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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협 창립50주년 기념특집(3) - 평등의료운동의 성과와 과제
2004년 03월 29일 () 10:03:00 webmaster@mjmedi.com
   
 
진료영역·치료대상 꾸준히 확장
한의협 역할에 한계, 대학·학회 책임 커져

‘보약’ 이미지 여전, ‘치료의학’ 증명 시급
자기위치 확립으로 위상 높여야

사진설명-‘귀족의학’ ‘보신의학’을 벗고 ‘치료의학’으로서 당당히 국민 앞에 나서려는 열망은 한의협 50년 내내 식을 줄 모르고 타올랐다. (사진은 86년 9월 3일 앰배서더 호텔에서 열린 한방의보 전국확대 공청회 장면)

연재순서
1) 외연의 확장과 내포적 발전
2) 갈등과 대응
3) 평등의료운동의 성과와 과제
4) 한의협 조직의 발전과 한계
5) 세계로 미래로 가기 위한 조건

잠에서 깨어나는 한의계

한국전쟁의 상처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가장 긴급하게 요구되었던 정부의 보건의료 과제는 전염성 질환을 퇴치하는 일이었다. 정부는 이런 국가적, 사회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보건사회부 의정국을 중심으로 의료정책을 입안·추진한 결과 양방의대의 신설과 국공립병원의 신설이 이루어졌고, 민간차원에서는 병원의 거대화현상이 눈에 띄게 증가됐다.

이에 반해 한의학은 국공립대학 하나 없이 동양의대의 후신인 경희대 한의대를 위시하여 11개 한의대가 전부 사립재단 소속이었다. 한의학을 국가적으로 인정하는 징표를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한의사 스스로도 한의원이라는 좁은 울타리내에서 명맥을 부지하는 게 전부이다시피 했다. 주로 한옥형태의 가정집에 ○○한의원이라는 간판을 달아놓고 알음알음 찾아오는 환자를 보는 게 고작이었다.

한의사들은 서양의학으로 치료할 수 없는 환자진료에 매진했지만 많은 경우 부유한 계층의 사람에게 보약이나 지어주는 곳쯤으로 인식되는 측면도 적지 않았다. 이른바 귀족의학, 보신의학이라는 오명이 한의계에 씌워진 것은 이런 현상을 두고 말한 것이다.

한의학은 발이 삐거나 보약을 먹을 일이 있으면 가는 곳쯤으로 여기는 풍토였다.

해방 직후만 하더라도 외과분야만 빼고 내과 등의 분야에서 한의학의 치료효과가 더 컸지만 제약산업이 발달함에 따른 항생제 등 속효성있는 약의 대두로 한의학이 안팎으로 부정을 받게 됐다. 이에 따라 50, 60년대 일부 선각자들은 치료의학으로서 한의학의 뛰어난 치료효과를 입증하려고 노력했지만 양의약의 효능 앞에서 한동안 혼란을 겪어야 했다.

이들 한의학자들은 한약의 효능효과를 객관적으로 입증한다는 명목으로 그들의 자제를 양약대학에 진학시키는 한계를 노정하기도 했다.

국민의 관심을 끈 사건

그러다가 한의학이 국민의 시야 속으로 들어온 게 70년대 초반이다. 닉슨이 핑퐁외교 끝에 역사적으로 중국을 방문하여 침치료를 받고 나았다는 뉴스가 서방세계로 타전되자 국내에서도 한의학 붐이 일기 시작했다.

원광대학교에 한의대가 설립된 것도 이 시기다. 그후 동국대, 경산대, 대전대 등이 설립인가를 받아 한의학은 서서히 국민의 주목을 끌기 시작했다.

그러나 국민 관심이 높아진 것은 80년대 후반의 경제성장으로 국민소득이 향상되면서부터다. 이때는 공교롭게도 전염성 질환의 비중이 낮아지고 상대적으로 성인병이 증가하는 시기와도 일치했다.

양약의 내성율이 높아지는 등 양약의 부작용도 심심찮게 보도되어 국민의 약물사용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진 것도 이 시기다. 이에 따라 한의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한의대 입시커트라인이 급격히 올라가 우수학생이 한의계에 유입되는 반사이익도 누렸다.

정부는 여러 차례의 국민의료이용실태를 조사한 결과 한의학에 대한 국민의 관심과 요구가 높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전국민 의료보험 사업에 한의학을 뒤늦게나마 편입시킴으로써 한의학은 본격적으로 제도권의학으로 편입되면서 국민적 저변을 넓혀갔다.

그러나 한방의보는 급여범위의 협소와 수가체계의 불합리로 국민과 한의계으로부터 기대했던 만큼 호응을 끌지 못했다. 보험점유율은 국민의료에서 차지하는 각 의료의 기여도로 평가돼 국가의료정책의 기준이 되었는데도 한방의 보험점유율은 진료건수 및 진료비 모두 관행의료점유율을 넘어서지 못해 여러 분야에서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다.

한약분쟁(93~96년) 과정에서 확인된 국민 여론은 한약은 한의사가 다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한의원과 한약방을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한의사와 한방의료기관의 인지도와 사회적 영향력이 떨어졌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다.

평등의료운동의 대두

80년대 중반 젊은 한의사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한방의료보험확대추진위원회’ 회원들은 정부가 한방의보의 전국확대 실시에 미적미적하자 한의학 고유의 특징을 살릴 수 있는 한방의료보험 시스템을 창출하기 위한 노력의 하나로 농어촌 주민 및 도시 영세민의 한방의료 시혜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방안과 한의사에게 보건지도임무를 보장하는 내용의 입법을 추진, 관철하게 된다.

