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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
  • 입력 1998.05.25 00:00
  • 호수 225

심훈문학상 당선작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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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그러니까 여덟째날 아침은 무엇인가 우리를 안도하게 했고 다소 들뜨게 만들었다. 적어도 그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는 그랬다. 아니, 그 사건과 우리가 들떠 있는 것과는 별개의 일로, 비록 섬 전체가 그 사건으로 술렁이고 우리도 얼마쯤 그에 휩쓸려 있었지만 그것과는 다른 한편에서 우리는 여전히 들떠 있었다고 하는 게 옳을 것이다.
역시 늦게서야 일어나 욕실을 드나들며 용변을 보고 샤워를 하고서도 방바닥에 누워 있는데 우리의 기척을 들었음인지 옆방 창문을 통해 처남이 큰 소리로 말했다.
“일어났으면 건너와! 좋은 소식이 있다고!”
“좋은 소식이라니, 무엇입니까?”
창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어 마주 쳐다보며 묻자 처남은,
“건너오라마! 건너오기 전에는 이야기할 수 없다마!”
“뭔지는 모르지만 아주 비싸게 구시네요.”
“나도 이럴 때나 좀 비싸게 굴자. 아니, 얼마든지 비싸게 굴어도 좋을 만한 소식이라구. 궁금하면 어서 건너와.”
해서 건너가 보니 우리나라를 향해 올라오던 태풍이 갑자스레 일본열도 쪽으로 진로를 바꿔 진행 중이라는 것이었다. 따라서 제주도 남쪽 바다만 태풍의 영향권에 들었을 뿐, 남해 해상과 동해남부 해상에 내려졌던 태풍경보 및 주의보는 완전히 해제되었다고 했다. 우리는 그것을 뉴스 뿐 아니라 실제 두 눈으로도 확인할 수 있었다. 곧 해일이라도 일 줄 알았던 바다가 어제 보다도 더 잔잔해져 있었고, 해수욕장 앞 바다에 떠 있었던 중국 배들도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태풍주의보가 해제되었으니 당연히 떠났을 것이다. 그리고 해수욕장의 바다에 옮겨졌던 배들 가운데 몇척의 배가 다시 선착장 쪽의 바다로 돌아와 있기도 했다. 이대로만 간다면 오늘 중으로 여객선이 뜰지도 모르겠다고 사람들은 입을 모았다. 하지만 장마 중인 날씨가 어떻게 변할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확실히 여객선이 뜬다는 소식은 아직 어디서도 들려오지 않고 있었다.
“오늘 배가 뜨지 않는다 해도 아직 포기하거나 실망하진 마. 불란서에 가는 것 말야. 태풍이 비껴 간 마당 아니야? 내일 오전중에 배가 뜨기만 하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야. 다행히 저녁 여덟시 반 비행기라고 했으니 목포에 도착하자마자 새마을호 열차를 타면 아슬아슬하게나마 공항에 닿을 수 있는 일이잖아. 새마을호 열차시간이 배가 도착하는 시간과 맞아 떨어져 주기만 한다면... 어떻든 그 시간 안에 공항에 도착하기만 하면 되잖아. 물론 이것저것 준비를 못해서 그게 좀 어렵기는 하지만 임시변통을 할 수도 있는 일이지 뭐. 옷 같은 것은 공항에서 사 입고, 다른 것은 누구에게 부탁을 한다거나 하고 말야. 아, 맞아! 목포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직접 김포공항으로 나를 수도 있어. 목포 여객선 터미널에서 항공사를 보았던 것도 같아. 열차표도 예매할 수도 있고, 그러니까 여객선 터미널에서 열차편이든 항공편이든 알아보고 시간이 가능한 쪽으로 움직이면 되겠지. 그러니 항공편이든 알아보고 시간이 가능한 쪽으로 움직이면 되겠지. 그러니 아직 실망하거나 포기하진 말라구.”
처남댁이 내 여자를 향해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이미 모든 걸 포기한 내 여자의 반응은 그저 시큰둥할 뿐이었다. 사실 처남댁도 이미 틀려버린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 거였다.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말하는 것은, 비록 내색은 않지만 크게 실망하고 있는 시누이에게 다소나마 위로의 말을 해 보자는 생각에서였을 터였다.
아무튼 해수욕장에 가 중국 배들이 떠나간 것을 확인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골목을 중간쯤 걸어 내려오는데 그보다 더 좁은 샛길에서 주근깨가 비를 들고 서 있었다. 반가웠다. 하여 나도 모르는 사이, “안녕하세요? 여기 사시는 모양이군요.” 했더니 웬걸, 주근깨는 몹시 당황해서 얼른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리고는 잠시 어찌할 줄 모르다가 들고 있던 빗자루를 놓아버리고는 아무런 대꾸도 없이 안으로 들어가 버리는 것이 아닌가.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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