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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2024-03-28 10:44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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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이웃의 밥줄 이야기-정미우체국 집배원 문석진 씨]
산골 마을 만능 도우미 집배원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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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편배달과 함께 주민들 온갖 심부름도 대신
26년 동안 대호지면 우편 담당

[편집자주] 우리 주변에는 사회의 지독한 편견 속에서도 꿋꿋하게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 있다.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 누군가는 해야 하지만 많은 이가 손사래 치며 꺼리는 일을 자부심을 갖고 해내고 있는 이웃들. 본지는 새해를 맞아 이동권 씨의 <우리 이웃, 밥줄 이야기>를 모티브로 당진에 사는 이웃들을 만나 그들의 직업이야기를 들어 봤다.

“문 씨~ 다음에 올 적에는 나 소금 한 포대만 사다 주겄어?”
“문 씨~ 이거이 뭐라 써 있는 겨? 돈 내라는 건가?”
“문 씨~ 까막눈이 돼서리, 우리 손자한테 온 편지 좀 읽어주고 가~”
문석진 씨는 대호지면의 만능 도우미다. 대호지면은 당진에서도 비교적 교통이 불편한 시골인데다가 혼자 사는 노인이 많은 동네다 보니, 매일같이 면소재지를 오가는 문 씨가 마을 주민들에게는 만능 도우미인 셈이다. 문 씨의 본업은 24년 배테랑 집배원이다. 그는 우편물 배달하기도 바빠 귀찮을 법도 한데 주민들의 부탁을 마다않고 기꺼이 들어준다.
“버스도 자주 안 다니고 거동도 불편한 어르신들이 부탁하는 걸 어떻게 안 들어드릴 수 있나요. 저는 매일 같이 오토바이로 이곳저곳을 다니니까 이왕 우편물 가져다 드리러 가는 길에 겸사겸사 심부름도 해드리는 거죠.”
문석진 씨는 오늘도 우편물에 정까지 덤으로 가득 실은 오토바이에 시동을 건다.
  
“머릿속에 지도가 펼쳐지죠”
아침 7시면 정미우체국 집배실에 불이 켜진다. 문 씨는 3명의 동료와 함께 근무하고 있다. 정미우체국은 정미와 더불어 대호지면까지 관할하고 있다. 때문에 4명의 집배원이 2개 면의 우편배달을 소화해야 해서 늘 시간이 부족하다. 
천안에서 당진을 거쳐 정미우체국에 우편국 차량이 도착하면 본격적인 업무가 시작된다. 담당 지역 우편물을 선별하고 나면 베테랑 집배원의 머릿속 내비게이션이 작동한다.
“머릿속에 지도가 떠요. 배달해야 하는 집들이 순서대로 지도처럼 머릿속에 펼쳐지죠. 배달하는 순서대로 우편물을 추려 놓아야 배달하기가 쉬워요. 손으로 우편물을 추리며 머릿속으로 하루 동안 배달할 곳을 한 바퀴 돌고 나면 10시쯤 되요.”
요즘에는 고지서와 각종 신문, 잡지가 우편물의 주를 이룬다. 청첩장과 광고물도 상당수를 차지한다. 반면 손으로 쓴 편지는 드물다. 빨간 우체국 오토바이에 우편물을 가득 실고 문 씨는 대호지면으로 출발한다. 두산리, 도이리, 장정리, 적서리, 사성리가 문 씨의 담당 구역이다.  우편물이 많기 때문에 하루에 몇 차례씩 우체국을 들려야 한다.

“심부름꾼 자처하며 보람 느껴요”
문석진 집배원의 오토바이에는 우편물 말고 다른 짐이 실리는 경우가 다반사다. 요즘에는 집마다 차량이 있어 덜하지만 20여 년 전만해도 우편물 무게에 맞먹는 짐이 추가로 오토바이에 실리기가 일쑤였다.
“농약이나 농자재도 많이 사드리고, 전화요금 같은 공과금도 대신 내드리기도 하죠. 농번기  때는 일꾼들 새참으로 낼 반찬도 사다드리는 걸요.”
“귀찮지 않냐”는 질문에 문 씨는 되레 “보람 있다”고 답했다.
“어르신들이 손수 하기 어려운 일을 도울 수 있으니 좋죠. 집배원으로 일하면서 보람 있는 일 중 하나예요. 반가운 소식 전해드리는 것도 기쁜 일이지만 누군가 도울 수 있다는 것도 보람 있는 일이죠.”
예전만큼 많지는 않지만 글을 모르는 노인들을 위해 편지를 대신 읽어주는 일은 요즘도 잦다. 편지뿐만 아니라 각종 안내문과 고지서를 설명해 주는 것 역시 문 씨의 필수 서비스다.
 
“반가운 소식꾼도 옛 이야기죠”
 하지만 최근 들어 문 씨가 서운할 때가 늘고 있다. 반가운 편지보다 고지서나 광고물이 더 많아지면서 집배원을 반기는 분위기가 아니기 때문이란다.
“옛날에는 휴대폰도 없고 인터넷도 없었으니 편지가 기쁜 소식을 알리는 주요 역할을 했잖아요. 처음에 집배원 일을 했을 때는 동네 어귀에만 들어서도 마을 사람들이 반겨 줬죠. 그런데 요즘엔 ‘또 왔네’ 하는 반응이 더 많아요. 돈 내라는 고지서나 광고물이 많아 졌으니까요. 그럴 때 좀 서운하죠.”
문 씨가 집배원을 시작했던 24년 전에는 자전거를 타고 우편물을 배달했다. 비라도 내린 뒤에는 비포장 길에 앞바퀴 빠져 애를 먹기 일쑤였다. 요즘에는 오토바이로 포장길을 달려 그럴 일은 없지만 대신 사고 위험성이 높아졌다. 올 겨울에도 빙판에 여러 번 넘어져 무릎도 깨치고 옷도 찢어졌었다고.
“겨울 빙판길에 많은 우편물을 전달하려고 빨리 달리다가 사고가 나기도 하죠. 한 번은 어두워져서 배달을 끝내고 돌아오다 고라니랑 부딪혀서 오토바이가 부서지기도 했었어요.”
예전에 비해 줄어든 집배원 인력도 고충 중 하나다. 수년 전만해도 대호지면에서 5명이 함께 하던 일을 이제는 2명이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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