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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적 시·공간의 탄생
2004년 03월 19일 () 14:00:00 webmaster@mjmedi.com
   
 
근대과학개념으로 듣는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서는 확실히 바빠졌습니다. 원래 모임이 많은 것도 아니고, 모임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참석하는 편도 아니지만, 그래도 방학 때보다는 참여해야 할 모임이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우리 한의학에서 밝힌 대로 ‘소우주(小宇宙)’인 까닭일까요? 모임 약속을 할 때면 -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지만 - 우리들 모두는 때와 장소, 다시 말해 시간과 공간을 반드시 정해야 합니다(물론 회비라는 명목의 돈도 있지만……).

사람들은 누구나 시공(時空)의 제약 아래 살고 있습니다. 시간과 공간! 우주! 한의학을 공부하는 우리들이야 “四方上下 謂之宇 往來古今 謂之宙”라는 ‘淮南子’의 구절을 들기도 하고, 河圖와 洛書, 後世方과 四象方을 빗대어 풀이하기도 하는데, 여기 또 하나 재미있게 설명한 책이 있어 소개하는 바입니다.

바로 이진경 님의 ‘근대적 시·공간의 탄생’이지요. 사실 이 책은 상당히 오래 전에 출간된 같은 제목의 개정 증보판입니다(이 또한 2년여가 지나 신간 안내에 어울리지 않지만).
즉 97년의 초판에 첨삭을 가하여 02년에 다시 나온 것이지요.

제가 워낙 영화보기를 즐기는지라, 사실 필명 이진경을 처음으로 접한 것은 ‘필로시네마, 혹은 탈주의 철학에 대한 7편의 영화’라는 책이었는데, 한의사라는 입장 때문인지 이보다는 ‘철학의 모험’과 ‘수학의 몽상’을 훨씬 유익하게 읽었습니다.

이후 간혹 인터넷 서점을 들락거리며 이진경 님의 저작을 살펴보았는데, 최근에는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Gilles Deleuze)의 ‘천의 고원’에 대한 강의록 ‘노마디즘(Nomadism)’ 시리즈가 나왔더군요. 이처럼 저자의 작품이 1~2종이 아니지만, 우리들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근대적 시·공간의 탄생’이 제일 구미에 맞을 것 같습니다.

제목 그대로 근대적인 시간과 공간의 개념이 어떻게 탄생되었고, 우리의 삶에는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자세히 설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들뢰즈’가 언급한 ‘기계’라는 개념 - ‘어떤 흐름을 절단하고 채취해서 특정 목적에 쓰이도록 하는 것’의 의미 - 을 빌려 근대적 시공간에 대해 설명합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시간은 우리의 視聽言動 및 思考를 제약하고 그 흐름을 적당한 단위로 채취하여 절단하는 ‘시간-기계’이고, 공간 역시 시간과 비슷하게 개인이나 집단의 삶의 방식을 규정하고 제한하며 특정 형태를 반복케 하는 ‘공간-기계’라고 할까요? 아무튼 사람들이 이제껏 의지하고 살아 온 근대 과학 개념의 바탕을 풍부한 사진 자료와 함께 흥미롭게 들려주고 있습니다.

기계론적 인간관의 서양의학에 토대를 제공한 근대 과학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도 근대적 시·공간의 형성 배경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책을 읽고서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Modern Times)’를 보시면 더욱 좋을 것 같습니다.

안 세 영 (경희대 한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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