땅할 것이다.
퇴임 대통령의 안전한 귀가는 민주주의의 완성을 위해서도 저들 정치인들의 아름다운 결말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데 강성과 독종 이미지로 유명한 대검찰청 중수부의 표적수사, 비주류 대통령이라고 무시하고 좌파정권이라고 여론을 호도한 보수언론, 국민 앞에 낮아짐으로 진정한 소통을 원했던 대통령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은 한나라당을 비롯한 정치권력의 합작품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과 역사 앞에 사죄해야 한다. 광주민주항쟁, 22년 전 6.10민주항쟁 역사는 흐른다. 그러나 역사는 거울이다. 우리에게 말해주는 교훈을 겸허하게 귀담아 듣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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