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실시간뉴스
편집 : 2024-04-18 13:58 (목)

본문영역

  • 뉴스
  • 입력 1998.06.08 00:00
  • 호수 227

심훈문학상 당선작 연재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리는 아차, 싶었다. 그만 실수를 해버렸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면서 주근깨가 서 있던 자리로 눈길이 갔다. 거기에는 깨어진 유리조각들이 하얗게 널려 있었다.
어젯밤 늦게 우리는 자주 드나드는 수퍼의 간이탁자 앞에 앉아서 빨간셔츠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음료수를 마시고 있었더랬다. 달리 빨간셔츠에 대한 이야기가 다시 또 입에 오른 것이 아니라 나오면서 보니 302호에서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방문을 활짝 열어놓은 채 질펀하게 주질러 앉아 화투패를 돌리고 있었고, 그러는 가운데 빨간셔츠의 목소리가 가장 요란하게 들려왔던 때문이었다.
“빨간셔츠가 거짓말을 했거나 그 능청스러움으로 교묘하게 둘러쳤다면 이 섬에서 땡중과의 일을 아는 사람은 우리들 뿐일 거야.”
한참 그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갑자기 바로 윗편 건물에서 우당탕 거리며 악을 쓰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이가 울어제치고, 나이 먹은 여자가 소리를 질러대고, 술취한 사내가 길길이 날뛰는 소리가 온통 골목을 울렸다. 그러더니 잠시 후에는 와장창창 유리창이 깨지면서 시멘트 바닥을 향해 쏟아지는 소리가 들리고 젊은 여자의 자지러질 듯한 목소리도 들려왔다. 술취한 사내가 행패를 부리고 있다는 것은 단박에 알 수 있었다.
“또 시작이군, 또 시작이야. 노상 빈둥거리기만 할 뿐 하는 일 없이 술만 처먹고 하는 짓이라니. 아무리 저 지랄이래도 마누라나 두들겨 패지 말아야지. 제 마누라 골병들면 나중에 제 고생이라는 것을 알기나 하나 원. 쯔쯔쯔쯔...”
나이먹은 수퍼의 여주인이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사람들은 더러 그쪽으로 몰려가 구경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대로 수퍼의 간이탁자 앞에 앉아 있었다. 원래가 그런 구경거리를 좋아하지도 않았지만 남의 싸움하는 거 뭐가 좋다고 구경하느냐는 처남의 말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보니 그게 바로 주근깨네가 아닌가. 우리는 차라리 모르는 척 그냥 지나쳤더라면 더 좋았을 거라고, 우리가 실수를 한 거라고 생각하며 돌아섰다. 서로 입 밖에 내어 말하지는 않았지만 씁쓸한 기분이었다.
<다음호에 계속>
저작권자 © 당진시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500

내 댓글 모음