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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 입력 2009.07.20 00:00
  • 호수 770

64년만에 고향 돌아온 고 손대원 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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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 당시 강제징용됐던 유골 반환

▲ 고 손대원 할아버지의 유골이 면천면 죽동리 선산에 안장했다.

일제강점기 당시 징용돼 끝내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숨진 뒤 지난 7일 반환된 한국인 유골 44위 중 1위가 고대면에 거주하고 있는 이종희 할머니의 남편인 것으로 확인됐다.
일제강점기였던 1944년 일본기업에 강제로 끌려가 노역을 했던 고 손대원 할아버지는 65년만에 아내 이종희(90) 할머니를 만났다. 손대원 옹의 유해는 7일 천안망향의동산에서 추모식을 가지고 9일 면천면 죽동리 선산에 안장됐다.
안장식에는 이종희 할머니를 비롯해 증손자들까지 모두 모였다. 고향으로 돌아와 안장되는 할아버지를 바라보던 할머니는 “좋다”는 말을 연발했다.
고대면 대촌리가 고향인 손 할아버지는 1944년 2월, 이종희 할머니와 결혼 8주년이던 어느 날 사라졌다고 한다. 마을주민들과 가족들은 일본으로 끌려갔을 거라는 추측만 있었을 뿐 할아버지의 행방은 어디에서도 알 수 없었다. 어느 날 집으로 날아든 편지 한 통이 살아있던 할아버지의 마지막 소식이 됐다. 일본기업으로 강제동원됐던 할아버지는 남태평양 남양군도까지 끌려갔다. 손 할아버지는 강제동원 3개월만인 1944년 5월 이질로 사망했다. 슬하 3남매를 둔 할아버지였지만 고향으로 돌아온 지금은 아내 이종희씨와 장녀 인희씨만 살아있었다. 
친손자인 손문승씨는 “할머니와 마을주민들의 증언을 토대로 국가기록원에 소재를 파악해 2005년 노무자 신고를 통해 할아버지가 일본에 가신 것을 확인했다”며 “인터넷 검색을 통해 유해 소재지를 파악해 일본에 직접 다녀와 할아버지를 모셔왔다”고 말했다. 덧붙여 “지금에라도 선산에 모실 수 있어 할머니 마음도 편하시고 손자된 도리를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일본 도쿄의 유텐지 사찰에 보관됐던 유골은 2004년 한일정상회담서 합의한 공식봉환절차에 따라 희생자 유골 700위 중 총 200여위가 국내로 돌아왔다.              

고 손대원 옹의 아내 이종희 할머니

“고향에 묻히셔서 좋으실거야”

“오래 걸리긴 했어도 돌아오신 것만으로 기분이 좋으네.”
이종희(90) 할머니가 25세이었던 해  첫째 딸이 8살이던 무렵 할아버지는 일본으로 강제징용을 가야만 했다. 큰 딸 손인희씨는 초등학교를 중도 포기해야 했고 할머니는 삼남매를 키우기 위해 까마득한 시간들을 보냈다. 이종희 할머니는 재혼도 하지 않은 채 홀로된 시어머니를 평생 모셨다. 현재 딸과 며느리 차안자씨와 고대면에서 살고 있다. 가족들은 할머니만큼은 할아버지가 고향에 돌아오실 걸 아셨는지 지금껏 큰 잔병치레 없이 장수하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나는 할아버지가 일본 가시던 때가 하나도 기억이 안나. 할아버지가 일본에 가셨다고 편지 온 것, 그리고 이듬해 사망통지서가 집으로 온 것만 기억나.”
살아 생전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도 가물한 할머니에게 한 가지 기억나는 것이 있다면 온화하셨던 할아버지의 성품이다. 할아버지와는 한번도 부부싸움을 한 적이 없었다고.
“함께 살았던 시간도 얼마되지 않고 삼남매 키우느라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도 가물해. 자식들에게도 일부러 아버지에 대해 안 일러줬어. 언제였는지도 모르는 시간이 흘러 손자 덕에 고향에 오셔서 좋으실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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