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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2024-03-18 11:40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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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회-공포의 철침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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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의 철침대



김중회

은수교회 담임목사



희랍신화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아테네 근처 외진 곳에 프로크러스테스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먼 길을 여행하는 사람은 누구나 그에게 초청되어 음식과 하룻밤 잠을 대접받는다. 그런데 그의 집에는 철침대가 있어 누구든지 그 철침대에 눕게 된다. 그 철침대는 누구에게나 꼭 맞는 침대라는 것이 공포의 요소이다. 그는 그 침대보다 키가 크면 침대에 맞추어 잘라내고 침대보다 작으면 침대에 맞게 잡아 늘여서 그 침대에 눕는 모든 사람을 죽였기 때문이다.

이 공포의 철침대는 오늘날 우리가 사는 사회, 우리 사이에 있으며 늘 존재해 왔다. 우리중 아무도 상대방의 판단잣대에 상처받지 않았던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지난 세기 동안 지구를 옥죄었던 사상과 이념의 철침대는 아직도 한반도에 그대로 걸쳐져 있으며 그 침대에서 목숨을 빼앗긴 사람의 수를 어떻게 헤아릴 수 있겠는가.

더욱 부끄럽고 끔찍스런 일은 종교나 기독교의 잣대가 가지는 가혹성이다. 오늘날 땅 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의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종교싸움이 태반을 넘을 뿐 아니라 그게 그렇게 처절하고 잔인하다는데 말문이 막힌다.

아무런 죄없이 로마 총독 앞에 끌려온 예수님을 신문한 빌라소 총독은 예수님에게서 죄를 찾을 낼 수가 없었다. 예수님이 내세우고 있는 나라는 이 땅의 나라가 아니었던 것이다. 예루살렘 종교지도자들이 로마총독에게 고소한 예수님의 죄목이 참으로 가관이었다. 그것은 국가 전복을 위한 민중 선동죄와 로마황제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지 말 것, 그리고 자기를 유대인의 왕이라고 주장한 것이었다.

이 세가지 죄목 중 종교적 부분이 어디 있는가. 정치적 죄목 뿐이었다. 사실상 예수님에겐 선동할 민중이 없었으며 다만, 짓밟히고 학대받고 억눌린 가난한 사람들을 불쌍히 여겨 그들을 위로하시고 구원해주시려는 것 뿐으로 그 일을 위해서는 선동도, 납세거부도, 세상 권력도 전혀 불필요·불가능하였던 것이다.

아무튼 예수님은 정치범이 되어 처형되고 말았다. 이 예루살렘의 철침대는 전혀 가당치도 않은 다른 죄목을 씌워 예수님을 처형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 처형은 지금까지 끝난 적이 없다. 우리가, 전혀 다른 저의를 감춘 재단에 의해 처형될 수인의 자리를 벗어날 수 있을 때 참된 종교의 구원과 자유가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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