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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1999.09.13 00:00
  • 호수 290

어느 정신지체자 가족의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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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신지체자 가족의 고통

잠근 방문안에 가족의 행복도 가둔지 오래



대망의 2천년, 세계화·선진화·인간화·복지화의 복된 미래를 가져다 준다는 서기 2천년을 4개월 앞두고 기자는 낡을대로 낡은 어느 집 문앞에 서 있다.

여기는 당진군. 어디라고 하면 알 만한 그런 곳이다. 문은 굳게 자물통으로 채워져 있다. 유리 한칸이 깨져 나간 자리에 상자 흰 종이를 대신 발라놓은 나뭇살 문.

월 10만원을 주고 이 낡은 집에 세들어 사는 이 집의 가장 ○씨는 출타 중이다. 그렇다면 바깥으로 잠가 놓은 이 문 속에는... 믿기 어렵지만 이 안에는 ○씨의 아내와 젖먹이 아기가 있다.

○씨는 왜 아내와 아기가 있는 집의 현관문을 밖에서 잠가 놓은 채 외출한 것일까? 그에게는 대체 무슨 말 못할 사정이 있는 것인가?



○씨의 아내는 정신적으로 심각한 병을 앓고 있다. 아주 오랫동안, 그러나 언제부터인지는 남편 ○씨도 모른다. 정신질환이라고 해야 할지, 정신지체라고 해야 할지, 그것 역시 ○씨는 모른다. 행여 우리 중 누가 가서 본다한들 사정은 마찬가지다. 우리는 정신지체자들과 그들의 행복에 관해 생각해 본 일이 없으므로.

어쨌든 ○씨가 문을 걸어 놓고 나가는 데에는 그만한 사정이 있다. 한번 밖에 나가면 하염없이 앞을 향해서만 걸어가는 아내, 집으로 돌아올 줄 모르는 아내 때문에 ○씨는 외출할 때 안심할 수가 없다.

그리고... 그리고 솔직이 ○씨는 아내를 보이기가 남부끄럽다. 사람들 앞에서 옷매무새를 매만질 정신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차림새 하나 제대로 추스르지 못하는 아내를 어떻게 내보내나 싶은 것이다.

○씨는 일이 있는 날이면 그렇게 문을 닫아걸고 나간다. 아내가 먹을 수 있는 음식과 아기가 먹을 우유를 준비해 놓고, 아기가 울면 우유 좀 먹이라고 일러놓고 문을 닫아 잠그는 것이다. 그 자신 이밖에 별 도리가 없다.

그렇다고 나와봐야 정해진 일터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이웃에서, 아는 사람들이 공사판 막일자리라도 물어다주면 그때마다 불쑥불쑥 일을 나간다. 하지만 요새는 그마저도 시원치 않다. 일을 구하기도 힘들 뿐더러 막상 일이 있어도 몸이 전 같지가 않다. 나이 쉰을 훌쩍 넘어 이제 중반이다. 게다가 밤마다 보채는 아이 돌보고, 밤마다 울어쌓는 아내를 견디다 보면 잠은 잤는가 말았는가 싶다.

오래 전에 입어본 양복들은 허리춤으로 주먹 하나가 들어가고 남을 만큼 헐렁해졌다. 기력도 없다. 이대로 더 살아야 하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삶의 의욕은 녹슨 쇠처럼 부서져 내리고 있다.

‘그래도 살아야지’ 아무리 다짐해도 희망이라곤 찾을 수 없다.



집에 돌아와 보면 아내도 아무것도 안먹고 아이도 안먹인 날이 더 많았다. 아내는 아이가 울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씨는 화가 난다. 별 수 없이 화를 내고나면 아내는 피흘린 어린 짐승처럼 밤새 운다.

아직 젊디 젊은 나이에 저렇듯 하루하루 사람다운 상태를 잃어가는 아내. 하지만 이젠 딱하기 보단 환장할 지경이다. 함께 갇혀사는 동안 ○씨의 생각과 느낌도 좁고 어두컴컴한 감옥에 갇혀가고 있다. 하지만 ○씨 자신도 그걸 잘 모른다.

‘혹시 이러다 이웃의 미움이라도 사는 날이면’ ○씨가 더 끔찍하게 여기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차라리 아내의 목이 잠겨버렸으면’ 하는 데까지 생각이 미친다.

○씨 자신도 전에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늘 말씀하셨다. 자기 자식을 낳은 여자를 함부로 해서는 안되는 법이라고.

종가집 종손으로 꼭 아들 하나는 낳아야겠다고, 멀리 생각도 안해보고 덜컥 후처처럼 둔 지금의 아내. 그 사이에서 태어난 큰 딸아이는 어느새 어엿한 중학생이다. 학교에 착실히 잘 나가고 어린 동생도 제법 돌보고는 있지만 그 아이가 어두운 단칸방에서 그동안 얼마나 상처를 입었을지 아버지 ○씨는 알 수가 없다. 자기만의 괴상한 세상에 갇혀버린 아내는 큰 딸도, 어린 딸도 느끼지 못한다.

이제 두살된 어린 것은 위생적·정신적인 무방비 상태에서 그 방안 세상을 하나씩 배워가고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씨 자신도 생애 많은 부분을 자포자기한 채 병들어가고 있다. 사업의 실패, 첫 부인과의 이혼, 그리고 밝은 세상천지에 달팽이처럼 웅크린 가족, 그리고 이 가난...

○씨는 자신에게 남은 이 모든 것을 꼭꼭 부여안고 살아왔다. 몇푼 안되지만 이 가족들을 반드시 자기손으로 부양해야 한다는 게 그의 신념이었고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다만 그밖에 정신질환자나 정신지체자의 세계가 어떤 건지, 그런 환자를 어떻게 해주어야 하는지, 그리고 그 가족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우리가 모르는 만큼 그도 몰랐을 뿐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렇게 오랫동안 그들 가족을 방치한 것은, 국가나 사회·지역공동체가 적절한 개입으로 그들에게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은 분명한 책무유기다.

가족은 혈연집단이지만 각 개인들로 이루어지고 모든 인간은 존엄하며 그 권리를 존중받을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모든 개인은 행복할 권리가 있고 사회는 그것을 돌볼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 정부가 보건복지부를 통해 정신보건사업을 시작하면서 당진군 보건소에도 약 220명 정도가 조사등록되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훨씬 많을 것이다. 우리사회의 묘한 편견과 봉건적인 가족주의는 정신질환에 대해 알리기를 꺼리게 하고 적절한 치료시기를 놓치게 해 본인과 가족들에게 평생 엄청난 고통과 불행을 강요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원인은 사회복지 철학과 정책, 사회적 책임의식의 결여에 있다. ○씨의 사례는 2천년을 앞둔 우리의 사회복지시스템의 공백과 다름없는 상태를 백일하에 보여주는 서글픈 한 예다.

그동안 아동학대나 성폭력 등 가정폭력이 가정의 문제, 가정의 책임으로 치부되어 수많은 개인이 사회의 적절한 도움이나 지원 한번 받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다. 한 인간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 이보다 더 불행한 일은 없을 것이다. 우리 인간의 한번 뿐인 생은 너무 소중하기 때문이다. 정신지체자 또는 그 가족이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다.

김태숙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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