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 뉴스
  • 입력 1999.10.25 00:00
  • 호수 295

노인을 섬기고 어린이를 사랑하면 천하가 수월하리니 - 여성유교 경전반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노인을 섬기고 어린이를 사랑하면 천하가 수월하리니



천년 전으로 돌아가 오늘을 배운다

<여성 유교 경전반>



당진초등학교 뒷편에 아담하게 앉아있는 향교. 번잡한 도심주변에서도 늘 조용히 입다물고 있는 이곳이 오늘은 사람들 말소리로 수런거린다. 오늘은 <여성경전반 designtimesp=6573> 공부가 있는 날. 간만에 따뜻하게 내리쬐는 가을햇살 아래 향교 공부방 툇마루 밑에는 학생들이 벗어놓은 신발 열 예닐곱 켤레가 정답다.

방문객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조심 조심해 보지만 열릴 때면 ‘덜컹’소리를 내고 마는 나뭇살 문.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이 훼방꾼의 등장에도 그들의 시선과 자세는 그리 흐트러지지 않는다.

방안에는 젊은 주부에서 할머니까지 여성학생 열여섯명이 앉은뱅이 책상 앞에서 열심히 선생님의 수업을 들으며 책에 공책에 메모하느라 여념이 없다. 평소에는 못잡아도 30명 가까이 나왔다는데 이날은 뜻밖의 좋은 날씨덕에 이집 저집 일거리가 많았음직 했다.

선생님은 다름아닌 김준환(73세) 전 전교님이셨다. 김준환 어르신은 올해 8월까지 3년간 당진유림 전교를 지낸 시기를 포함해 벌써 10년째 이곳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매주 화요일 오전10시면 어김없이 이곳에 마주 앉는 선생과 제자들. 목요일에는 유림회관에서 똑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다만 남성들이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어르신의 무료봉사로 이루어진다.

이날의 가르침은 '바른 배움의 자세'에 관한 것이었다.

좥博學(박학) 深問(심문) 深思(심사) 明見(명견) 篤行(독행) - 이치를 널리 알고 의심나는 바를 물어 확실히 하며 생각을 신중히 하여 사리에 밝게 판단하며 그것을 독실하게 행한다.좦

이것이 배움에 대한 정의였다. 알고 물으며 깊이 생각하고 바로 보고 실천하기까지 어느 것 하나라도 빠뜨린다면 그것은 참다운 배움이 아니라는 것이다.

선생님은 여기서 ‘아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 함’의 유익을 강조한다. 모르는 것을 인정하면 비록 부족함은 있어도 자기를 속이는 부정직은 저지르지 않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모르는 바를 인정함으로써 묻고 배워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선함을 익히면 당진의 오염이 더디어지리라



이 모임을 가장 오래 다닌 사람들은 벌써 12년째 유학의 경전을 배웠다. 임종복(49세)·백월자(51세)·한성자(49세)씨 등이 그들. <명심보감 designtimesp=6596>, <동몽선습 designtimesp=6597>, <소학 designtimesp=6598>, <대학 designtimesp=6599>, <논어 designtimesp=6600>, <맹자 designtimesp=6601>에 이르기까지 말로만 듣던 유학의 경전을 현대적인 풍부한 사례들과 함께 깊이있게 배워가는 동안 이들은 유학의 가르침의 매력에 흠뻑 젖고 말았다. 서로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들이 돈독한 사이일 수 있는 것도 ‘선한 삶’이라는 종교의 목적을 선생님을 통해 충분히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같이 밝은 표정, 온화한 얼굴은 연세 많은 노인 선생님의 보람일 법도 했다. 여북하면 10년간 지치지도 않고 무료강습을 해왔을까.

이 무료강습에 올해로 8년째 다니고 있는 당진읍 송봉열(72세) 할머니. 할머니는 어느 땐가 중풍으로 쓰러져 잠시 수업을 중단했었다. 차도가 좀 있어서 다시 나오게 된 뒤에도 우울증에 시달리느라 수업 중에도 울곤 했단다.

“그런데 대학(大學)을 배우면서 우울증이 나았슈. 사람이 제마음을 어떻게 다스리고 어떻게 비우나 그걸 배운 걸유.”

이상자(49세)씨. 보통 사람들이 볼 때 ‘유학’이 고루하다고 하지만 유학의 근본은 ‘인본주의’라고 열띤 항변을 한다.

“요새 학교 교육이 문제가 있다고들 하잖아요? 윤리·도덕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그렇다고 보는데 제 생각엔 <명심보감 designtimesp=6612>을 애들에게 쉽게 가르칠 수만 있어도 그런 문제는 없을 것 같아요.”

이 경전반의 회장 한정순씨도 한마디.

“3천년전 이야기라 우리와 동떨어져 보일지 몰라도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덕목들이예요. 근본에 관한 이야기니까요.”

멀리 신평면 신송리에서 매주 착실하게 이곳에 나오기가 8년째인 안숙자(73세) 할머니는 “여기 오는 게 서울대학교 다니는 것보다 백배 나은 걸유”라고 말해 다른 학생들을 웃게 했다.

이날 수강생 중에 가장 젊은 장춘자(35세)씨. 수업경력도 이들 중에 가장 짧아 2개월이다. 한자를 배우고 싶어서 나오기 시작한 것이 이제는 자녀교육과 부모님 공경의 지혜를 배우는 일이 되었다.

장씨는 ‘집짐승도 때마다 먹이를 주는데 노인과 아이의 식사와 잠자리를 챙겨주는 것은 기본중의 기본’이며 ‘어른 앞에서 얼굴색 변하지 않고 온화한 얼굴을 해야 한다’는 말을 인용해 선배언니들의 박수를 받았다. 장씨에겐 이 수업이 당진에 와서 가장 보람있는 일이다.

수업에 대한 소감은 인간의 화와 불행의 원인인 ‘부질없는 욕심’을 인용한 총무 서용순(48세)씨의 말로 일단락되었다.

‘사람이 백살을 살지 못하면서 천년의 계획을 세우더라’ '明心寶鑑(명심보감)'에 나오는 말이다.



다시 김준환 선생님의 보충수업시간. 이 수업은 무지몽매한 참관인, 기자를 위한 특별수업이었다. 주제는 '효'였다. 그런데 노인공경과 어린이 보호가 늘 한 맥락에서 얘기되었다. 그것은 우연이 아닌 성 싶었다. 다음은 선생님이 일러주신 구절이다.

<老吾老하야 而及人之老하고

幼吾幼하야 而及人之幼하면

天下는 可運於掌이라>

<내 어르신을 어르신으로 섬김이, 다른 사람의 노인을 섬김에 미치고, 내 자녀를 자녀로 사랑함이 다른 이의 자녀를 사랑함에 미치면 천하의 일은 손바닥을 움직임과 같이 수월하다 designtimesp=6639>는 것이다.

세상의 이치와 사람의 도리는 노인과 어린이를 보살핌에서 시작되는 것이니 한 나라도 정책을 노인과 어린이에게 먼저 두는 나라는 분명히 잘 이루어져 나간다는 것이다.

선생님은 '효'를 더 간단히 설명한다. ‘부부간에, 부모 자식간에, 사회간에 자기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여 부모의 마음을 편케 해드리는 것, 그것이 '효'다. 그래서 '효'는 곧 모든 것의 근본이다.’

헤어질 시간이 되자 학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선생님이 한해 한해 늙어가심이 가슴 아프다’고 한다.

'선함'과 '도리'를 가르쳐 당진의 정서적 오염을 늦추려는 선생님의 뜻을 제자들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김태숙 부장

저작권자 © 당진시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5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