이들은 일련의 운동을 전개하기 위한 보다 효과적인 수단으로 민족의학신문이라는 매체를 창간하게 된다. 민족의학신문의 사시 두 번째에 ‘평등의료정착운동’을 명시하고 이후 지면을 통해 국민과의 접촉면적을 늘려갔다.

농어촌한방진료사업 시범실시기관으로 선정된 3개군에서 이동한방병원을 운영해 주민들의 뜨거운 열망을 확인함으로써 치료의학으로서의 한의학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공중보건한의사제도의 도입에 공헌하는 한편, 보신의학에 익숙한 한의계의 퇴보적 관성적 진료풍토에 경종을 울렸다.

‘참된의료실현을 위한 청년 한의사회’라는 다소 긴 명칭의 이 단체의 창립은 한의학이 사회의학에 눈뜨는 전기를 마련해줬다. 구로공단 인근에 산재한의원을 설립하여 산업재해를 입은 노동자를 한방으로 치료해주는 한편 치료과정에서 생산된 자료를 바탕으로 한방산재보험 도입의 산파역할을 담당했다.

한의학의 사회화 참여

이 두 한의단체의 평등의료운동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의 창립 등 의료의 사회화를 부르짖는 시대적 변화에 영향받은 바 크지만 이런 흐름을 젊은 한의사들이 주체적으로 수용함으로써 한의학의 사회화, 민중의 의료로서 한의학의 본모습을 구현하려는 노력이 점차 열매를 맺을 수 있었다.

각 개인, 분회, 지부 등 한의 각 단체는 의료봉사를 통해 국민들에 따뜻한 사랑의 손길을 뻗쳤다. 군장병진료에도 지대한 관심을 가져 진료활동을 펼침으로써 군내에서도 한의학이 절대 필요하다는 인식을 고취시키고, 동시에 젊은 층에서 한의학의 진수를 체험케 하여 이후 한방군의관제도의 실현과 한방의료기관 내원환자층을 다원화시키는 데 공헌했다.

90년 초반 한의협내 홍보위원회의 노력으로 전격 통과된 학교보건법도 한방의료기관 이용계층을 초·중·고까지 확대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한의협의 수진대상인구의 확장노력은 비단 내국인뿐만 아니었다. 여한의사회는 국내에 살고 있는 외국인노동자들에 대한 무료진료활동을 전개했으며, 대한한방해외의료봉사단은 지금까지 10년간 19개국에서 38차례에 걸친 봉사활동을 펼치는 등 한의학의 보편화, 대중화하는 성과를 낳았다.

한의협을 중심으로 한 평등의료활동은 한방의료보험제도의 개선작업으로 꽃을 피웠다. 한의협은 역대로 산하에 의료보험위원회를 운영하여 한방의료보험의 개선방안을 수립해온 결과 2002년 기준 한의협 보험예산이 전체예산 중 20%(3억 8천여만원)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커졌다. 그에 따라 한방건강보험의 급여항목과 수가도 상당히 개선됨으로써 한의학의 보험점유율이 5%대까지 신장되었다.

여전히 관행의료이용율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한의학을 이용하는 국민의 상당부분이 저렴한 보험을 이용할 수 있음으로써 한의학과 국민간의 거리는 좁혀졌다고 볼 수 있다. 보험은 불요불급한 치료는 보험급여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보험점유율이 높아졌다는 것은 한의학이 그만큼 치료의학으로서 자리매김되고 있다는 증거다.

이런 일련의 분수령은 한약분쟁이었다. 한의학의 현실에 대한 처절한 자기인식을 통해 부단한 자기개혁의 몸부림을 친 끝에 한의학은 기존의 변혁운동을 더욱 가속화시켰다.

국민과의 거리 좁혀졌지만…

한의계의 부단한 자기변신은 한의학의 저변확대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하지만 치료의학, 보편의학, 민중의료라는 한의학의 이상은 여전히 실현되지 못한 채 현재진행형인 상태로 있다. 제도적인 측면에서 첩약이 아직도 의료보험에 적용되지 않는 것이라든지, 자동차보험과 산재보험의 급여범위가 협소한 것 등은 국민의 접근을 방해하는 요인들이다.

이밖에도 수시로 터져나오는 양의계의 한의학 비방이나 한약재 중금속 오염 문제 등에 따른 한의학의 신뢰도 추락을 방지하는 일은 한의계가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그러나 평등의료와 관련해서 한의계가 해야 할 일은 무엇보다 의료인으로서 자기위치를 확립하는 일이다. 병을 낫게 하면 의료인의 위상은 저절로 높아진다. 국민도 잘 치료하는 의학을 선호할 수밖에 없고, 국가가 치료를 잘 하는 의학에 국가예산을 많이 배당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므로 한의계가 저변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조속한 시일내에 ‘보약’ 이미지를 탈피해서 ‘치료의학’임을 입증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일은 이상하리만큼 한의협에 부하가 많이 걸려 있다. 학문적으로 입증하는 일이라면 당연히 대학·학회·병원·연구원이 해야 하는데 한의계는 어쩐 일인지 한의협에게 책임을 묻는 구조로 되어 있다. 뭔가 잘못돼도 크게 잘못돼 있다.

한의협은 그야말로 각 한의단체의 이익을 대변하는 기구일 뿐이지 한의협이 대학과 학회와 병원, 연구원의 역할을 대신할 수는 없다.

단지 한의협은 한의계의 대표단체로서 한의계 각 단체의 활동을 추동할 책임이 있다. 그것이 오늘날 1만 2천여 한의사가 한의협에 바라는 사항일지도 모른다. <다음호에 계속>

김승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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