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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2024-03-28 10:44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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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줄이야기10-당진어시장 이희덕 할머니]
“30년 생선장사, 어울려 사는 재미로 하는 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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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손님 한 명 구경하기도 힘들어
도매상사 바지락까기, 홍어 손질 등 품팔이가 고작

[편집자주] 우리 주변에는 사회의 지독한 편견 속에서도 꿋꿋하게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 있다.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 누군가는 해야 하지만 많은 이가 손사래 치며 꺼리는 일을 자부심을 갖고 해내고 있는 이웃들. 본지는 새해를 맞아 이동권 씨의 <우리 이웃, 밥줄 이야기>를 모티브로 당진에 사는 이웃들을 만나 그들의 직업이야기를 들어 봤다.

 

“어? 할머니 어디 가셨나보네~”
“나~ 여기쓔~”
목장갑에 칼을 든 할머니가 좌판 너머에서 얼굴만 빠금히 내밀고 눈인사를 건넨다.
“안녕하세요. 할머니~ 뭐하고 계세요?”
“이~ 누구라고, 오랜만이구먼! 뭐하긴, 먹구 살라구 일하제~”
탁. 탁. 할머니는 시장 한 켠에 쪼그리고 앉아 홍어를 썰고 있다. 냉동 홍어라 칼 든 손에 힘이 들어갔다. 도매상사에서 인근 장례식장에 납품하는 홍어다. 먹기 좋게 썰어 주고받는 돈은 10kg에 단돈 5,000원. 10kg를 써는데 걸리는 시간은 40분이다. 그나마도 도매상사에서 주는 품팔이가 요즘 할머니의 유일한 벌이다.
“요즘 누가 어시장 이 안쪽까지 들어 와야 말이지. 수십 년 된 단골손님이 어쩌다 한 번 오면 모를까. 오랫동안 생선을 사가는 식당 말고는 손님 구경하기 어려워. 생선 팔아 돈 벌기는 글렀고, 이렇게 품 팔아서 하루에 단돈 얼마라도 버는 거여.”
이희복(74) 할머니는 당진시장에서 생선을 판 지 30년이 훌쩍 넘었다. 대호지면 장정리에서 당진시내로 나와 자식들을 키우며 시작한 생선장사. 요즘은 돈을 벌어야 겠다는 생각은 없다. 다만, 어시장에서 보낸 지난 세월이 습관처럼 몸에 배어 오늘도 이른 아침 시장에서 칼을 잡는 거다.

“자식들한테 못해준 게 속상혀”

이희복 할머니는 박영자(75) 할머니와 함께 원당수산을 꾸려가고 있다. 두 할머니의 동업은 30년이 넘었다. 처음에는 온갖 생선을 생물로 팔았다. 장날이면 일손이 부족할 정도였다. 그때는 원당수산뿐만 아니라 당진시장 전체가 생기가 넘쳤다.
하지만 점점 시장은 골목마다 들어선 대형마트와 편의점에 밀려 손님들이 줄어갔다. 식당이 늘고 잔치방이 생기면서 외식문화가 발달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5일장마다 타지에서 몰려든 장사꾼들에게 손님을 빼앗긴 것도 큰 문제다.     
“이제는 예전만큼 일찍 안 나오지. 저녁에 문 닫는 시간도 대중없어. 요즘 누가 어매아배 제사라고 조기새끼 하나 사러 오기나 하는 줄 알어? 옛날 고려 적부터, 처음 장사할 때부터 다니던 단골이 꼬부랑 할매가 되어서도 가끔 찾는 일 빼고는 손님 없어.”
때문에 생선을 파는 일보다 도매상사에서 소일거리를 받아 품을 파는 일이 주업이 되었다. 원당수산에 들여놓은 생선은 동태나 조기가 고작이다. 간혹 바지락이나 굴 같은 것을 찾는 이가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생물을 가져다 놓는 일은 거의 없다.
“그래도 집에 있으면 뭐혀. 아들, 딸 다 여우살이 하고 지들끼리 살지. 영감도 하늘나라 먼저 갔지. 교회 가는 일 말고는 마땅히 할 일이 없잖어. 그러니께 이렇게 나와서 어우렁더우렁 사는 겨. 시장 사람들하고 이야기도 하고 밥도 같이 먹고 말여.”
할머니는 늘 한 대에서 물을 만져야 하는 생선장사를 하면서도 내 몸이 힘든 건 별거 아니라 여기며 살았다. 추우면 옷 하나 더 껴 입으면 된다 여겼다. 다만, 벌이가 시원치 않고 가진 것이 없어 4남매 더 못 먹이고 더 못 가르친 게 생선장사를 하며 가장 속상한 일이다.

새벽기도 마치고 어시장으로

이희덕 할머니는 대호지면 장정리에서 살았다. 처음에 시집갔을 때는 농사지을 땅도 몇 마지기 있었다. 헌데 할아버지가 ‘놀음’으로 탕진해 버렸고, 결국 자식들과 함께 당진시내로 나와 남의 집 일을 다니며 생계를 이어갔다. 할머니는 4남매를 키우다 생계벌이를 위해 생선장사를 시작했다.
“그나마 있던 농사처도 놀음으로 다 날리고 시내에 나와서 이집 저집 세들어 살면서 고생 많았지. 우리 애들이 부모 잘못 만나서 남들처럼 잘 입지도 먹지도 못했어. 젊어서는 고생시키더니 할아버지가 가실 적에는 내 수고 덜어주려고 그랬는지, 주무시다 조용히 하늘로 가셨어. 처음에는 참말로 적적했지.”
의지하고 살던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지도 10년 가까이 됐다. 혼자가 된 할머니는 이후 할아버지 대신 하나님을 의지하며 산다. 새벽기도도 빼먹지 않고 다닌다. 
“내 소원이 뭔 줄 아는가. 우리 애들도 교회 다니는 거여. 지금 잘 먹고 잘 사는 게 전부가 아니거든.”
할머니는 오늘도 새벽기도를 마치고 어시장으로 향한다. 앞으로도 몇 년간은 할머니의 출근이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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