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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
  • 입력 1998.01.26 00:00
  • 호수 209

심훈문학상 당선작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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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하루에 한 두차례씩 방파제 끝에 나와 제를 올리곤 하지만 그 때 뿐이고 짐을 챙겨 총총히 사라지면 그만이었다. 어느 길에서도 어느 음식점에서도 남장을 볼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아무도 남장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보이지 않고 마주치지 않으니 관심이 가지 않을 밖에 없을 터였다. 하지만 나는 이상하게도 그 남장이 목에 가시처럼 걸려 있는 기분이었다. 내내 아무렇지도 않고 까맣게 잊고 있다가도 문득문득 떠오르는 것이었고, 그러다보면 어느 곳에 묵고 있으며, 꿈적도 않고 무엇을 하고 있는가 궁금해지기도 하는 것이었다. 그 섬뜩했던 눈빛과 서늘하니 표정 없던 얼굴. 그것을 생각하면 다른 사람들의 표현대로 뭔가 기분 나쁘고 꿈에 볼까 싶기도 하지만 저절로 떠오르는 데에는 어쩔 수 없는 일인데, 어쩌면 주근깨의 이야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주근깨는 두 가지를 얘기했었다. 가족 모두를 바다에 잃었다는 것과 눈이 맞은 외간 남자를 홍도바다에서 잃었다는 것. 그러면서도 남의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지어낸 이야기인지도 모른다고 주근깨는 덧붙였더랬다. 함에도 불구하고 그게 그냥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사실인지도 모른다고 생각 되는 것은 무슨 연유에서일까. 그리고 전자보다는 후자 쪽으로 자꾸만 기울어지는 것은 왜 일까. 외간 남자와 눈이 맞아 남편을 교묘하게 죽게 만들고, 혹은 교묘하게 살해하고, 그 외간 남자와 놀러 왔다가 그 남자가 수영 미숙으로 죽었다는 것. 끔찍하면서도 한편으로 통속적이랄 수 있는 그런 이야기. 하기만 통속적이라서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것. 그러니까 아무리 지어낸 이야기라 하더라도 전혀 근거없이 그런 이야기가 떠돌지는 않았을 거라는 게 내 생각이었다.
아무튼 몇차례 공중전화부스를 오가던 처남이 팩스를 받으러 간다기에 우리들도 주르르 따
라나섰다. 여관방에 남아 있는 것보다 그 편이 백번 나았다. 비는 그쳐 있었지만 바람은 드
센 편이었다. 옷을 빨아 여관 마당의 줄에 널어놓은 것들이 만국기처럼 펄럭거렸다.
층계를 돌아 내려가는데 여관 마당 한쪽켠의 평상에서 와그르르 웃음이 터져 나왔다. 302
호의 아줌마들이었다. 평택에서 왔다는 오십 전후의 그네들은 방에 죽치고 앉아서 화투패를
돌리다가도 여차하면 우르르 몰려다니곤 했다. 우리가 마당으로 내려서자 치마를 걷어올린
채 보기 민망한 자세로 가랑이를 벌리고 있다가 얼른 쓸어내렸다. 다시금 와그르르 웃음이
터져 나왔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어떤 흉내를 내고 있었던 모양인데 그중 웃음
소리가 크고 걸지기로는 바로 당사자인 ‘빨간셔츠’였다.
빨간셔츠는 언제 어디서나 걸지고 왈가닥이었다. 여섯명이 한 조를 이루고 있는 그 팀에서
빨간셔츠를 뺀다면 시체말대로 앙꼬없는 찐빵이요, 달 없는 보름밤이었다. 발이 묶이던 첫날
빨간셔츠는 걱정이 태산이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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