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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줄이야기8-당진교육지원청 관용차 운전사 손광승 씨]
“20년 동안 당진교육장의 발이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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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 후 마음 편히 떠나는 가족여행이 꿈
20년 동안 13명의 교육장, 3대의 차

[편집자주] 우리 주변에는 사회의 지독한 편견 속에서도 꿋꿋하게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 있다.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 누군가는 해야 하지만 많은 이가 손사래 치며 꺼리는 일을 자부심을 갖고 해내고 있는 이웃들. 본지는 새해를 맞아 이동권 씨의 <우리 이웃, 밥줄 이야기>를 모티브로 당진에 사는 이웃들을 만나 그들의 직업이야기를 들어 봤다.

 

“손광승 씨, 다음주 월요일에 교육장님 서울육군본부에 가십니다. 1시까지 도착해야 하니까 그렇게 아세요.”
“네? 네.”
‘서울? 육군본부? 큰일났네! 육군본부가 서울 어디에 붙어 있는겨!’
앞이 캄캄했다. 운전 일도 이제 막 시작해 당진에서 길 찾는 일도 쉽지 않은데 서울이라니! 그것도 육군본부는 또 어디인건지. 고민 끝에 손 씨는 일요일 아침 자가용을 몰고 무작정 서울로 향했다. 지인들을 총동원해 서울육군본부 가는 길을 물어 답사를 다녀오기로 한 것이다.
‘음! 여기 사거리에서 좌회전하고 oo약국 앞에서 우회전.’
손 씨는 당진에서 서울육군본부까지 가는 길을 일일이 종이에 적고, 눈으로 익혔다.

아들 입학식 한 번도 못 가봐

“벌써 20년 전 이야기가 됐어요. 출근한 지 며칠 되지 않아서 서울까지 교육장님을 모시고 가야한다니 초보운전기사가 얼마나 걱정이 컸겠어요. 그때 네비게이션이 있나, 스마트폰이 있나. 손에 땀을 쥐고 서울까지 모시고 갔던 기억이 나네요. 근데, 내 성격상 뭘 하려면 내 손으로 꼼꼼하게 해야 직성이 풀려요. 그게 노하우라면 노하우지. 이제는 네비게이션 없이도 전국 어디라도 가는 길이 짐작이 되지요.”
손광승(55, 고대초 31회, 당진중 24회 졸업) 씨는 20년째 당진교육지청에서 교육장이 타고 다니는 관용차를 운전하고 있다. 그 사이 교육장은 13명이 바뀌었고 관용차량도 3번이나 교체되었다. 지금은 베테랑 운전사지만 20년 전만해도 운전경험이라고는 자가용 운전이 전부였던 손 씨에게 타지 출장은 겁나는 일이었다. 하지만 손 씨는 사전답사까지 하며 차를 몰았다.
“기관장이 도착해야 행사나 회의가 진행이 되잖아요. 교육장님이 저 때문에 회의나 행사에 늦으면 안되니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정해진 시간에 교육장님을 목적지에 안전하게 모셔다 드리는 게 제 일 아니겠습니까.”
손 씨는 20년 동안 한 번도 세차를 남의 손에 맡긴 적이 없다. 세차장에 맡기고 세차비를 청구하면 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자신의 손으로 관용차를 닦고 매만졌다. 하루 종일 내리던 비가 늦은 밤에 그치는 날이면 어김없이 새벽에 나와 손수 차를 닦았다. 눈이 내리는 날, 얼어붙은 걸레를 빨아 세차를 했다. 일에 대한 자부심 때문이다.
“새벽 6시50분쯤 밥 먹고, 7시30분이면 출근을 해요. 차도 손보고 정리도 하고요. 퇴근 시간도 6시로 정해져 있지만 교육장님 회의가 늦게 끝나거나 만찬이 잡히면 그도 못 지키는 날이 많죠. ”
제때 퇴근을 못하는 일뿐만 아니라 휴일에 출근해야 하는 일도 잦다. 소년체전같은 전국행사가 있는 날이면 강원도며 부산이며 장시간 운전도 해야 한다. 때문에 손 씨는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이 크다.
“다른 건 몰라도 애들 어릴 적에 졸업식, 입학식에 한 번 못 가본 게 미안해요. 주말에 가족들과 놀러도 한 번 제대로 못 갔죠. 지금이라면 교육장님이 배려를 많이 해주셔서 갈 수 있었겠지만. 한참 아이들 어릴 적인 10여 년 전에는 그런 말 꺼낼 분위기가 아니었어요. 옛날에는 권위의식이 높았으니까요.”

“가족은 나의 힘”

장기간 운전 중에 졸음이 밀려올 때, 운전기사라며 사람들이 업신여길 때, 꽁꽁 얼어붙은 걸레를 빨 때 손 씨는 늘 가족을 생각했다.
“많이 배우지도 못했고.(웃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운전이라고 여겼죠. 천직이라 생각하고 일했어요. 여태 살면서 누구한테도 말하지 못했던 건데 기자님한테 처음 말하는 거예요. 이 일 아니면 우리 가족 먹고 살 길 없다는 생각으로 일했어요. 가족들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거에 긍지를 갖고 살았어요.”
손 씨는 “교육장님 모시고 다니면서 좋은 말씀도 많이 들으며 못한 공부도 많이 한 것 같다”며 “나름대로 교육계에 일한다는 자부심도 생겨나 차림새도 단정히 하게 되고 말도 신경 써 하게 된다”고 말했다.
정년퇴직을 5년 남짓 남겨 둔 손 씨의 꿈은 ‘퇴직 후 가족과 함께 여행을 다니는 것’이다. 더불어 일 때문에 못했던 교회차량 운행봉사도 하고 싶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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