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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재
  • 입력 2009.07.13 00:00
  • 수정 2015.06.12 22:15
  • 호수 769

[우리지역 문화재를 찾아서 - 송악면 부곡리 필경사] 농촌 계몽운동가 심훈 문학의 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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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훈선생이 상록수를 집필한 필경사(오)와 그의 묘(왼)

상록수 집필지 ‘필경사’
군, 심훈기념관 건립 예정

[편집자주]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에는 아직도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문화유산과 문화유적, 그리고 후손에 전해주어야 할 가치를 가진 무형문화재가 많이 있다. 그러나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관광자원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역의 명물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어디선가 없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 같은 문제의식 아래 본지는 지난해 10회에 걸쳐 연재했으며 올해에도 지역의 숨어있는 명물과 문화유산을 보도해 넓게는 당진의 관광산업 발전을, 단기적으로는 지역의 문화유산 보존을 도모하고자 한다. 이번 기획은 총 18회에 걸쳐 연재될 예정이며 지난해 소개됐던 문화재 중 변화가 있는 곳은 재취재해 지면에 담을 예정이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역신문발전기금으로 이뤄졌습니다.

농촌계몽소설의 대표작인 ‘상록수’가 집필된 필경사에도 여름이 왔다. 필경사와 전시관을 뒤로 우거진 소나무가 유독 푸르러 보이는 7월의 어느 날, 필경사를 찾았다. 필경사가 위치한 부곡리를 비롯한 일대가 황해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되어 사라질 위기에 놓여 세상이 시끄러운데도 그곳은 조용하다 못해 고요하기까지 했다. 평일 점심 무렵이라 그런지 관람객을 찾아 볼 수는 없었지만 방문 일지에는 이른 시간 먼저 다녀간 이의 흔적이 남겨져 있었다.
필경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정면으로 전시관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에는 심훈 선생의 일대기와 사진, 저서 등이 전시되어 있다. 전시관 좌측에 자리한 초가집이 바로 필경사이다. 
필경사는 1934년 심훈 선생이 외가가 있는 송악면 부곡리로 내려와 살다가 직접 설계해 지은 집이다. 낮은 자연석 기단 위에 다듬지 않은 주춧돌을 놓고 기둥을 세워 지은 필경사는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의 비교적 큰 규모다.
초가집인 필경사는 심훈 선생의 대표작 ‘상록수’가 집필된 역사적, 문학적 가치를 지닌 곳이다. 1935년 집필된 농촌계몽소설 ‘상록수’는 한평생을 조국 광복과 농촌 계몽을 위해 살아온 심훈 정신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그의 대표작이다. 박동혁과 채영신의 숭고한 사랑 이야기와 공동경작회를 중심으로 두 남녀가 펼치는 농촌 계몽운동의 모습을 담고 있다.
필경사 왼편에는 심훈 선생의 묘가 자리하고 있다. 필경사에는 잠시 쉬었다 갈 수 있는 벤치와 상록수를 상징하는 조각품도 설치돼 있다.

군, 상록수 공원 조성해 심훈기념관 건립 계획
필경사는 지난 1989년 도문화재 자료 312호로 지정되었다가 지난 1997년12월 충청남도 유형문화재로 승격됐다.
심훈선생의 장조카인 심재영(95년 작고) 옹의 증언에 의하면 심훈선생이 집지을 터를 잡기위해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다가 상아로 만든 파이프를 잃어버렸는데 그 파이프를 되찾은 곳이 지금의 필경사 자리로 그 즉시 집터를 결정했다는 일화가 있다.
필경사란 이름은 1930년 '그날이 오면'이란 제목으로 시집을 내려다 일제의 검열에 걸려 못 냈는데 그 시집 원고 중에 있는 필경이란 시의 제목에서 딴 것이라고 한다.
한편 필경사는 황해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돼 개발될 위기에 놓여있다. 당진군은 필경사 일대를 상록수 문학 공원으로 조성, 심훈기념관을 건립한다는 계획이다. 지난해 심훈 선생의 아들 심재호씨가 1천여점에 이르는 심훈 선생의 육필원고를 비롯한 유품을 군에 기증하겠다고 밝히고 이에 민종기 군수가 필경사에 심훈기념관을 건립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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